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Mar 01. 2020

사랑하면 정말 눈이 멀까 (1) - 정서적 커넥션

Netflix 시리즈 <블라인드 러브: Love is Blind> 감상기

코로나 바이러스로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2/29 토요일에도 누군가 만나지 못하고 넷플릭스를 뒤적이던 중에 <블라인드 러브: Love is Blind>라는 새 시리즈가 뜬 것을 보았다.

https://youtu.be/s2eBAFt3L_0

여러 쌍의 남녀가 1개월만에 연애 상대도 아닌 '결혼(!)' 상대를 찾는 리얼리티 쇼이다. 예전에 트럼프의 <The Apprentice>라는 경쟁을 통해 직장을 구하는 커리어 리얼리티 쇼를 봤었고 한 남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여러 여자가 경쟁하는 <The Bachelor> 시리즈가 있었는데 이건 한 자리 또는 사람을 위한 경쟁이라기 보단 각자의 짝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좀 달랐다.

와. 지금보니 감개무량하네...저 멤버들이 백악관에 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프렌티스 (좌) / 바첼러 (우)


진행 방식


시작부터 재밌었던 것이 처음부터 상대방의 외모를 보며 하는 소개팅 같은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고 외모가 아닌, 순전히 대화를 통해 알아가는 서로의 (성격, 취향 등에 대한) 케미스트리로 이 사람과 '결혼을 전제로' 만날 지를 결정하고 한 쪽이 청혼(!)을 하고 다른 쪽이 승낙해야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그 길로 허니문이다!


흥미로운 규칙에 끌려 제1화를 틀어보게 되었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밖에도 마음대로 못 나가고 나름 내용도 재밌어서 무려 당일에 정주행을 하고 말았다. 보면서 인생 그리고 사랑(배우자 찾기)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바, 그 감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주의)**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으니 준비가 된 분들(?)만 각자의 선택에 따라 읽어주시길.


The Pods (블라인드 데이팅 스테이지)

일주일 여간 30명의 남녀 참가자들은 서로를 볼 수 없는 방(pod)에 들어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정서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일본에서 얘기하는 일종의 '콘카츠(婚活)'라는 구혼활동(스피드 소개팅)을 연상시킨다. 단지 얼굴을 못 볼 뿐이다...

외모 혹은 경제력 등 현실적인 조건보다는 각자의 감정 또는 정서적인 배경을 위주로 상대를 찾아간다.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여건에 대해서는 왜 이 단계에서 빡세게 물어보지 않았는지 의문이지만 프로그램의 취지를 생각했을 때 Love is Blind에서 실험해 보고 싶었던 건 그런 외적인 요소가 아닌 내적인 요소만으로 결혼에 골인할 수 있는지 였기 때문에 아예 섭외 과정에서 '그래도 너무 극단적인' 케이스들은 1차적으로 스크리닝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며칠간의 대화를 거친 뒤, 상대가 마음에 들면 무려 청혼(!)을 한다. 

사실 이 스테이지는 엄청 재밌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서로를 알아가고 6쌍의 커플이 만들어지는 배경 설명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렇게 서로의 외모를 모른 채 6쌍의 커플이 탄생한다. 

1. 캐머런(백인남성, 28, Scientist) - 로런(흑인여성, 32, Content Creator)

2. 데이미언(백인남성, 27, General Manager) - 지아니나(히스패닉여성, 25, Business Owner)

3. 케니(백인남성, 27, Sales) - 켈리(백인여성, 33, Health Coach)

4. 칼턴(흑인남성, 34, Marketing Manager) - 다이아몬드(흑인여성, 28, Professional Basketball Dancer)

5. 바넷(백인남성, 27, Engineer) - 앰버(백인여성, 25, Ex-tank Mechanic)

6. 마크(히스패닉남성, 24, Fitness Trainer) - 제시카(백인여성, 34, Regional Manager)  


이렇게 매칭된 커플들은 실제로 조우를 하고 허니문으로 가게된다.

매칭이 되지 못한 18명의 남녀 참가자들이 있었겠지만 대화는 철저히 향후 '메이드된' 커플 위주로 진행되었다. 사실 안 된 커플들 중에서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있었겠지만 여튼 과감히 편집된 듯 하다. 


감상기


1. 장막의 효과

고해성사 하듯이 내면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pod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평가될지(특히 외모)에 대한 걱정이 덜하다. 그래서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자신 내면의 깊은 얘기들을 비교적 주저 없이 쏟아낸다. (아마 참가자들 마음 속에는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의 매치를 찾아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관념이 이를 더 부추겼을 수도 있겠다.)

폰도 압수 당한 상태에서 온전히 상대에게 집중한다. 이런 상황에서 얘기를 더 진행하려면 진솔해지는 수밖에 없다. 친구들과도 하는 뻔한 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라 이들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내면의 이야기... 왜냐면 이들과는 어떠한 사회적 관계가 없었으니까... 


2. 매칭의 열쇠는 '공감'

사실 이건 뭐 당연하기도 한데, 역시 이야기를 하며 끌리게 되는 건 나와 상대를 연결해줄 수 있는 '연결고리' 즉 공감대 형성 요소가 있느냐이다.

성격에 크게 좌우되는 대화 스타일이 비슷하거나 (이건 거의 모든 커플에 해당), 지역이나 음식 취향 (제시카-마크의 '시카고', '이탈리안 브레드')을 공유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급속도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건 자신의 솔직한 고백(자신의 고민거리, 치부)이고 이것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자세(이해, 공감)이었다.

자신의 (부끄럽거나 숨기고 싶었던) 비밀을 용기 내어 솔직히 털어놓을 때 이를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관계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결국 우리 모두는 마음 한 구석이 외로운 존재이고 남들에게 (감정적으로) 인정 받고 싶은 것이다. 앰버의 낙태 경험, DG의 왕따 경험, 지아니나/앰버/제시카 부모님의 이혼 경험에 대해 남자들은 깊이 공감하고 이해했고 이는 여자들의 마음을 열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안 좋은 예는 칼턴...양성애자임을 숨기고 전전긍긍하다가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된다...자세한 얘기는 다음 글에서...


3. 1명의 인기남 그리고 그의 선택만을 기다리는 3명의 여자

바넷은 rude와 flirting의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3명의 처자들의 마음을 갖고 논다. 중후한 목소리와 여유 있는 대화가 아무래도 자신감 있고 믿고 의지할만한 남자라는 인상을 주었던 걸까?

그치만 순전히 대화를 하며 '밀땅'하는 데 관심이 많은 바넷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제시카, 앰버, LC 3명의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결국 섣불리(?) 결혼하자는 언질로 제시카가 마크를 버리게까지 했으나 고민 끝에 제시카와 LC 2명을 차고 앰버를 택한다. 

여기서 제시카가 앰버에게 바넷의 만행(?)을 꼰지르는데...이 관계는 후반부까지 꽤나 재밌게 꼬여간다.


4. 칼을 뽑았는데 무라도 썰어야...

10살 나이 차이를 이유로 마크를 한 번 차고 바넷에게 갔지만 바넷에게 퇴짜 맞아서 다시 마크에게로 돌아오는 줏대 없는 변절(?)을 시도한 제시카. 

그치만 마크가 싫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이해는 간다. 둘 중에 비교를 해서 더 나은 걸 선택해야 했지만 제1옵션이 NO인 상황에서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줏대없어 보일 지언정) 물론 자존심과 이미지를 생각해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얼굴이 두꺼웠던 제시카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에 마크에게 다시 갈 수 있었다고 본다. 여튼 인상적이었던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시카를 한결 같이 기다리고 받아준 마크의 우직함이었다. 그것도 24살 밖에 안 되었는데 말이다! 참 순수하면서도 어른스럽다. (뭔가 좀 상충되는 느낌이 드는 건 인간에 때를 묻히는 이 세상에 의문의 1패인건가?!)


4.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남자의 확고한 믿음

케니, 캐머런, 데이미언은 시종일관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자에게 집중해 직진했다. 어떠한 결함이 있더라도 다 이해해주고 보듬었다. 공감이 강했던 터인지 눈물까지 흘려가며 강하게 구애를 했고 그러한 열정과 헌신(?)에 여자들도 감동해서인지 청혼을 받아들인다. 

마크는 제시카 아니면 모든 걸 다 포기하겠다고 했다. 나이차도 상관 없다고 했다. 바넷을 위해 자신을 한번 배신했지만 그래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고 제시카를 기다렸고 결국 그녀가 버림 받아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를 보듬어줬다. 

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모르고 갈팡질팡할 때 여자의 마음은 식는다. 초반에 우유부단할 수는 있다.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모르는 시기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게 길어지면 안 된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남이 자신의 인생을 같이 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모두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많은 경우 그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충족됐다면 나머진 과감히 버리라... 과감한 포기가 더 큰 것을 얻게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말은 쉽지 현실에서 어려운 건 나도 안다 ㅠ 그래도!!)


5. 프로포즈는 역시 클래식?!

아마도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커플들에게는 제작진이 미리 옷 좀 차려 입고 들어가라고 했는지 프로포즈의 시기가 오면 다들 차려 입고 나가는 게 좀 재밌었다.

대부분 남성이 무릎을 꿇고 will you marry me?라고 하면 여자가 승낙하는 클래식한 틀은 그대로였고 여자들은 뜸을 드리다 yes를 외치는 부분까진 너무도 클래식했다. 

게다가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한테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 거냐는둥하는 게 (사실 결혼하자는 것 자체가 넌센스이긴 하다만서도) 아무리 리얼리티 tv쇼라지만 좀 어이 없긴 했다. 근데 뭐 금사빠일수도 있고 당시의 무드에 심취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치고 넘어갔다.

그 중에서도 굉장히 인상적인 scene이 있었다.

바로 데이미언의 진솔한 고백과 프로포즈. 자신을 표현할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 넣다가 이건 나의 일부를 보여줄 순 있지만 내 전부가 될 수 없어 자기 자신에게 리본을 묶어 내 전부를 너에게 주고 싶다며 눈물을 그렁이며 프로포즈를 한다. (좀 느끼하긴 한데 진심이 담겨 있는 듯 해서 그런지 와우 쉑히 좀 멋졌다.)

근데 더 놀라웠던 건 이를 받아들이는 지아니나의 자세였다. 

굉장히 뜸을 들이더니 대뜸 남자에게 일어나라고 한다. (남자 입장에선 아마 거절이라고 생각했겠지!)

근데 이게 왠걸! 남녀는 동등해서 자신의 선택은 자기가 수동이 아닌 '능동적으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 자신이 무릎을 꿇더니 남자에게 역 프로포즈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는 행동이지만 멋지다고 느꼈던 건 그만큼 드문 행동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상당히 기대되는 커플이었다. 과거형임에 주의 ㅎ)

개인적으로 지아니나는 유명 모델 kate upton가 좀 닮은꼴 같았음

6. 블라인드 러브는 존재한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이 6쌍의 커플들이 약혼에 성공한 뒤 처음으로 서로를 보게 되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서로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반가워하고 기뻐하고 사귀다 잠시 헤어졌다가 간만에 다시 만난 커플처럼 너무도 러브러브다.

정신적인 끌림이 첫인상마저 지배한 것일까. 어느 커플도 첫 대면에서 실망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랬던 커플들은 편집된 걸까?!)

솔직히 이게 가능한 걸까 좀 의문이 들 정도로 말이다. 운 좋게도 기본 외모는 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랬던 걸까? 아니면 정서적 교감이 너무도 강력해서 그냥 머릿속에서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한다고 세뇌를 해서 그랬던 걸까?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상상하던 사람과 다를 수도 있고 그게 pleasant surprise가 아닌 실망이 될 수도 있는데 어디에도 그런 커플은 없었다...

이게 방송이고 여기서 실망해서 돌아서면 더 이상 방송 출현의 기회가 없어지니 잔머리를 굴린 것일까? 잘 모르겠지만 여튼 모두들 기대에 부풀며 다음 만남을 고대하며 다시 헤어진다.



이렇게 일주일만에 '약혼(engaged)'한 커플들은 곧바로 허니문에 가게 된다... 진도 보소...


PS. 참가자들의 상세 프로필이 궁금한 분은 여기


작가의 이전글 삼국지의 시선으로 바라본 <이태원 클라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