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입원을 설득하는 과정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걸어야했기에.
걸을 수 없게 된 이유를 찾으려면 암부터 치료해야 했기 때문에.
엄마가 생각하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엄마는 짧은 방황을 끝내고 이번에는 조직검사를 한다면 정말 확실하게 결과가 나올 수 있는 방법으로 해달라고 의사에게 꼭 신신당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입원하기 전 엄마와 나는 코로나 검사를 받고 우리집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남편은 저녁을 하고 우리는 핸드폰을 수시로 들여다봤다.
저녁을 먹고 있는 사이 엄마의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문자가 오고 우리는 짐을 싸서 병원으로 향했다.
하루라도 빨리 조직검사를 받아야 했기에 병동이 나는대로 들어가겠다고 했었는데 다행히 1인실 자리가 먼저 나서 입원할 수 있었다.
엄마는 두 번째 입원이라 더욱 꼼꼼히 엄마답게 짐을 싸오셨다.
엄마는 플라스틱 그릇에 야무지게 목욕용품들을 챙겨왔다.
도대체 병원에서까지 때수건은 왜 필요한 것인가.
양심과 비양심의 애매한 경계에 있는 행동이 나의 불편한 마음을 건드렸지만 이번에는 아무말 하지 않기로 한다. 이번에는 엄마의 등을 기꺼이 밀어줘야지 다짐한다.
몸을 자유롭게 쓰며 자신의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었던가.
엄마가 의자에 앉아 자유롭게 손을 움직이며 몸을 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찜질방 가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던 엄마에게 때수건 한장으로 병원에서 누릴 작은 행복을 뺏지는 말아야지.
정갈하게 짐들을 하나씩 정리한 후 엄마는 자리에 누웠다.
"엄마, 내일 애기 어린이집 보내고 짐 챙겨서 다시 올게."
엄마를 1인실 병실에 혼자두고 병원을 지척에 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치료가 아닌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에 엄마를 혼자 두고 오는 마음이 무거웠다.
병원에 대한 원망이 사그러들지 않은 채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이 상황이 자꾸만 애가 탔다.
이제 언제 퇴원할 수 있는 것인가.
도대체 언제 엄마의 병명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