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May 30. 2018

[대만 섬 시리즈-란위(7)] 기상대 노을

란위 섬 정상에서 맛 보는 선셋

* 이번 글부터는 문체를 일기체로 바꿔 봅니다.

란위에도 도로가 깔려 있긴 하지만 모두 2차선의 극히 기본적인 형태의 길로 매끄럽게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비좁았다.
일방통행에 가까울 정도로 좁은 길에 행여나 산비탈길에서 반대편에서 차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초조함을 안고 차를 몰아야 했고 일부 마을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올 가축들에 주의하기도 해야 했을만큼 란위에서의 운전은 주의를 필요로 한다.

기상대로 가는 길도 구비구비 산길을 올라야 했는데 딱히 표지판 같은 게 잘 없어서 지도를 보며 예인(野銀) 마을 뒷편 산자락을 여기저기 훑어야 했다. (딱히 비밀 통로는 아녔지만) 길 찾기가 쉽지 않아 마치 게임에서 다음 이벤트로 향하는 길을 찾듯 좌충우돌하며 통로를 찾았고 찾았을 때는 나름의 희열도 느낄 정도였다 ㅎ

어디서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나는 저런 길을 올라온 것이었다.

일정 포인트까지 올라오니, 도로는 뚫려 있었지만 그 이상은 차가 진입할 수 없다는 표지판을 두고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갔다.
(근데 알고 보니 일부 오토바이를 탄 여행족들은 그대로 오토바이 타고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조금 귀찮았지만 그래도 규정대로 차에서 내려 하이킹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보았다.
사람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서 그런가 확실히 평소에 보지 못했던 식물들(flora and fauna)이 눈에 띄었다. 아주 빽빽히 들어찬 수풀과 나무들...

기상대까지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짧지 않았고 직선으로 오르는 게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비탈길이 가팔랐던 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바람도 세서 마치 산이 우리를 오르지 못하게 하려고 기를 쓰는 건 아닌가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와중에 히로미쨩은 지친 기색인지 히마리도 좀 없어 보였다 (히로미, 히마리 뭔가 자매 이름 같기도 ㅎㅎ)
그래서 가람님 셀카 찍는데 분위기 좀 띄워 볼까 하여 귀요미 포즈를 잡아봤는데 여전히 히로미의 표정은 굳어 있다 ㅎ

그래도 구비구비 코너를 돌 때마다 이런 멋진 파노라마를 볼 수 있어서 오르막길이 그리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난간에 올라 찍은 파노라마.. 저 아래에 보이는 게 예인 마을, 그 앞에 펼쳐진 바다가 바로 태평양이다.

점점 기상대에 가까워 간다.. 
이게 사진으로 보면 모르겠는데 막상 저 경사를 걸어가 보면 나름 스릴이 넘친다.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은 다리가 후들 거릴지도 모르겠다 ㅎ

여기도 화산섬인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산맥이 있는 걸로 봐선 아닌듯)
란위의 중앙은 제주도처럼 높은 산이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수평선을 볼 수 있다는 건 란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드디어 기상대에 올랐다...
지어진 지 꽤나 오랜 세월이 흐른듯한 기상대...
관리원의 인기척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직원들이 퇴근을 한 건지 아니면 일주일에 며칠만 관리가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석양 관람객의 발길만이 기상대의 활력소가 되어 있는 듯 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을 때의 애로사항 중 하나는 건물과 배경 모두를 알맞은 빛으로 찍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는 점... (특히 이런 역광 시츄에서...)

태양의 위치를 보니 아직 해가 산 뒤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시간이 좀 있어보여서 기상대 주변을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나마 좀 현대식 기상대 뒤에는 옛 기상대 건물로 추정되는 폐건물이 있었다...
양식을 보아하니 일제시대에 지어진 것 같기도 한 이 건물...

안에는 열대 식물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고 흡사 식물원과 같이 변해있었다.
왠지 쥬라기 공원에서 공룡들에게 지배되어 폐허가 된 그런 연구소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먼지는 아닌 것 같고 수분 사이로 빛이 들어오니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든다.

예전에는 유리창이라도 달렸을 법한 창틀..
그 옆으로 앙증맞게 아직도 꽂혀 있는 화분들...

동그라미 창틀도 있는 걸 보면 연구소라기 보다는 이곳에 상주하던 누군가를 위한 주택이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당시에 여길 어떻게 올라왔을 지 잘 상상은 되지 않지만 만약 지냈다면 주변에 마당도 있고 풍경도 좋으니 참 운치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태풍 때는...음... 상상하지 말자...

집 안에서 자란 나무가 저렇게 클 정도이니 이 터의 폐가 역사가 대략 짐작이 간다.

자연스러운듯 자연스럽지 않은 설정샷들...
나는 동양인으로는 흔치 않은 앞뒤짱구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짱구와 관련된 많은 별명들이 붙여졌었는데 그 중엔 두상이 마치 외계인 같다고 '위제트'란 별명도 있었고, 옛 중학교 도덕선생님은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싶긴 한데 '압구정'이란 별명을 지어줬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황당무개한 소리인가 싶지만 아마도 짱구의 어감에서 그렇게 붙이지 않았을까 싶다.)
여튼 머리카락이 붕 떠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옆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 정말 엄청나게 돌출되어 있는 건 확실한 것 같다..

폐가 뒷편에는 오두막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이 경치를 아까워 한 거주자가 풍광을 음미하며 수박도 잘라 먹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풍악도 울리려고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경쾌한 노래소리가 들려 봤더니 어떤 남녀 커플이 그곳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자는 서양인 같았는데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격정적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나름 저 오두막에 올라 서 보고 싶었지만 둘의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 그대로 모른 척하고 길을 비켰다.

다시 폐가로 들어가보니 남자 둘이 아주 엽기적인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크로바틱에 빠져 있는 친구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름 창의적인 포즈라고 생각했다.

이제 기상대 언저리를 돌면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렸다.
아직도 시간이 남아 여기저기 풍경 사진과 인물 사진을 찍어보았다.

대만의 산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한국은 일제시대 때 벌목을 많이 당해서인지 반도에서의 문명/역사가 길어서인지 수림이 그리 빽빽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데 대만본섬도 그렇고 특히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았던 란위를 보면 그야말로 정글/밀림을 연상시킬 정도로 산이 식물들로 빽빽하게 덮여 있어 마치 초록색 융단을 보는 것과 같다는 인상을 많이 받는다.

평소에도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정상이라면 태풍 시즌엔 어떨가...=_=;;;

그러고 나서 심심해진 우리는 점프샷을 찍어보기로 했다...

뽀잉~!

얏호~!

폴짝~!

연속샷으로 찍어서 보니 재밌다.

셀카 말고 단체 샷도 찍어달라고 했는데, 컨셉은 '날치'였던 걸로 기억한다. ㅎㅎㅎ
근데 고지대여서 어지러워서 그랬는지 바람이 강해서 그랬는지 한 다리로 서있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서 꼭 한두명이 포즈를 유지하지 못해 이렇게 여러 장을 찍게 되었고 본의 아니게 촬영 부탁한 분께 민폐를 끼쳐 드렸다.
(그 분도 우릴 보면서 참 웃긴 녀석들이라 생각했는지 멋쩍은 웃음을 지었었다.)

이제 슬슬 노을이 지고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려고 해서 석양의 방향으로 걸어가 보았다.

매번 석양을 보면서 새삼 드는 생각이지만 해가 상당히 빨리 움직인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항상 무언가에 열중해 있을 때에는 그것의 상태가 어떤지 모르지만 그 과정의 끝에 다다르면 평소에는 신경 쓰지 못했던 작은 것들이 꽤나 크게 그리고 도드라지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정 들었던 곳, 사람을 떠나 보내야 할 때, 당시 당연했던 것들이 달라져 보이는 것처럼..
태양도 우리 머리 위에 지나갈 때는 그 속도를 실감하지 못하는데 저렇게 숨을 거두기 직전(?)의 태양을 보면서는 그 속도를 실감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10분인가를 보고 있었다. 

어딜 가도 그렇지만 오렌지 빛으로 번지는 노을은 참 아름답다..

산이 아닌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는 또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란위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는 노을이어서 나름 더 값졌던 것 같다.

아직 이걸로 이 날의 투어가 끝은 아니지만 오늘도 이렇게 란위를 만끽했다는 뿌듯함에 산을 내려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 섬 시리즈-란위(6)] 섬 일주 비경 헌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