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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27. 2022

커피냅을 하세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4일째

7월 27일 수요일 맑음


잠은 참 중요하다. 인생의 거의 1/3은 잠자는 시간이다. 잠이 부족하면 예민해지고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오늘의 내가 그랬다.


오늘 새벽에 둘째의 아기침대가 있는 안방에서 처음 잠에 든 건 1시쯤. 내가 이른 새벽을 담당하고 아내가 늦은 새벽을 담당하기로 하고 각자 위치로 향한 참이었다. 조금 넉넉잡아 2시 반에서 3시 정도에 분유를 먹이고 자면 그 뒤에 5시~6시쯤에 아내와 교대하는 것이 우리의 예상이었다.


그러나 예상은 처음부터 빗나가 2시도 되기 전부터 둘째는 깨서 보채기 시작했다. 물 같은 응가를 하는 것이 배탈이 난 듯했다. 밤새도록 달래고 먹이고 트림시키고 배를 문질러주고 진정이 된 것 같아 잠자리에 누워도 다시 우는 소리가 들리기까지 채 30분을 버티지 못했다. 아내가 5시쯤 들어올 때까지 내가 잔 시간은 다 합쳐봐야 1시간도 안 되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밤을 새운 거나 마찬가지.


애가 배탈이 나고 싶어서 나는 건 아니지만 내가 극도의 예민 상태가 된 것도 내 잘못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 새벽에 돌발행동을 하고 말았다. 어제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가기로 했던 회사와의 문제에 대해 새벽 5시 반에 메일을 보낸 것이다. 물론 감정적으로 따지거나 일을 크게 만드는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를 달래고 재우고 잠을 못 자는 새벽 내내 그 문제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적어도 마지막 한 번은 솔직히 할 말을 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 끝에 낮에 미리 정리해뒀던 메일을 보낸 것뿐이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둘째 케어를 교대해준 아내와 대화를 하다가 잠을 다시 청한 것이 6시쯤. 다행히 둘째는 아침이 되면서 점차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고 배탈도 나아지면서 나도 뒤늦은 잠을 서너 시간은 잘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이렇게 잠이 심하게 부족한 날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커피냅'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 커피를 마시자마자 낮잠(Nap)을 자는 것을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원리에 대해선 차치하고 기본적인 내용만 설명하자면, 카페인의 각성효과는 약 20분 뒤에 나타나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고 바로 잠을 자면 카페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깊이 잘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약 20분 정도 낮잠을 자는 동안에 카페인의 영향으로 각성효과가 서서히 시작되고 그 이후에 잠에서 깨면 개운한 상태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은 커피냅 하기 딱 좋은 날이었다. 아내가 첫째와 시간을 보내며 요즘 살짝 느슨해진 애착형성을 강화하러 간 사이 나는 3시쯤 둘째를 재우고 커피를 준비했다. 3시 20분쯤 커피를 마시고 곧 자리에 누웠다. 참고로 커피냅을 할 때는 커피를 얼른 마셔야 한다. 첫 모금의 카페인 효과가 시작될 때까지 아직도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낮잠은 잘 수가 없으니까. 커피를 마시고 이불을 뒤집어쓰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들었다가 대략 30분이 지나지 않았지만, 8시간 자고 일어난 아침 같은 맑은 정신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딱 커피냅을 하는 그 30분 사이에 회사에 새벽에 보낸 메일의 답변이 와 있었다. 내 의견을 받아들여 덜 지급된 급여를 추가로 주겠다는 내용. 맑은 정신에 엔도르핀까지 분비되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예전에 대기를 걸어두었던 첫째 아이의 키즈 수영장 체험수업 자리가 났다는 전화도 받았다. 다음 주 금요일. 요목조목 궁금한 것을 확인하며 통화를 하면서 불과 오늘 오전까지 풀린 눈을 하고 병든 닭 같던 사람이 이렇게 똑 부러진 아빠가 될 수 있나 혼자 자화자찬을 했다.


그 사이 한참 동네 이곳저곳 다니며 첫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들어온 아내와 교대해 집 앞 놀이터로 나갔다. 물풍선 던지기부터 축구, 매미잡기 까지 야무지게 아빠 노릇을 하고 둘 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즐거운 샤워. 즐거운 저녁식사.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10시에 아이 둘을 재우고 즐거운 브런치 쓰기.


오늘 나의 하루는 커피냅 전과 후로 완벽하게 달라졌다. 여러분도 해 보시라. 커피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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