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로이드
"감각은 다 살아있는데 무릎 밑이 마음대로 잘 움직이지가 않아. 말하는 것도 좀 느려지고 말하려면 힘들어."
엄마는 지난주 어지럼증 센터에서 받은 검사 이후로 상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입원하고 나서부터는 걷는 것과 말하는 것이 계속 힘들어진다고 했다.
혈액종양내과로 병동을 옮긴 이후로 동생은 급하게 짐을 싸서 병실로 들어갔다.
아직 코로나가 끝난 상황이 아니라 보호자로 상주하려면 신속항원 검사도 받아야했고, 음성 결과가 나와야지만 들어갈 수가 있었다.
회진을 돌 때 신경과 교수에게 엄마의 증상에 대해서 얘기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럼 일단, 오늘부터 3일간 스테로이드를 투약해보도록 하죠."
우윳빛깔의 스테로이드가 엄마 몸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첫 날 들어간 스테로이드에도 엄마는 너무 고통스러워했다.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고, 열이 났으며 걷는 것은 더 부자연스러워졌다.
앉는 것도 누워있는 것도 고통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혼자 걷는 것이 점점 힘들어졌으며, 말은 점점 느려지고 단어가 뭉개졌다.
"오늘은 엄마 걷는 게 좀 어때? 말하는 건 어때?"
"어제보다 더 안 좋아. 말도 어눌해지고 엄마가 말하는 게 점점 힘들대."
나와 동생은 전화로 매일 엄마의 걷는 것과 말하는 것을 체크했다.
어제와 비슷하다는 답변은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매일 그 전날보다 상황이 안 좋아졌다.
이제는 누가 옆에 있지 않으면 거동이 힘든 상황까지 왔다.
불과 일주일도 안되는 사이에.
"내가 너한테 그때 괜히 얘기했다. 그냥 동네병원에서 끝내고 검사 받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텐데. 내가 후회가 막심하다. 정말."
스테로이드 때문에 엄마 몸이 이렇게 됐다는 인과관계가 머릿속에 박힌 이후로 매일같이 스테로이드 부작용을 검색했다.
스테로이드 때문에 걷는 것이 안 될 수 있는지 말이 어눌해지는 경우가 있는지 매일 찾았다.
심지어 신경과 교수가 잘못 투약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닐까, 간호사가 잘못 투약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검사도 없고 회진도 없는 주말. 병원 근처에 있는 잔디밭으로 산책을 가기로 했다.
바깥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엄마 기분이 좀 나아질까.
손주의 재롱을 보면 엄마 기분이 좀 나아질까.
엄마를 병실에서부터 모시고 오는데 저 멀리서 우리 아들의 앙칼진 울음소리가 들린다.
넘어져서 손가락을 다친 듯 남편이 아들을 안고 맞은편에서 오는데
"저거 다쳤다고 저렇게 우는거야?"
우리에겐 까칠한 엄마였어도 손주에겐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엄마는 마음마저 퍽퍽해져갔다.
근처에 돗자리를 깔고 엄마를 앉혔지만 제대로 앉을 수도 그렇다고 누울 수도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이 지속되었다.
"엄마, 병실로 들어갈까?"
"아니, 바깥 공기 마시니까 그래도 조금 나은 것 같아."
엄마는 돗자리 위에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내 손을 잡고 운동장 한바퀴를 겨우겨우 산책했다.
그리고 손자가 입에 넣어주는 김밥을 꾸역꾸역 먹어 보았다.
"이제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