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바람이 필요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44일째

by 디내누

8월 6일 토요일 간헐적으로 비


8월의 첫 주말이다. 그래도 지난주까지는 매주 주말마다 뭔가 계획이 있었는데 이번 주는 없다. 사실 우리 부부는 원래 어디 돌아다니길 좋아하는 편이고, 맞벌이 부부 특성상 거의 모든 일정은 주말에 몰아서 다닐 수밖에 없었다. 휴직과 출산을 한 뒤에도 적어도 주말 이틀 중에 하루 정도는 뭔가 일정이 있곤 했다. 이렇게나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주말이 생소해 어제부터 아내에게 몇 번이나 물었다.


"여보, 우리 이번 주말에 뭐 하기로 한 것 없었나?"


심드렁하게 없다는 대답만이 매번 돌아올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어딜 가자거나 뭘 딱히 하자고 제안할 상황도 아니고 나도 별 생각이 없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아내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단유 마사지 예약을 해놔서 외부 일정이 잡혀있었다. 난 그런 것도 없다. 오전에는 첫째와 <로보카 폴리> 만화를 몇 개 보고 집에 있는 장난감으로 만화에 나오는 에피소드처럼 <로보카 폴리> 놀이를 해주었다. 그나마 오전에는 둘째가 아침잠을 길게 자서 둘 중 한 명이 첫째와 놀아주고 한 명이 집안일을 할 수 있었다.


오후부터는 이제 두 명을 봐야 했다. 애들 둘은 지금 해줘야 하는 것이나 사이클이 전혀 다르다. 한 명이 둘 다 보고 있으면 결국 점점 한쪽에 구멍이 생기면서 상태가 안 좋아지고, 그래서 그쪽을 신경 쓰다 보면 나머지 한쪽도 그렇게 된다. 그래도 부모가 다 있으면 한 명씩 대인 방어가 되지만 그 와중에 아내가 나갈 시간이 다가오자 괜스레 나도 모르게 신경질이 났다. 계속 우는 애 한 명과 계속 놀아달라고 하는 애 한 명을 동시에 데리고 잘 있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콘텐츠의 힘을 다시 빌려야만 했다. 오전에 두 개만 봤던 <로보카 폴리> 만화를 몇 개 더 틀어줬다. 그 사이 둘째를 재워보려고 애를 썼다. 결국 실패했다.


버티고 버티다 아내에게 지금 어디쯤이냐고 전화로 물어보는데 현관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예약해둔 마사지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아서 내가 더 멘붕이 오기 전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평소에는 멘탈이 이렇게 약한 편이 아닌데. 특히 육아 상황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는 나름대로 잘 대처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유독 어려웠다.


아무래도 야외활동을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질 것 같아서 첫째를 데리고 자전거를 타러 나왔다. 이 녀석은 만 2세 때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는데, 작고 보조바퀴도 달린 거긴 하지만 나름 혼자서 페달을 밟아서 제법 속도도 내고 코너링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어른 자전거를 타고 첫째는 어린이 자전거를 타고 같이 다닐 수 있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시로 신경을 써줘야 해서 속도를 내서 달리지는 못했지만 바깥공기를 맞으니 확실히 기분전환이 됐다. 첫째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가 아내에게 물건을 몇 개 사 온다고 하고 편의점에 다녀왔다. 끽해야 10분 정도지만 혼자 이렇게 나와서 바람을 쐰 게 얼마만인지.


그러고 보면 내가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아니라 '진짜' 바람을 쐰 것은 언제였나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최근에는 하루 종일 집 밖에 나오지 않은 날도 꽤 있었고, 집 밖에 나오는 날도 대부분은 아이를 데리고 어디 가야 해서 차로 주차장에서 다른 주차장으로 '이동'만 한 것이었다. 아이를 등하원 시키는 시간이 그나마 유일하게 바깥공기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지만 그 와중에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있을 여유는 없다.


'바람 쐬다'는 국어사전에 "기분 전환을 위하여 바깥이나 딴 곳을 거닐거나 다니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결국 내게 지금 필요한 건 그냥 이런 리프레시였던 셈이다. 아내도 나의 상태를 공감하고 오늘 첫째가 잠들면 밤에 나갔다 오는 게 어떻냐고 제안해 주었다.


오늘 밤에는 쓰레기 버리러도 아니고 물건 사러도 아니고, 그냥 좀 달리러 나가야겠다. 바람 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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