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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9. 2022

남편 이야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46일째

8월 8일(월) 호우주의보


호우주의보가 내린 날이다. 비가 말 그대로 억수같이 내린다. 월요일인데 육아가 주말보다 더 매운맛 같은 날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남편에게 더 그랬던 것 같다.


   결혼기념일에 남편과 스칼렛 요한센, 아담 드라이버 주연의 <결혼이야기> (aka. 이혼이야기) 같이 보고 서로의 장점 리스트를 적어본 적이 있다. 만일 지금  리스트를 쓴다면  아마도 이런 항목을 반드시 적을  같다.


우리 남편은 굉장히 긍정적입니다. 아주 조그마한 그린라이트에도 굉장히 기뻐합니다.


남편은 둘째가 조금만 쉽게 쌔근쌔근 자도 기대에 차서 이런 말을 한다.

"오늘 완전 푹 잘 것 같아."


 그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생각한다.

'아.... 지금 그 말만 안 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직 오늘이  가지 않았는데  지금  잔다고 내일 아침까지   거라는 기대를 할까? 그리고 그걸 굳이  말하는 거지?  성격으론 정말 이해가  간다.


  재미없는 타입인데, 어느 정도냐면 수능  가채점한  진짜 점수보다 10 정도나 낮았을 정도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기대에  미치는 상황을 맞닥뜨려 실망하는  너무 싫었다.


남편이 오늘 둘째가 정말 잘 잘 것 같다고 예언(?)한 날이 몇 번 있었는데, 그중 반 이상은 둘째가 끙끙대며 엄청 잠을 설쳐서 우리 둘 다 고생을 했었다. 그런 경우 남편은 문제 해결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얘가 왜 이럴까? 뭐가 문제일까?"


그럼  이렇게 말해준다.

"애기라서 그래. 신생아잖아. 오늘 이러다 내일 또 나아지겠지."


그럼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야!!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이유를 찾아내서 해결하자!!!"

(나) "..."


 위의 '문제 해결' 대한 말을 오늘 남편이  했다.  <결혼이야기> 장점 리스트를  하나 채울  있을  같다.


우리 남편은 해결사입니다. 무슨 문제든 원인을 찾아내 발본색원 하는 타입입니다.


나와의 대화에서도 '공감'보다는 '문제 해결'에 집중해서 내가 짜증 낸 적이 많았는데, 아마 남편이 둘째를 재우면서 "아 잠이 안 와서 괴롭구나"는 관점이 아니라 "왜 잠을 못 자니? 뭘 도와줄까?"라는 관점으로 아이를 대했을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우리 둘째는 딸인데 엄마처럼 자기감정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아빠가 답답하지 않았을까?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역시 상황을 지나치게 단정 지어 보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생아의 육아 패턴을 완벽히 파악하고 개선시키려는 남편의 MBTI  'T' 성격이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렇듯 남편이 둘째를, 내가 첫째를 담당하는 오늘 저녁이었다. 8시부터 둘째를 재우기 시작한 남편은 10시쯤 다크서클이  볼의 팔자주름까지 내려온 상태로 둘째를 안고 첫째와 내가 놀고 있는 첫째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문제(아이를 재운다) 해결하지 못해 굉장히 예민해진 상태로 보였고, 스스로 '  아이는 잠들지 못하는가'라는 의문에 빠져들어  답을 찾고 싶어 괴로워 보였다.


누구나 아이를 재우다 보면 예민해진다. 특히나 34  신생아를 키우다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  뜻대로 되는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당분간 둘째와 남편을  분리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와 둘째에 이어, 남편까지 분리 육아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잠시 허탈했지만 괜찮다.  단유 마사지를 받은 이후로  세상에 살고 있는 천사 엄마, 강철 엄마가 되었다.


오늘은 첫째, 둘째 모두  11시가  되어서야 잠들었다. 우리 뜻대로   아무것도 없다. 그렇지만 괜찮다.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거지. 그리고 이런 날도 그리워할 때가 온다. 결과적으로 애들  피곤에 절어  잔다. 오늘은 내가 새벽 수유 담당이니, 우리 남편도  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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