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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25. 2022

미움받을 용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2일째

7월 25일 월요일 후덥 시원 섭섭


오늘은 회사 얘기를 해야 될 것 같다. 나는 남들보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아무나 나를 미워해도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해 주길 바라지만, 그 외에는 미워하거나 말거나라는 거다.


사실 이번에 육아휴직을 시작할 때도 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이게 내 일을 갑자기 다 내팽개치고 하는 것이 아니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팀과 회사에 계획을 알리고 협의하는 기간을 거쳤다. 하지만 어쨌건 내 개인의 사정 때문에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 조금은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근데 휴직 전에 예전에 다녔던 다른 회사 대표님과 식사를 한번 하게 됐는데 내가 첫째한테 3개월, 둘째한테 3개월씩 육아휴직을 쓸 예정이고 배우자 출산휴가 10일과 잔여 연차까지 총 7개월을 쉰다고 설명했더니,


“회사가 약이 좀 오르겠는데-?”


하시며 넌지시 웃으신다. 그 전까진 다 직장인 입장에서 생각해서 그럼 그동안 돈은 얼마 받냐거나 월급이 줄어드는데 괜찮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완전한 사측의 입장에서는 저렇게 반응할 수 있구나.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6월 말부터 휴직을 했고 오늘은 오랜만의 월급날이었다. 사실 6월 급여는 100% 받았으므로 오늘이 줄어든 현금흐름과 나갈 돈을 계산하며 육아휴직의 현실과 마주하는 첫날이었던 셈이다.


우선 아침부터 아동수당과 영아수당이 줄줄이 들어왔다. 아동수당이 애 한 명당 각각 10만 원에 어린이집 보내기 전까지 나오는 영아수당은 돌 때까진 30만 원이다. 합쳐서 50만 원. 그래 봐야 용돈 수준이지만 나름 쏠쏠하다. 기저귀 값 분유값 정도는 된다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였다.


'7월 급여가… 뭐지 이게..? 분명 15일까지는 유급휴가인데...?'


원래 받던 월급의 반은 들어왔어야 했는데 실제로 들어온 건 예상했던 금액의 절반 수준이었다. 오전 오후 애들을 보면서 틈날 때마다 회사와 연락을 했다. 따져보니 분명 억지 논리인데 어쨌건 지금 준 게 맞으니까 더 줄 수 없다는 게 결론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자면 배우자 출산휴가가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하는 유급휴가인 건 맞지만 내 급여 중 일부는 통상임금이 아니라서 빼고 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더 찾아보니 일반적인 연차 수당이나 경조사가 있을 때 주는 유급휴가 역시 통상임금의 100%를 지급한다고 쓰여 있는 건 똑같았다. 지금까지 회사에서 이 휴가들을 썼을 때는 근무한 것과 똑같은 돈을 받았다. 나같이 그냥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평범한 사무직 회사원이면 이건 당연한 거다. 유급휴가라는 건 원래 이런 것이다. 근데 지금까지 우리 회사 역사상 처음으로 나의 배우자 출산휴가만 예외로 다른 기준을 적용한 거다. 배우자 출산휴가가 10일이 된 이후 쓴 사람이 애초에 내가 처음이라 했으니 그냥 이번에 나한테만 이런 셈이다.


'그래 한번 해보자 이거지...?'


정확히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어쨌든 원래 예상보다 최소 수십만 원 이상이 줄어든 셈. 그거 없다고 굶어 죽거나 쪼들릴 상황은 아니지만 충분히 빈정 상하는 액수다. 아마 열의 아홉은 그냥 주는 대로 받자 하겠지만 일단 다시 검토해보라고 장문의 메일을 썼다. 여차하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거라고 씩씩대며 말하자 아내는 난색을 표한다. 아내는 조금 손해 보더라도 분란을 일으키길 싫어하는 성격이다. 미움받을 용기도 나보다 없다.


그렇지만 아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곤 했다.


이번에도 다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일단 고용노동부에 이 상황에 대해서 상담을 받아 내 주장이 맞다고 하면 그걸 근거로 다시 회사에 추가 급여 지급을 요구한다. 만약에 그래도 안 주면...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냥 넘어간다. 어찌 됐건 앞으로 6개월은 더 그 회사에 적을 두고 있어야 나라에 육아휴직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양보는 거기까지다. 육아휴직 말미에 회사를 옮길 것이다. 반드시. 나는 이래 봬도 작년에 회사에서 가장 실적이 좋았던 팀의 팀장이었고 팀원 수도 7명이나 됐다. 나 하나 없다고 회사가 안 굴러가진 않겠지만, 분명 아쉬운 소리는 나올 거다. 또 이런 얘기도 나올 수 있다.


"기껏 육아휴직 6개월이나 써놓고 다른 회사로 가고 참 염치도 없네"


하지만 그 정도 미움은 받아도 된다. 이미 나는 마음을 굳혔다. 건방진 소리 같지만 나는 휴직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괜찮은 다른 회사로 옮길 자신이 있다. 그때 가서 서운하다고 붙잡아도 소용없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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