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 들어가자 담배 냄새가 훅 끼쳤다.
그동안 그렇게 역했던 엄마의 담배냄새가 안도감을 줌과 동시에 화도 나게 했다.
"엄마! 의사가 담배피우지 말랬잖아! 정말 큰일나려고 그래!"
"내버려둬! 담배를 피우다 뒤지든 말든 내 하고 싶은대로 할거야!"
엄마는 청소기를 위태위태하게 잡고 어눌해진 말투로 화를 내며 울었다.
"병원에 내 발로 들어갔는데 병신되서 나왔어. 이번에 들어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조직검사를 할 거면 제대로 하던가. 내가 뭘 잘못하며 살았길래 나한테 이래?
암이라고 해도 치료 안받고 그냥 내 맘대로 하다가 죽을거야. 거기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느니 집에서
내 발로 움직이면서 살다가 죽을거야. 죽어도 걷다가는 죽어야지. 이게 뭐야!"
나는 그저 엄마의 절규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엄마였다면. 일주일 사이에 내 다리를 마음대로 못 움직이게 됐다면. 그래서 걷는게 무서워졌다면.
나도 엄마와 같았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그 때 그냥 죽을 걸 그랬어. 지금은 내 마음대로 죽을수도 없어..."
엄마는 동생의 결혼 이후 마지막 동거인을 떠나보낸 허전함과 상실감에 우울증과 죽음의 위기가 또 한번 심하게 왔었다.
그리고 엄마 입에서 '죽을 걸 그랬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난 아직도 청소기를 지탱하고 있는 엄마를 껴안았다.
"엄마 사랑해. 그런 말 하지마. 우리를 생각해서도 그런 말 하지마."
나도 모르게 절로 '사랑해'란 소리가 나왔다.
이런 내가 나도 낯설었다.
우리는 서로를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니 말해본 적이 있는 모녀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의 따뜻한 품, 따뜻한 손이 그리웠던 아이었지만 그것은 닿을 수 없는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엄마에게 아직 '우리'는 삶의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일까.
'우리'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안정되게 살아가는 모습이 엄마의 과업이었는데 그것을 다 이루고 난 지금 이제 더이상 '우리'는 엄마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는 이제 어떻게 삶의 용기를 내어야 하는 것일까.
한바탕의 대성통곡 후 동생이 왔고 엄마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으니 이제 너희들은 가라고 했다.
친구를 만난다는 말은 엄마가 혼자 있기 위해 하는 거짓말 같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던 우리는 곧 집에서 나왔다.
동생과 나는 지하주차장에서 오늘의 일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다.
지하주차장 출입구에서 엄마가 불안정하게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엄마다! 친구분 만난다는 게 맞았나보다. 지하주차장에서 만나기로 했나보네."
아직 세워져 있는 내 차를 엄마가 유심히 보길래 차에서 나왔다.
"너희 왜 아직 안가고 있어!"
"우리 차에서 얘기하고 있었어."
"빨리 가라니까!"
엄마는 휙 돌아서 다시 비틀대며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엄마를 감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나. 엄마의 등에서도 화가 느껴졌다.
좀 더 기다렸지만 엄마는 다시 내려오지는 않았고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