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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Jan 10. 2016

[사회] 2030년 가장 행복한 나라는 대만?

매일 아침 타이페이 지하철 MRT(Mass Rapid Transit, 홍콩은 MTR) 탈 때 보면,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많이 사라지기 전에 서울에서도 난립했었던 아침 신문이 놓여져 있다. 


다른 점은, 여긴 지저분하게 여러 신문사가 아니라 UDN이라는 미디어그룹에서 발행하는 Upaper라는 한 곳에서만 두고 간다. 그래서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신문을 짚어가는 광경도 없다.


이게 바로 Upaper


또 하나, 대만 지하철에는 한국처럼 좌석 머리 위에 가방을 두는 선반이 없다. (언제 타이페이와 서울 지하철 시스템에 대해 비교해도 재밌을 듯) 그래서 승객들은 신문을 다 보고 나서 지정된 장소로 가져가 버린다. 아침신문이 너저분하게 지하철에 방치되지도 않고 따로 청소 직원이 와서 수거해 갈 필요도 없다. (아마 서울 지하철 타본 분이면 큰 자루를 끌고 다니며 신문만 따로 수거하는 분을 보신 기억이 있을 거다.)


1/6일자 Upaper에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는데, 바로 2030년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행복할 나라를 조사했는데 바로 대만이 1위를 했다... 이름하여 '미래세대 행복지수 조사'


이 조사는 萬事達卡라는 카드사에서 2030년 30대가 되는 세대의 행복지수를 예측할 목적으로 실시되었는데 실제로 그 세대들은 현재 기껏해야 16세이기 때문에 18~64세가 '대신' 예측을 하는 방식으로 17개 국가 8,178명을 대상으로 2015년 5~6월 간 진행했다고 한다.


아태지역 미래 행복 지수 순위

대만은 빈부격차부문에서 80점, 양성평등부문에서 84.3점을 획득한 반면 일과 생활의 균형에선 41.2점을 획득.


한국인인 내 입장에서 볼 때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1) 대만이 아태지역에서 1위를 했다는 점

2) 한국이 종합 2위를 했다는 점

3) 대만이 '일과 생활의 균형' 부문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줬다는 부분


도대체 한국의 어떤 사람들을 표본으로 조사를 실시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헬조선'이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 걸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우리가 생각하기에 못 살지만 개개인들의 주관적인 행복지수는 높을 것 같은 국가들은 죄다 하위권에 위치해 있어 개인적으로 조사를 신뢰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아침신문 특유의 부실한 설명이라고 쳐도 카드사가 실시한 조사치고도 언뜻 결과가 상식에서 좀 벗어나 보였다. 어쨌든, 아래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


1) 대만은 아시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일 수 있을까?

- 생각해 보면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더 암울한 미래를 가진 나라일 수 있다. 


(1) 가장 큰 문제는 역시나 중국. 뭘 하려고 해도 다 가로막고 있다. 특히 정치/외교적으로..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단 22개국. 그 중에서도 파라과이 정도가 가장 유명하고 나머진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대부분. 올림픽에도 Chinese Taipei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도 공식 국가를 듣지 못하는 비운의 국가다. 물론 여기 사람들이 일제 당시처럼 착취에 멸시를 받는 건 아니지만, 금메달을 딴 국가대표의 마음은 일정 부분 손기정 선수와 같지 않을까. 


(2) 경제적으로는 세계적 기업이 한국보다 적은 데다 (2015년 Forbes Global 500에 의하면 한국 17, 대만 8, http://fortune.com/global500/) 그나마 유명한 Foxconn, HTC, Asus, Acer 및 기타 반도체의 기업들도 한국 기업과의 경쟁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2015년 3사분기에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고 1인당 GDP도 한국보다 낮은데 성장률도 1%대로 낮아졌으니 말이다. (중국과의 밀월을 통해 경제 활성화하라고 뽑아준 현 국민당 마잉주 총통의 지지율이 바닥인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대만의 임금 수준은 매우 낮은 데도 불구 임금상승율 또한 과거 수년간 정체 상태다. '22K'란 말이 유행했었는데, 대졸 취업생도 월급 80만원 수준을 받고 일하는 실태를 꼬집는 말이었다. 2012년 미국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시간당 임금비용을 100이라 봤을 때 한국이 58, 대만이 27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여기는 임금 수준이 비교적 높은 외국계 기업 취직을 선호한다. 상황이 이러하니 능력 좀 되는 '브레인'들은 대만을 등지고 고임금을 주는 대륙의 베이징이나 상하이, 홍콩, 싱가폴 등지로 떠난다. 대만판 'brain drain' 


간단하게만 언급해도 거시적으론 이런 문제들이 있고 이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딱히 안 보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대만이 미래에 가장 행복한 나라일 거라 예상하는 이유들이 궁금해졌다.


2) 한국은 그래도 비교적 행복한 나라인 걸까?

- 하긴 생각해보면, 행복은 정말 주관적인 거다.


모든 객관적인 상황이 좋더라도 본인이 이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불행할 수도 있겠다. 적어도 한국인인 내가 보는 한국은 대만보다 피곤한 나라임은 확실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어찌됐든 가장 큰 요인. 맨날 누구와 비교하게 되고 대부분은 자기보다 더 잘난 사람과 비교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상대적으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어떤 차를 가져야 하고, 남보다 더 예뻐야 하기 때문에 성형도 하게 되고, 남친은 170 이하의 '루져'면 안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남들이 인정하는 대기업에서 넉넉한 연봉 받아야 어깨가 펴지는 이런 나라...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대만이 여러 면에서 뒤쳐진 나라일 수도 있지만 한국보다 행복한 나라일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행복을 위한 조건도 어쩌면 이런 한국 사회에서 자라온 내가 임의로 그러한 틀에 맞춰 만들어 낸 걸 수도 있다. 꼭 공식적으로 타국이 인정해 주는 국가에서 대기업들을 거느리고 살아야 행복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헬조선이네 뭐네 좁아터진 나라에서 남들이 뭐하는지 일일이 신경 써 가며 사는 한국이 2위인 것은 정말 놀랍다. 


3) 대만이 말하는 일과 생활의 균형

대만 회사에 와서 느끼는 노동시간은 확실히 한국보다 적다. 물론 내 전 한국 직장이 비교적 야근이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기 직원들은 비교적 모두 정시에 퇴근한다.


2015년 OECD 조사를 보면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이 세계에서도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긴 2,124시간이라고 한다. 대만도 업계에 따라 다르지만 야근을 많이 하는 곳은 실제로 늦게까지 야근하는 곳이 없진 않다. 지난 5월 대만 노동부 장관의 발표에 따르면 대만도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일이 끝난 이후에도 이어지는 회식. 그것도 1차도 아닌 2차, 3차... 이것까지 근무시간으로 산정하면 아마 꽤 큰 차이가 날듯하다. 대만은 한국처럼 회식문화가 발달하지 않아 비교적 1차에서 식사 위주로 깔끔하게 먹고 끝난다. 물론 이러한 회식 문화가 국가 경제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건 다음 기회에 별도로 논해 보겠다. 대만과는 달리 한국에서 밤 늦게까지 하는 가게들이 많은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사실 일과 생활의 균형은 이러한 과도한 술자리 문화만 없어도 어느 정도는 유지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가 '훨씬' 더 어려워 보이는 한국이 2위를 했다는 건 더더욱 의외다.



이 조사가 그래도 내게 새삼 일깨워 준 건, 결국 행복은 어떠한 객관적인 환경에서 온다기보다는 주관적인 판단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 내가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면서 그 안에서 목표를 찾고 이를 소소하게 달성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이 건강하고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지낼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누군가를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무의미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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