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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Feb 26. 2020

삼국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태원 클라쓰>

현대판 삼국지를 이태원에 녹인 클라쓰

한동안 귀찮다 뭐다 해서 블로그를 쉬었다. (사실 그간 다녀온 여행 스토리들이 꽤 있긴한데... 이놈의 무기력과 귀차니즘...ㅠㅠ) 그러다 급 필 받아서 이전과는 다른 내용으로 간만에 긁적여본다.


요즘 주변에서 JTBC드라마 <이태원클라쓰>가 핫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래 한국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뻔한 러브스토리를 베베 꼬아놓은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그래도 이런 콧등이 간질간질한 어설픈 설정을 극복하고 1~2화를 잘 풀어가면 그 뒤로는 그래도 몰입하기가 쉽다. 


그런 면에서 <이태원클라쓰>는 그런 로맨스 공식을 넘어 요즘 세대들이 열광할만한 화두를 던진다.

- 불공평하고 더러운 자본주의(라 쓰고 물질만능주의라 읽는다)의 현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담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한 청년(새로이)

- 트랜스젠더, 혼혈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려고 하는 새로운 시도 


그 중에서도 흥미로웠던 점이 <이태원클라쓰>에서 <삼국지>가 오버래핑 된다는 점이었다.


1. 장가와 단밤의 대결은 위와 촉의 맞대결


한국 최고의 외식 프랜차이즈 '장가'. 이를 진두지휘하는 그룹 회장 장대희에게는 대기업답게 능력이 출중한 수하 장수(?)들뿐만 아니라 자본력 또한 막강하다. 흡사 조조의 위나라 같다.

반면 이태원 외곽 귀퉁이에 막 연 포차 가게 '단밤'. 단촐하게 시작하지만 신의로 다져진 사람들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식당은 '도원결의'로 보잘 것 없이 시작한 유비의 촉나라를 연상시킨다.

박새로이의 촉나라 vs 장회장의 위나라


2. 박새로이=유비 vs 장대희=조조


'장가'가 위나라를 연상시키는 것처럼 그 우두머리인 장대희는 조조를 연상시킨다.

장대희는 약육강식(실리)의 논리에 따라 사업을 키워 왔고 덕분에 재벌그룹의 막강한 인프라와 리소스(재력과 인물)를 거느리게 된다. 권위를 중시해서, 이에 거슬리면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박부장도 금새 내친다.

조조 또한 마찬가지. 도망치던 자신을 숨겨준 마을 사람들을 (물론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생존을 위해 모두 죽여버린다. 또한 순욱, 순유, 사마의, 하후돈 등 유능한(but 딱히 정은 안가는?) 인재들을 휘하에 두고 세력을 확장시켜 나간다. 나중에는 '황제'에 대한 야욕도 숨김 없이 드러낸다.

조조(좌, 중)와 장대희(우). 대희 아저씨는 어째 일제시대 순사 스멜이 많이 난다...

 

조조가 '노모'를 빌미로 서서를 꼬셨듯, 장회장은 '후원과 출세'를 미끼로 수아를 꼬시기도 한다


반면 새로이는 '사람'을 중시하고 '원칙과 소신(명분)'을 지킨다. 그렇게 해서 이서라는 (물론 삼고초려가 아니라 제 발로 찾아왔지만) 제갈공명을 얻고 관우, 장비, 조운, 마초 등 셀 수 없는 장수를 얻는다. 마치 새로이가 펀드 매니저인 호진을 비롯해 든든한 식당 직원들을 얻듯이...

곰곰이 생각해보면 유비나 새로이는 자신이 가진 특출난 능력은 없다. 

중졸에 전과자. 배운 것도 아는 것도 없다. 종자돈도 아버지 사망 보험금으로 마련했고, 그걸 불려준 것은 펀드매니저인 호진이었다. 단밤을 성공시킨 것도 이서의 전략과 운영의 묘였고 말이다. 결국 새로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자기 자신의 잘남이라기보다는 잠재력을 가진 인재들에게 보여준 사람으로서의 매력 그리고 이들에 대한 무한 신뢰였다.

유비도 한낯 돗자리 장수였지만 인품으로 수 많은 호걸들을 휘하에 두게 된다. 지략이며 전투며 실제 '일'은 아래에 위임했지만 사람을 믿는 뚝심의 용병술로 촉을 부흥시킨다.


뚜렷한 명분도 각각 있다. 새로이는 '아버지의 복수를 통한 정의의 구현'. 유비는 '한헌제 옹위를 통한 한나라 재건' 


박서준한테 대적시키려다 보니 험블하면서 잘 생긴 유비



3. 그래서 결말은? 


<삼국지연의>가 희대의 명작이 된 것은 오히려 유비의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라 조조(사마의)의 위나라가 위업을 이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슬램덩크가 북산고의 전국대회 우승 실패로 끝난 것처럼...

'영웅이 세계를 구하고 선은 악을 이긴다'라는 구도가 속은 시원한 해피 엔딩일지 몰라도 미련도 없다. 반면 이를 뒤집는 엔딩은 현실의 냉혹함을 찝찝하게 남기며 우리의 뇌리 속에 보다 깊게 자리하게 된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슬램덩크 그리고 북산고의 결말...

<기생충>이 바로 그 찝찝함의 대명사이지 않은가. 만약 송강호네 가족이 각자 착하게 돈 잘 벌어 성공해서 행복하게 사는 결말이었다면 어땠겠는가... 보기는 좋았을망정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덜했을 것이다.


나는 웹툰 <이태원클라쓰>를 보지 않아 엔딩을 모른다. (확인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을련다 ㅎㅎㅎ)

스토리 특성상 그리고 '박서준'이라는 막강 캐릭터의 존재감상 이건 박서준이 통쾌하고 복수에 성공하고 끝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유는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대의명분을 가지며 잘 싸워왔던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잃고 이성마저 잃고 만다. 형제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까진 좋았는데 이에 집착한 나머지 판단력이 흐려져 무리한 싸움으로 결국 촉나라의 형세도 기울어 버린다. 반면 극중 박새로이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장대희가 박새로이를 무리하게 밟으려고 애쓰려다 실리의 정신을 잃고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까...

<삼국지연의>의 최종결말보다는 적벽대전과 같이 스스로를 과신해서 방심한 사이, 새로이 일당의 책략에 보기 좋게 당하면서 결말을 맺지 않을까 싶다.


박새로이 같은 뚝심 있는 인생 한번 살아보고 싶다!

'실리'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자칫 간과하기 쉬운 것이 사람 그리고 그들과의 신뢰라는 점이다. 누구나 그걸 알면서도 눈 앞의 것들에 흔들리기 쉬운데, 뻣뻣하면서도 드라이한 박새로이를 응원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가슴 속 깊은 어딘가에 내가 지키고 싶었지만 지킬 수 없었던 소신(나와의 크고 작은 약속들)에 대한 한풀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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