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간 엄마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한걸음씩 떼며 그동안 집을 비웠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고, 화분에 물을 주고 심지어 분리수거통을 들고 밖에 나가 분리수거까지 했다.
아직은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엄마에게 안도감을 주었을 것이다.
엄마는 절망에 빠지려는 마음을 집안일을 하면서 다잡았다.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가을은 몇 번이 남았을까.
시한부 선고 아닌 선고를 받은 이 가을이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가을인 것만 같았다.
"엄마, 단풍보러 가자."
가족들과 단풍을 보러가기 위한 목적으로 어디를 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매년 가을 단풍을 보러 어느 누구와 어디든 갔었다.
이번에는 두 딸과 돌도 안 된 어린 손녀와 함께였다.
"여기 엄마가 자주 다니던 길인데.......오랜만에 온 사이에 저쪽에는 병원이 생겼네."
엄마가 자주 갔던 찜질방, 시장, 계양산이 휙휙 스쳐 지나갔다.
두 발로 꼭꼭 땅을 밟아 걸어다닐 수 있었던 불과 일주일 전의 시간.
우리는 기가 막혔지만 조카의 옹알이에 집중하며 자꾸 잊어보려 노력했다.
경치 좋은 카페를 찾아서 루프탑을 올라가려고 했더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서 계단으로 가야 했다.
"엄마, 올라갈 수 있겠어? 바람도 좀 차서 실내에 있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잡고 올라가면 돼. 풍경이 좋다고 하니 한 번 올라가보자."
걷는 것이 불편해진 엄마를 모시고 간 장소에서 마주하게 된 계단.
혼자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눈여겨봤던 카페에 다다랐을 때 계단밖에 없어 발길을 돌려야했던 난감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앞으로 엄마와 함께 할 외출에서 이런 난감함과 약간의 좌절감을 마주하게 되겠지.
우리는 당연했던 것들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는 손잡이를 잡고 위태위태하게 한발 한발 옥상까지 올라갔다.
"올라오길 잘했네. 멋있다. 너희 덕분에 올해는 이렇게 단풍을 보네."
계양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경이 예술이었다.
단풍은 짙게 물들고 있고, 적당히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따뜻한 차를 마셨고, 어린 조카는 우리를 웃음짓게 했다.
엄마는 짚을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을 떼고 멈추고 그 다음 무언가를 짚고 몇 걸음을 떼기를 반복하며 풍경을 감상했다.
"엄마, 어제보다는 좀 더 걸음이 괜찮은 것 같아. 아마 스테로이드 맞은지 얼마 안 되서 그럴 수도 있어요.
시간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질거야."
우리는 잠시나마 조직검사 결과에 대한 걱정을 접고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