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케에 일본 멜로디가 필요할 때
대만에서 2년반을 살고 나서야 처음 먹어 본 타이베이 양꼬치 집을 나서고 나서의 일이다...
대만의 여름도 한국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여름이 되면 장마가 오고 몇 주간에 걸져 징그러울 정도로 비가 내린다.
보통 오후에 잠깐 소나기가 쏟아지고 그 외에는 추적추적 기분 나쁜 비가 뿌려 대는 그런 날씨다.
양꼬치 집을 나서고 가람님의 인도로 우리 다섯은 정처 없이 비오는 타이베이 밤 거리를 걷는다.
양꼬치 집 앞 길다란 횡단보도가 채찍질이라도 받은 얼룩말의 가죽처럼 보였다.
매번 보던 횡단보도가 왜 달라보일까 생각해보니 반듯하지 않고 비스듬히 그려져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빗속에서 한 10분을 걸었나 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발이 멈춘 곳은 은은한 분위기의 한 이자카야였다...
비도 오고... 뭔가 사케가 땡기는 그런 날이었다...
이 집 바로 앞에는 이자카야와는 정반대의 북유럽 어딘가에 있을 법한 모던한 바가 있었다...
다섯 명이서 잠시 어딜 가야할 지 서로에게 결정을 미루고 있었지만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다들 이자카야를 찍고 있었던 것인지 결국엔 이자카야를 택하기로 했다.
이 사진만 보면 대체 여기가 일본인지 대만인지 헷갈릴 정도로
대만의 거리는 일본처럼 좁고 일본스러운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
아마도 한국은 일제의 잔재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그런지 일본의 서민 가옥의 겉과 속 분위기까지 재현된 일식집은 거의 못 본 듯 하다.
드르륵...
나무 창살의 여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정겨운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이건 라이브 재즈 바도 아니고 엔카(일본 트로트) 바인 것일까...?!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멜로디가 너무 동요스럽다...!!
자리에 앉아 메뉴에는 집중하지 않고 다들 공연에 심취한다...
심지어 점원도 서빙할 생각 않고 라이브 가수에 눈길을 돌린다...
약간 설겁게 동여 멘 두건이랑 묘하게 겹치며 이 직원의 직업 정신이 괜히 못 미덥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ㅎㅎ
겉에서 본 가옥의 모습에 걸맞게 안에 있는 처마며 장식들도 클래식한 느낌이다..
일본 마을 역 근처에 있을법한 동네 아저씨가 하는 그런 친근한 술집의 분위기라고나 할까.
가만 들어보니 너구리 같이 생긴 저 일본분의 입에서 나오는 건 다름 아닌 지브리 스튜디오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토토로'의 노래였다!! 그 외에도 한 때 일본 문화에 심취했었던 나에게도 향수를 불러 일으킬 법한 노래들을 연거푸 불렀다.
닛폰형께는 실례가 될 지 모르겠지만 나름 간사한 외모와는 다르게 목소리는 그렇게 까랑까랑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센스 있게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부르니 저 통기타가 샤미센(일본 전통 기타)으로 둔갑할 정도로 비쥬얼이 잘 녹아들었다.
양꼬치집에서 적지 않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에는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약간 아쉬웠던 점이라면 난 십중팔구 이자카야에 가면 사시미가 들어간 메뉴를 적어도 하나는 시키는데 이 집은 사시미 종류 메뉴가 없었다는 것...
타누키 같이 생긴 형이 기타치며 열창하는동안 우리는 서로 뭐 먹고 싶냐고 여느 때처럼 결정을 또 서로에게 미뤘고 결국은 가람님이 총대를 잡고 알아서 시키는 걸로...
그래도 중요한 메뉴에서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사케에 오뎅탕!
음식이 나오는 걸 기다리는동안 이자카야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리니 장식품들이 눈에 띄었다.
얘는 '마네키 네코(돈과 복을 불러온다는 고양이)'와 함께 유명한 일본 전통 장식품 중 하나인데 이름은 까먹었다.
보통 선물용으로 많이 주는데 눈동자가 없는 흰자위만 있는 녀석을 선물로 준다.
선물을 받은 사람은 소원을 빌며 눈동자 하나를 검게 칠하고 그 소원이 이뤄지면 비로소 나머지 하나도 검게 칠한다고 대학시절 일본 친구가 내게 이걸 건내주며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일까...?!)
당시 이 선물을 받았을 때 빌었던 소원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 녀석도 외눈박이 신세가 됐다..
이자카야 사장님이 빌었던 소원은 다행히 이루어졌나 보다..
봄철 일본 마을에 놀러가면 종종 개천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고이노보리가 천장에 달려 있었다..
잉어가 황하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문을 지나면 용이 된다는 등용문 전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데 그러고 보면 뿌리는 같은 이야기들이 한중일에서 각각 다르게 변모한 걸 보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8년 전,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고 일본 중남부를 여행하던 시절, 마쯔모토에서 봤던 고이노보리가 잠시 생각이 났다.
카운터 아저씨들도 라이브에 심취중인 걸로 보아 라이브 가수가 매번 같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볼링핀 같기도 하고 투구를 쓴 병정 같이 도열해 있는 사케병과 잔..
비 오는 금요일 저녁, 뜨끈한 사케 한 잔에 듣는 일본의 멜로디에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린다.
푸짐하게 등장한 오뎅탕... 오뎅은 이빠이였는데 국물이 사람마다 덜어주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ㅠ
당연하게 리필을 요청했으나 살짝 마지 못해 리필해주는 점원 ㅎㅎㅎ
오돌뼈 튀김
테바사키
이미 양꼬치집에서 배를 꽤 채웠는데 다들 안주가 나오니 또 열심히 잘 먹는다 ㅎㅎㅎ
11시 즈음 되니 까랑까랑한 노랫소리도 잦아들었고 모두 얼큰하게 달아오를 때까지 사케 호리병을 비우고서야 다들 빗 속 택시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날 수고한 파원레인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