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치 Nov 22. 2023

어머님,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가 1차 항암하고 퇴원하기 전, 아이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혹시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요?"

"아...외할머니도 편찮으시다 들었는데 괜찮으신가요? 어머니께서 경황이 없으실 것 같지만 오늘은 말씀을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네.... 무슨 일이실까요?"

"OO가 놀이하거나 밥을 먹을 때 고개를 기우뚱하게 있는 경우가 자주 있었어요. 그럴때마다 고개 예쁘게 해보자하고 말해줬었는데, 며칠 동안은 거의 머리가 어깨에 붙어있을 정도로 한동안을 기울이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한쪽 방향으로만요. 목 부분을 만져봤는데 약간 멍울도 잡히는 것 같아서 말씀을 꼭 드려야할 것 같아서요."

"아...... 혹시 언제부터 그랬나요?"

"제가 보기엔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고서부터 빈도가 점점 늘어난 것 같아요. 어머님이 집에 매일은 못 들어가시죠? OO도 나름대로 이 상황을 견디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그 자세가 본인한테 편한 자세이니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병원에 꼭 데려가볼게요.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잠시 머리가 띵했다. 

내가 왜 몰랐을까. 

100일이 되기 전에 사경이 발견되어서 대학병원에서 검사도 받고 물리치료도 받았었던 아이었는데.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고개가 바르게 된 것 같아서 사경이 남아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왜 나는 안일하게 생각했을까. 

그동안 계속 사경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최근 들어서 다시 생긴 것일까. 

아이의 어렸을 때 사진을 계속 넘겨보며 언제부터였는지 찾아봤다. 

하.... 나는 망연자실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진 속 아이의 고개가 계속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었는데 그걸 여태까지 모르고 있었다. 

왜 몰랐을까. 도대체 왜 약간의 의심도 없이 사라졌던 거라고 믿었는지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아이가 제일 편한 자세를 취하며 이 상황을 견디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의 아들. 


전화를 받고 몇 시간 뒤 아이를 하원시키러 갔다.

"선생님.... 제가 왜 몰랐을까요...."

눈물이 터졌다.

"모르실 수도 있어요. 저희는 아이를 잘 관찰하는게 저희 직업이고, 어머니는 OO랑 생활을 하시는 거니까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여러번 내 등을 쓸어주시는데 나는 그것으로 위로받았다. 


며칠 뒤 분당서울대병원 재활의학과에 진료를 잡았는데, 아들이 눈이 나쁘다보니 초점을 맞추기 위해 나름 편안한 자세를 찾은 것일수도 있고, 목과 척추에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는 소견을 받았다. 

다시 안과와 정형외과에 가서 그쪽에 원인이 있는지 확인해봐야했다. 

다행히 안과에서는 시력으로 인한 사경은 아니고, 정형외과에서는 멍울은 없고 척추의 문제도 아니지만 양쪽의 근육의 길이가 다르다는 답변을 받았다. 확실히 고개가 기울어진 것은 맞지만 지금 아이 나이에 물리치료는 효과가 없고 수술밖에 방법이 없는데 수술할 정도의 기울어짐은 아니라 1년 뒤에 경과를 보자고 했다. 


아이의 고개가 한 번 눈에 들어오니 그것밖에 안 보였다. 어린이집의 다른 아이들을 봐도 고개밖에 안 보였다. 

분명히 고개가 기울어졌는데 이대로 가만히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1년 뒤에 경과를 보러 가기에는 애가 탔다. 

사경으로 유명하다는 병원 몇 군데를 전화해서 다시 예약을 하는데 그 중에 정말 유명한 병원은 1년 뒤에나 예약을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다른 병원가서도 진료를 받아보았지만 사경은 맞는데 분당서울대에서 안과와 정형외과 문제는 아니었다고 하니 더 속시원한 답변을 받지 못했고, 물리치료를 해보자고 했지만 그것도 워킹맘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집에서 아이 목을 마사지해주거나 바른 자세로 앉아있자고 말하거나 스트레칭해주는 것이었다. 

엄마가 퇴원하시고 내가 매일 집에 있으니 그 이후 아이는 많이 좋아졌고, 실제로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고 말씀하셨다. 


'힘든 일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그 텍스트는 진짜였다. 





작가의 이전글 1차 항암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