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에서 날치와 추는 탱고
6시경 해가 지고 산을 내려와 해변가로 나오니 황혼(twilight)이..
우리가 온 곳은 다름 아닌 점심에 들렀던 바로 그 해변가의 카레 맛집!
여기에 다시 온 이유는 점심 때 양껏 먹지 못했던 카레에 대한 나의 갈망과 마침 민박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도 했기 때문...
이번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닭다리 카레를!!
히로미쨩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덩달아 카레를 주문...
그리고 매버릭인 가람님은 돼지고기 정식...
허허... 근데 남이 떡이 꼭 커보이는 걸까...
이것도 은근 맛있어 보인다...
그치만 난 카레로 이미 너무 행복했다... 정말 내 인생 카레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무치게 맛있었다 ㅠㅠ
맛집이 적은 이런 섬에서 먹기 때문인 걸까? 이건 마치 군대에서, 특히 훈련소에서 먹는 밥은 뭐가 나와도 맛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밥을 다 먹고 나니 해변가엔 어둠이 슬슬 깔려온다.
수평선 너머로 번져오는 저 붉은 색은 언제봐도 아름다운 것 같다.
뭐랄까 시골 바닷가의 정취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난 이런 정취가 너무 좋다...
영화 같은 데서 보면 헐거운 민소매 티를 입은 마을 청년이 와서 "마스타~ 여기 카레 한 그릇이랑 음료 한잔~"
딱 이렇게 주문하면 주방장 아저씨는 그 음료가 뭔지 묻지 않아도 그냥 딱 내오는 ㅎㅎ
카레를 우걱우걱 입으로 넣으며 정겹게 그 날 일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 밥값을 테이블에 놓고 "그럼 저 갈게요~" 이러면서 자전거나 오토바이 몰고 길 저편으로 사라지는 그런 장면..
후우~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배까지 채워지니 행복과 만족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
민박 투어 중에 오징어 낚시배 투어랑 날치 낚시배 투어 중 어느 것을 갈까 셋이서 막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곳 특유의 해산물은 뭐니뭐니 해도 날치이니 날치 어선(?)에 오르기로 결정!
출항은 8시부터라고 하니 일단 집에 가서 좀 쉬기로 했다.
8시 즈음 집을 나서려고 하니 이미 세상은 어둠에 잠겨있고 얼마 전 약간 찌그러졌었던 달의 모양이
보름달 모양으로 동그랗게 많이 살이 차 올랐다.
항구에 도착하니 아직 어선이 보이질 않는다.
좀 일찍 도착했나 보다.
항구엔 그 어떤 빛도 없었다. 그래서 머리 위를 올려다 보니 이게 왠 걸...
별로 가득한 은하수가 펼쳐졌다...+_+
그렇게 우리 셋은 감탄사를 외치며 목이 꺾여질 기세로 계속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별이 얼마나 많고 밝으면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별이 몇 개 잡히는 걸 볼 수가 있다~
북두칠성 등 유명한 별자리를 찾으며 배를 기다려본다.
8시가 되니 조그만 배 한 대에 불이 켜진다.
아마도 저 배인듯 하다... 오늘 우리를 싣고 저 시커먼 망망대해로 나갈 배..
그리고 속속 오늘 투어 참가자들이 도착하니 선원들은 구명 조끼를 하나씩 나눠 줬고 간단한 안전수칙에 대한 설명을 마치고 우리는 바로 배에 올랐다.
조그만 배의 엔진소리가 밤바다의 적막을 깨고 항구를 잠에서 깨운다.
배에는 민박집 소년 (이름을 까먹었는데 그냥 민박집 이름 따서 "빠양"이라고 부르겠다)도 동승했다.
빠양은 5년 전에나 봤을 법한 디카를 들고 투어 손님들 찍어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녀석은 이 배를 수십번도 더 타봤을 거 같은데 매너리즘에 빠진 기색 없이 에너지가 넘쳤다 ㅎㅎ
항구를 빠져 나오는 배...
어두워서 잘 잡히진 않았지만 항구 앞 언덕에 있는 등대가 저 멀리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배가 어느 정도 나가서 날치가 출몰하는 지역에 가까워지니 선원들이 일부 승객들에게 저런 망과 헤드라이트를 나눠줬다.
우리는 초반에 셀카 찍고 있느라고 그런 사실도 모른채 있다가...
배 앞으로 가니 이미 선원들이 쌍라이트를 켜고 날치를 찾고 있었다.
앗, 저기 날치 한마리가 휘휘휙 헤엄치는 찰나!!
여기저기서 날치의 출몰에 환호를 지르기 시작하니 텐션도 슬슬 오르고 가슴도 콩닥콩닥~
망을 가진 승객들과 선원들이 하나 둘 씩 날치를 퍼서 배 위로 던진다..
그야말로 패대기를 치면 날치가 배 위에서 파닥 거린다...
처음 한 마리가 휙 날라왔을 땐 날치 몸부림의 역동성에 깜짝 놀랐다..
가까이서 보니 날치의 등이 정말 사파이어만큼이나 시퍼렇다..
가뜩이나 파닥거리는 물고기 봐도 놀라운데,
물고기에 심지어 날개가 달려 있으니 더 놀라울 따름이다...
(원래 새가 푸드득 거리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나이다..ㅠ)
그래도 정말 가까이서 처음 보는 광경이라 그런 지 정말 보고 또 봐도 신기해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재밌는 건 바닷물 속이 아니면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어서인지 날지는 못하고 파닥일뿐...
살짝 안쓰럽기도 하더라...
그치만 이건 또 이 선원들의 또다른 생계수단... 참 이 세상살이가 누구에게도 쉽지 않고 그건 날치에게도 예외 없다..
처음엔 어둠 속에서 대체 어떻게 날치를 찾아내나 했는데 가만히 바닷속을 주시하고 있으니 뭔가 빠른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종종 날치가 바다 위로 뛰어 오르면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곤 했다.
나도 망과 헤드라이트를 구해서 날치 사냥에 나서 보았지만 날치는 내 눈이 느끼는 거리보다 더 물 속 깊이 헤엄쳐서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다른 참가자들은 하나 둘 날치를 낚기 시작하는 걸 보며 좀 초조해졌다...
선원들이 날치와 같이 사진 찍어보라고 해서 이런 거에는 사양 없이 얼른 도전해 보는 게 바로 나...
포즈도 아주 재치 있게 '날치와의 뽀뽀' 컨셉으로...
실제 날치를 집어보면 비늘 때문인지 겉이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엄청 맨질맨질 미끌미끌하다...
어느덧 항구에서 꽤나 먼 곳까지 온 모양이다.
멀리 항구와 마을의 불빛이 보인다.
그치만 마을이 작아서 불빛마저도 드문드문 있다.
란위의 근해는 이렇게나 맑다...밤에라도 불빛만 비춰주면 투명한 에메랄드 바다...
이 아래를 제비가 비행하는 것처럼 빠른 몸놀림으로 날치가 왔다갔다...
노인과 바다에서의 노인처럼 날치잡이를 위해 사투를 벌여봤지만 결국 허탕을 치고 만다..ㅠㅠ
아마 배 위에서 날치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룹은 아마 우리 그룹뿐이었으리라...ㅠ
아쉬움을 머금고 바다 위 달과 별로 마음을 달래본다..
저 멀리 오늘 오후에 갔었던 산 위 하얀 란위 등대가 희미하게 보인다...
등대 불빛이 휙휙 돌면 그것도 나름 멋질 거 같은데 이젠 운영을 안 하는지 어둡다.
날치의 선택(?)을 받지 못해 착잡한 마음을 달을 상대로 풀어본다 ㅠ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빛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밤바다인데
그래도 오늘은 달과 별빛이 밝아서 운치 있다.
결국 날치를 낚는데는 실패했지만 란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투어에 참가한 것만으로도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배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