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종양증후군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은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엄마는 더 걸음이 힘들어지고 말은 어눌해졌다.
우리는 점점 초조해지고 불안해졌다. 오히려 스테로이드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수간호사에게 문의를 하니 '스테로이드 부작용 중에 그런 증상은 없고 보행이나 말 어눌해지는 것은 뇌졸증 관련이다'라는 소견을 주었다.
"내가 아무래도 뇌졸증 증상 같은데. 딱 내 증상이 그런데..."
엄마도 뇌졸증 증상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ct상 뇌는 깨끗했었다.
동생은 지난번 혈액종양내과 진료 때 교수가 부종양증후군이 의심된다고 했었다고 했다.
<부종양증후군>
악성종양을 갖고 있는 환자에게서 종양 자체의 침윤이나 전이에 무관하고, 감염, 허혈, 대사, 영양 이상, 수술 또는 종양 치료와 관계없이 나타나는 여러 증상들을 통칭하여 신생물딸림증후군(부종양증후군)이라고 한다. 악성 종양 자체 또는 전이성 합병증이나 항암치료의 부작용보다는 훨씬 드물지만, 심한 신경계 장애가 나타나거나 사망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다. 숨어있는 종양이 정밀검사에서도 발견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작거나 신경계 증상이 나타난 뒤에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종양 증후군 [paraneoplastic neurological syndrome]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엄마의 증상들이 부종양증후군과 부합했지만 그래도 혹시 뇌졸증일 수 있으니 바로 응급실에 가보자고 했고 엄마는 한사코 거부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조직검사 결과가 빨리 나오는 것만이 엄마를 움직일 수 있었다.
월요일에 검사를 했는데 그 주 금요일 오후가 되어서야 결과가 나왔다.
"아..... 일이 머리 아프게 돌아가네요..."
병리과에 가서 결과를 듣고 온 남편이 말했다.
1. 조직검사 결과 암이 안 나왔다.
2. 외래시 아마 추가검사 판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3. 림프절에 암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고, 조직검사에 따른 원발부위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4. 복강경이나 외과 수술로 조직검사를 추후 진행할 예정으로 보인다.
암이 발견되지 않았다!
혈종과 교수는 암으로 인한 부종양증후군인 것 같다 하고 조직검사에서는 암 자체가 발견되지 않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조직검사를 할 것이지.'
'처음부터 정확히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조직검사를 해 달라고 할 걸.'
우리는 병원에 분노했고 그래도 수월하게 했다며 안심했던 첫번째 조직검사 순간의 우리 모습을 자책했다.
엄마는 또다시 병원에 입원해서 조직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급격히 기력을 잃어갔다.
이쯤 되면 무슨 병인지 알게 되겠지, 치료할 수 있겠지 했던 우리는 깜깜한 안개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다시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언제 퇴원하게 될까. 퇴원할 수는 있을까.
병원에 있는 동안 엄마가 영영 못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상황에 대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화를 내고 싶은데 그럴 대상이 없어 속에서 천불이 났다.
엄마는 기가 막힌 이 상황에 말수가 더 줄었다.
심지어 왼쪽 눈을 가리고 TV를 봐야할 정도로 한 쪽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했다.
엄마는 이제 눈마저 보이지 않게 되는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