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참.........'
조직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 가족을 허무함과 실의에 빠뜨렸다.
엄마는 분노했고 절망했다. 치료는 커녕 병명을 찾으려는 전의도 점점 상실해갔다.
병원에 있었던 일주일 사이에 급속도로 악화된 엄마를 보며 병명을 알지 못한 채, 치료도 시작하지 못한 채 엄마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부종양증후군을 가진 암환자는 예후가 좋지 않다는 교수의 말이 마음 속에 계속 얹혔다.
조직검사 결과를 듣고 엄마에게 전화로 전하고 아직 얼굴을 보러 가기 전,
엄마의 삶에 대해 엄마의 절망에 대해 생각했다.
늘 오래 살고 싶지 않았던 엄마.
삶이 고단해 항상 죽음을 생각했던 엄마.
하지만 이런 식의 죽음을 생각하지는 않았을 엄마.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가족은 거실이 따로 없는, 벽 하나로 방 두개가 되어버린 작은 복도식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역시나 아빠는 부재했고 엄마는 외로움을 넘어 고독했다.
동생과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바퀴벌레가 귓속으로 들어가 알을 깠다는 기사를 본 후 혹여 잠자는 사이 내 귀에도 들어갈까봐 이불을 귀 주위로 두르고 잔뜩 촉각을 곤두세웠다.
동생의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바퀴벌레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듯이 고요해지면 문밖에선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엄마는 거의 매일 소주를 마시고 흐느꼈다.
나는 어둠 속에서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엄마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 흐느낌이 본능적으로 엄마의 죽음과 맞닿아 있음을 느꼈었다.
엄마의 흐느낌이 잦아들고 또 다시 부스럭부스럭 정리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
지금쯤이면 엄마가 잠들었을까.
나는 조심스레 일어나 옆방으로 가서 검지손가락 하나를 엄마의 코 밑에 댔다.
손가락에 따뜻한 바람이 잠깐 스치면 그제서야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던 14살의 나.
엄마에게 가기로 한 일요일 오전, 엄마가 내 전화도 동생 전화도 받지 않는다.
불현듯 그 사이 엄마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날 그렸던 엄마의 죽음이 막연했다면 지금 엄마의 죽음은 구체적으로 상상이 되었다.
지금까지 갖고 있다던, 내가 중학교 때 샀다던 농약을 마셨을까. 목을 매었을까. 아파트에서 뛰어 내렸을까.
아니 그렇다면 가족들에게 연락이 왔겠지.
엄마의 구체적인 죽음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니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그 현장을 처음으로 목도하게 될 나에 대한 걱정과 무서움이 앞섰다.
"엄마가 지금 전화를 안 받아...엄마가 자살했을까봐 그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봐 너무 무서워. 집에 들어갔는데 그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하지?"
"언니... 내가 먼저 갈게. 언니는 엄마한테 복잡한 감정이라 만약에 그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나보다는 훨씬 힘들어질거야. 그것까진 하지마. 그건 내가 할게."
너는 나와 함께 겪었을 어린 날의 상처를 딛고 어른이 되고 있구나.
그리고 새삼 네가 언니같이 든든하게 느껴진다.
그래. 나는 그래도 언니지. 정말 그런 상황일지도 모르는데 너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아주 조금 정신이 차려지고 난 먼저 도착해 엄마 집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