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인생이 얼마나 남은 것일까.
조직검사 날짜가 잡혔다.
그러나 조직검사 할 부위가 많이 하는 곳이 아니라서 어떤 방법으로 검사를 할지는 검사실에서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조직검사 후 결과는 오래 걸려야 일주일 안에는 나오고 보통 퇴원해서 외래로 결과를 듣는다고 했다.
엄마는 '퇴원'할 수 있다는 말에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남편과 동생, 엄마는 조직검사 전 혈종과 교수를 만나 그 전에 찍은 영상자료를 보며 매우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1. 요도 부근의 커다란 mass는 pet-ct에서는 크게 보였지만 이후 ct에서는 작아진 걸로 보임. 조영제가 빠져나가면서 작아진 것 같음.
2. 문제는 배 아래쪽 임파선이 많이 커져있는 것. 조직검사가 어려운 부위라 방법을 고려중임.
3. 조직검사에서 암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정보가 안 나올 수도 있음. 원발부위 미상으로 나오는 경우가 15프로 된다고 함.
4. 신경과적 증상(어지러움 등)을 동반한 경우 예후가 좋지 않아 빨리 검사를 해야 하므로 주말이 끼어도 혈종과로 입원하도록 함. 치료를 해야 신경과적 증상이 나아짐.
5. 척수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소변검사 결과는 대기중임.
6. 원발부위를 확인해서 치료에 들어가는 게 가장 중요함.
설명을 듣고 불과 한 시간 뒤 국소마취를 한 후 주사기로 조직을 떼어내는 방식으로 조직검사를 했다.
4시간 동안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다음날 퇴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력을 찾는 듯 보였다.
크게 고생하지 않고 조직검사를 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오늘은 좀 걸음이 어떤 것 같니? 말투는 어떤 것 같아? 말하는 게 어제보다 좀 힘들어졌는데..."
"엄마, 내가 느끼기에는 어제랑 별 차이 없어. 걷는 거랑 말하는 거랑 어제랑 비슷해."
엄마는 자고 일어나면 더 못 걸었고, 자고 일어나면 말이 더 어눌해져 있었다.
무서웠다. 이러다 아예 걸음을 떼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엄마가 주저앉게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말을 할 수 없게 되버리는 것은 아닐까.
조직검사 후에 좀 더 입원하면서 신경과 진료를 받아보자고 해도 설득되지 않았다.
엄마도 스테로이드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강력하게 뇌리 속에 박힌 듯 했다.
다음날, 퇴원을 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고 퇴원수속을 밟았다.
대학병원은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곳이었다.
퇴원 수속을 밟는 것도 한참이 걸려 진을 뺐다.
그래도 어떻게든 퇴원을 하기 전에 교수를 만나 어제 조직검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오래 대기한 덕분에 동생은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1. 요도, 방광 등 기관쪽에 암을 특정할 만한 게 보이지 않으나 완전 배제하고 있지는 않음.
2. 하복부 다발성이기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하고 4기로 예상함. 항암치료로 진행을 막는 정도의 치료가 목표. 완치는 어려움.
3. 신경학적 증상이 있을 경우 암진행이 빠를 수 있고, 치료가 더딜 수 있다고 함. 암이 심하다고 해서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암치료가 되더라도 신경학적 증상이 남을 수 있음.
4. 담배는 반드시 끊어야함.
5. 현재로선 임파선암이라고 봐야할 것 같음.
동생이 얘기를 듣고 와서 엄마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지 없는지 전날 혈종과 교수와 함께 들은 내용을 확인차 물어보았다.
엄마는 함께 있었지만 교수의 설명을 자세히, 정확하게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암이 아닐 수 있다고 아직 확신할 수 없다고 도리어 지금부터 암환자 취급하지 말라 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더 자세하게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엄마에게 암에 관한 얘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엄마는 그렇게 첫 퇴원을 했다.
두 발로 걸어서 간 병원이었지만 이번에는 부축을 받아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시간 학교에 있던 나는 무슨 정신이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이 현실인지 정말로 일어난 일인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꾹꾹 참고 수업을 하고 보충수업까지 마쳤다.
끝까지 학교에서 울지 않고.
운전대를 잡자 마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흐려지는 눈을 꾹꾹 짜내며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남편도 아이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빈 집에서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퇴근한 남편은 울고 있는 나를 그저 안아 주었고, 내 아이는 작은 손으로 연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교수의 말 하나하나가 엄마는 이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려움이 현실이 되니 어찌할 바를 몰라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울었다.
"어떻게 해.....우리 엄마 어떻게 해.....우리 엄마 죽으면 어떻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