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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8. 2022

엄마는 이길 수 없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46일째

8월 8일 월요일 비


나는 어릴 때부터 아빠보다 엄마가 좋았다. 우리 아내도, 내 친구나 지인들도 아빠보다 엄마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열의 아홉은 그럴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새벽 수유 담당이어서 긴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며칠 전부터인가 둘째는 처음의 순한 양 같은 울음소리는 없어지고 걸쭉한 기합소리 같은 것을 많이 낸다. 점점 예민해져서 자주 울고, 수유를 끊고 쪽쪽이를 물기 시작한 뒤로는 빠질 때마다 다시 물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유일하게 가장 조용하고 깊이 자는 시간은 아침 7시가 넘어서부터 두세 시간의 아침잠이다. 예민하고 새벽잠이 없고 아침잠이 많은 것은 누구를 닮았을까. 아, 나구나.


하루 종일 많은 비가 오고 습해서인지, 아니면 천둥번개가 쳐서인지 몰라도 둘째는 오늘 낮에 평소보다도 잠에 푹 들지 못했다. 원래 신생아는 낮에도 두세 시간마다 잠을 자서 보통 깨어있는 시간보다 자는 시간이 더 많다. 근데 오늘은 아침잠을 늦게 10시께까지 잔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에 30분 이상을 안 잤던 것 같다. 이런 날은 부모도 힘들다. 아기가 잘 때가 마음 놓고 쉬거나 다른 것을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인데 그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둘째가 잠깐이나마 낮잠을 자는 사이에 아내와 부엌 정리를 해치웠다. 사실 어제 첫째 아이 방을 싹 구조까지 바꾸고 정리한 것이 워낙 마음에 들었던지라 내친김에 집안 곳곳 다른 구역들도 정리라도 다시 하기 시작했는데 부엌이 오늘의 타깃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어제도 그렇고 이런 일은 내가 하는 게 더 적합하다. 내가 아내보다는 당연히 힘도 더 세고 물건 옮기기라든가 높은 찬장 정리 같은 것도 내 일이다. 물리적으로 손 자체도 좀 더 빠르기도 하다.


이것도 날씨 때문인지 하원한 첫째도 그렇고 저녁부터 잘 때까지 아이들은 유독 엄마를 많이 찾았다. 분명 기능적으로는 내가 똑같이 해줄 수 있는 것인데도 엄마랑 하고 싶어 했다. 물론 둘째는 아직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하지만, 똑같은 것도 내가 해주는 것보다 엄마가 해줘야 더 효과가 있었다. 정서적 안정과 공감능력의 차이일까? 미묘하고 섬세한 손길의 디테일 때문?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냥 애들은 엄마를 세상에서 가장 좋아한다. 아빠는 덜 좋아한다. 그뿐이다.


조만간 둘째가 엄마를 부를 수 있게 되면 둘 다 양쪽에서 엄마를 부르고 나는 본체만체하는 장면이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된다. 결국 나는 그런 순간에 병풍이 되고 말 것이다. 어쨌든 엄마를 이길 순 없다. 지금까지 휴직 생활에서 너무 지나치게 내가 엄마 역할까지 해주려고 괜한 애를 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내와 앞으로의 R&R(Role and Responsibilities)을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아빠가 더 잘할 수 있는 일, 남편이 해줘야 하는 일, 그거나 찾아서 잘 하자. 그게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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