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 시작
2022년 추석연휴가 지나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요새 차선이 두 개로 겹쳐보여서 회사 갈 때, 손으로 한 쪽 눈을 가리고 운전할 정도야. 눈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안과 가봤는데 눈의 문제는 아니라고 하고 귀에 문제가 있나 싶어서 이비인후과 갔더니 거기서는 소뇌 쪽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으니 큰 병원을 가보라고 하더라."
사실은 그 때까지도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추석 연휴 때 친정 집에 갔을 때도 엄마는 같은 얘기를 했었다. 너무 어지러워서 음식을 준비할 수 없었다는 엄마는 사위들 보기를 난처해 하셨다. 장모 체면을 중요시했던 엄마가 명절에 음식을 하지 못한 적이 처음이었지만 나는 엄마를 믿었다. 엄마의 몸을 믿었다.
키 153cm에 40kg가 되지 않는 연약한 몸이지만 엄마는 어디가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병원을 열심히 다니던 사람이었고 무엇보다도 자식에게 폐끼치기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적극적으로 원인을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큰 사위가 대학병원 교직원이니 나에게 얘기하면 조금 더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엄마. 큰 병원에서 검사 받아보면 좋지. 내가 병원 예약할게."
생각보다 예약이 빨리 잡혔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엄마의 증상이 시작된 것이 한 달 정도 밖에 안 됐으니까 원인을 빨리 찾고 치료하면 금방 나으리라.
아니면 엄마의 스트레스가 심해서 잠깐 그렇다는 진단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앞으로 어떤 지옥이 펼쳐질 지 모른 채 그 때의 나는 너무 태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