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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Jan 18. 2016

[사회] 누가 우리 쯔위를 울리는가?

대만계 아이돌을 둘러싼 복잡한 역학관계

지난 달 한국에 들어갔다가 종종 쯔위 쯔위 소리를 듣고 쯔위가 대체 누구인가 궁금했었다. 

네이버에서 한번 찾아보고 귀엽게 생긴 중국아이네..라며 f(x)의 빅토리아, Miss A의 페이 같은 걸그룹 중국 멤버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위 "쯔위 사태"가 터졌다.

비교적 가벼운 연애 기사로 도배되는 대만에서도 이 사건이 일파만파 커진 것은 바로 이게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양안관계'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


양안관계는 대만해협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대만의 관계를 말한다.

남북관계와 미묘하게 닮아 있는 이 관계에 대해서는 언제 따로 한 번 논해보겠다.


TWICE란 걸그룹의 대만 멤버 쯔위, 어떻게 이게 1999년생의 자태일 수 있단 말인가.

사건은 작년 11월에 방송된 마리텔에서 스태프가 건내준 태극기와 청천백일기를 쯔위가 흔든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실 그룹 내 일본 멤버에겐 일장기가 주어졌다. 근데 왜 유독 쯔위가 대만 국기 흔든 것이 문제가 됐을까?


문제는 대만인이 (많은 중국인들이 시청 가능한 채널에서) 대만 국기를 흔들면 이것이 중국인들에겐 독립 주장에 가까울 정도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1. 대만은 나라도 아니다?!

문제의 배경에는 중국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만은 유엔 회원국도 아닐 뿐더러 많은 국가들로부터도 '국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992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를 하면서 대만과는 국교를 단절할 수 밖에 없었다.

명동의 현 중국 대사관은 원래 대만이 중화민국 대사관으로 쓰던 건물이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대만은 한국을 '배신자' 내지는 '변절자'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일부 대만인 사이에선 반한감정이 싹트게 되었다. 

현재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는 단 22개국! 우리나라도 대만 대사관이 아닌 대표부만이 있을 뿐이고 이건 대부분의 주요 국가도 마찬가지..


1992년 단교 직전의 명동 대만 대사관. 이후 이 부지는 중국에게 넘겨지고 건물은 헐리고 신축된다.


자, 근데 좀 더 재밌는 건 뒤에 나온다..


2. 긁어 부스럼의 주역, 황안(黃安)

사실 난 이게 최근 일인 줄 알았는데 작년 11월에 방송된 마리텔이 왜 이제 와서야 문제가 됐을까. 

사실 이 장면이 몇몇 매체에 의해 보도되면서 대만, 중국,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도 여러 말들이 있었다. 각자 관점에서의 다른 반응이 재밌는데,

대만: 역시 쯔위는 대만을 사랑해~ (팔은 안으로 굽음)

중국: 저렇게 대놓고 대만 국기를 흔들어 중국을 분열시키려 하다니! 괴씸하군! (중국의 분열을 논하는 자는 누구도 가만 안 둠)

한국: 대만애가 대만 국기 흔들겠다는데, 우리 쯔위 욕하지마! (우리 쯔위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음. 그저 팬심)


이 정도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이 사건은 마무리되는 듯 했다.

근데 '황안'이라는 녀석이 등장하면서 다시 급물쌀을 타기 시작한다.

황안은 대만 출신 친중파 작곡가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판관 포청천'의 주제가를 부른 인물이다. 

중국에게의 충성심을 보이기 위해서였는지는 몰라도,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이 문제를 다시 들먹이며 "쯔위가 대만 분리 독립을 지지한다"고 공개 비난한 것.


황안이 참여한 포청천 OST. 90년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그 흥겨운 멜로디를 기억할 것이다. 빠라바라바라 빰빰~!
판관 포청천의 위엄한 모습. "작두를 대령하라~!"로 유명했던 대인, 빠오따런.

이걸 또 중국 매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민족주의가 팽배한 중국 네티즌들의 심기를 건드린다. 쯔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중국 내 광풍처럼 번졌고 마치 문화대혁명을 방불케하듯 쯔위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줄줄이 심판대에 오른다.

쯔위를 모델로 쓰며 상승세를 타고 있던 중국 휴대폰 제조업체 화웨이 및 한국 화장품 업체 이니스프리도 중국 시장을 의식해 해당 광고를 내렸고 JYP는 중국 내 쯔위뿐만 아니라 자사 연예인의 활동을 중지시킬 수 밖에 없었다. 쯔위는 초췌한 모습으로 중국은 하나뿐이며 한 명의 중국인으로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 영상을, JYP는 사과문을 냈다. 마치 ISIS가 인질을 붙잡고 강제로 메세지를 보낸 것 같다는 게 현지 젊은이들의 중론.

https://www.youtube.com/watch?v=t57URqSp5Ew

침통한 표정으로 사과문을 읽어나가는 한국 아이돌 그룹 TWICE 소속 대만계 멤버, 쯔위


결국 핵심은 "이런 양안관계의 민감성을 모르고 중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죄송하고 그냥 중국 말이 다 맞고 우리(곧 '쯔위'로 대표되는 대만 및 JYP로 대표되는 한국)가 다 잘못했다"는 것. 뭔가 억지로 머리를 조아렸다는 석연찮음..


3. 대만 국기 사용은 불가?

중국이 함께 등장하는 무대에서 대만 국기의 사용은 금기시 되어 왔다.

왜냐하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인민기(사진)와 중화민국의 청천백일기(사진)가 같이 등장한다는 것은 곧 '하나의 중국'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


일례가 바로 올림픽.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런던 거리에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걸린 것을 계기로 중국 정부에서 공식 항의하여 철수된 일이 있다.


그리고 올림픽을 유심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대만이 금메달을 따면 중화민국의 공식기인 청천백일기가 아닌 Chinese Taipei의 올림픽기가 올라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말 태권도에서 금메달 따고 자국의 국기와 국가를 볼 수 없는 대만 선수의 참담한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Chinese Taipei의 국기
 대만의 청천백일기

사실 이 두 개의 국기가 동시에 등장하지 않는 한, '이론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바로 1992년 중국과 대만 간 체결된 일명 '92합의(92共識) 때문.

이 합의를 통해 양국은 '중국은 하나이나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하기로 함으로써 대륙에서는 중국=PRC를, 대만에서는 중국=ROC를 의마하게 되었고 각자의 국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지내왔던 것.


근데 이제 와서 심지어 대만 사람이 대만 국기를 흔들었다고 대만 독립을 주장한다느니 '하나의 중국' 원칙이 깨뜨린다느니 하는 건 조금 많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 프로그램에서 캡션으로 붙은 대만 국기도 문제가 된다. 대륙 중국과 국교를 맺은 한국에서 대만 국기를 따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광의의 중국인에 포함될 수 있는 대만인이 대만 국기를 흔든 것과 그렇지 않은 한국의 대만 국기 표기는 좀 차원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국교도 단절해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단체의 표징을 사용했으므로 엄격한 잣대로 보면 이것도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얼마 전 방영된 한국 방송에서도 청천백일기는 버젓이 등장했다.


그런 의미에서 소위 "쯔위 사태"는 현대판 문화대혁명 마저 오버랩되어 보여진다.

마오쩌둥이 중고등학생/대학생을 중심으로 조직된 홍위병들을 선동하여 부르주아라는 죄목을 뒤짚어 씌워 (실제 이들의 자본주의 지지여부와는 관계 없이) 스승, 부모 할 것 없이 죄다 마녀사냥했던 것처럼,

이번 소위 "쯔위 사태"는 황안이라는 대만계 친중 인사가 중국의 젊은 네티즌을 선동하여 대만 국기를 흔든 일개 대만계 아이돌 출신 소녀를 대만 독립분자로 몰아세우며 마녀사냥하는 세태.


4. 역풍

우연이라고 보기엔 절묘한 타이밍이었던 게 바로 대만 총통 선거를 며칠 앞둔 시점에서 이 사건이 확대됐다는 것.

마치 테러리스트에게 붙잡혀 투항을 권고하는 민간인 포로처럼 중국에게 사과하는 쯔위의 모습을 보며 대만인들은 적지 않게 분개했다.

그리고 인터넷상에는 "대만인인 것이 자랑스럽다", "대만이 곧 나의 조국이며, 대만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다"는 등 오히려 대만 독립에 대한 여론이 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다음 날 대만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되었고 이들이 어느 당과 후보에 표를 던졌는지는 뻔할 뻔 자.

결국 민진당의 차이잉원 후보는 60%의 득표율로 대만의 첫 여성 총통이 되었고 민진당은 친중 성향이 강한 국민당을 제치고 집권당이 되었다.


오히려 이번 사건으로 젊은 층 사이에서의 대만인으로서의 정체성은 더 강화된 꼴이 되었다. 
모든 야후 계열 사이트에서 황안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이번 사건의 희생양이 된 쯔위에 대한 온라인 구원 활동 확산 중에 있고, 대만 온라인 패션잡지사 JUSKY는 쯔위를 JYP로부터 1억 대만달러(약36억원) 인수 의사를 표명했다. 

뿐만 아니라, 대만의 주요 언론 사이트들은 황안의 대만 내 방송 출연/기사 언급 금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대만의 인기 메신져 '라인'의 타임라인 상에 공유되고 있는 쯔위 지지 포스팅


5. 한국 독도 문제와의 유사성?

가만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일본 우익들을 자극하여 일본 내 반한 감정이 커졌던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이번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으며 한국의 독도 문제와 같이 중국에서 있어 중대한 이슈라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그 때 그 사건과 지금의 쯔위 사태는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를까.

공통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인해 일본에서 반한 감정 및 독도라는 섬에 대한 일본 국민의 인식이 확산되었고 오히려 이를 한국에 넘겨줘선 안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었다. 한편, 쯔위의 이번 사건으로 대만 내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반 중국 여론 및 독립국가로서의 대만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었다.


반면 차이점을 굳이 언급하자면, 중국에 있어 본 사안이 민감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국가를 대표하는 일국의 대통령이 방문해 화제가 된 독도 케이스와 일개(쯔위 팬분들한테는 대단히 죄송) 연예인이 '타의에 의해' 대만 국기를 흔든 이번 케이스를 과연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 있을까?


일면, 한국 및 중국은 명분을 위해 실리를 잃었다고 불 수도 있을 것이다. 쯔위와 JYP의 사과는 받아냈지만 과연 이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사과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뒤에 국민들도 이와 뜻을 같이 했으며 분노는 사그라 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독도 이슈가 일본에서 붉어진 후에 이를 한국 연예인의 대응방법과 비교한 흥미로운 기사도 있다.


6. 그래서?

한국에선 흔히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고 하는데 이게 비단 한국 얘기만은 아니다.

국제무대에서도 결국 국력(예전엔 군사력, 지금은 경제력)이 센 국가가 이기게 되어 있다. (물론 국제 여론으로 일정 부분 상쇄할 수도 있겠지만 세계 대다수의 관심과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이슈는 많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의 역사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것도 결국 한국은 일본 정부 및 국민이 이 일에 관심을 갖게 (강제하거나 유도) 할 리더십 내지 국력이 없다. 전후 미국이 이를 할 수 있었는데 냉전이 시작되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독일과 일본이 다른 행보를 취하게 된 이유라고 본다.)


이야기가 잠깐 샜지만 여하튼 그 결과, 힘 센 중국은 다소 억지를 부려서라도 쯔위와 JYP의 사과를 재빠르게 받아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의 유저들에 대한 지식이 조금이라도 국내 프로그램 제작진 또는 연예기획사에게 있었다면 이번 참사(?)는 예방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예전에 벌어졌던 사건을 굳이 다시 끄집어 내 같은 출신의 소녀에 대해 마녀사냥을 시작한 황안이 결국 제일 얄미운 존재일 수 밖에 없다.


누구든 어떤 행동을 할 때, 어떤 말을 할 때 한 번이 아닌 TWICE 생각해 보는 신중함도 가끔은 필요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대신하고 싶다.


쯔위 본인은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다시 우아 우아하게~ 돌아오길 바란다. 

https://www.youtube.com/watch?v=0rtV5esQT6I


#대만 #양안관계 #쯔위 #국기 #트와이스 #twice #jyp #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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