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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May 23. 2023

또 다시 우울이 내게 왔다.

망할 놈의 우울을 이겨내려 쓴다

또 다시 나에게 왔다. 우울이 다시 왔다. 4개월 정도는 마인드 컨트롤이 너무 잘되어서 더 이상 우울의 들어올 틈새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거의 1년 전에 심리 상담을 끝으로 상담도 받지 않았고, 그 사이에 재택근무를 끝내고 사무실로 독립했었다.


나는 7시 전후로 기상해서 간단하게 홈 요가를 20분 정도 하고, 책을 읽었다. 오전에는 유투브로 긍정확언과 긍정적인 영상들을 보고 배웠다. 출근하는 길 차에서는 20분간 어플을 이용한 영어공부를 하고 퇴근길에는 말씀 영상을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것들은 우울을 떨쳐내기 위해 한 것은 아니었고 몸과 정신이 따라와주던 시기였다. 늘 그렇듯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그 기간 안에 나는, 하마터면 남편에게 이런 말도 할 뻔했었다. "요새 마음 근육이 정말 많이 단단해져서, 앞으로는 크게 마음이 휩쓸리거나 하진 않을거 같아.' 망원이 될 뻔했다. 그 말을 내뱉지 않은 나, 정말 기특하다. 


나의 사업에 새로운 직원을 들이고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시기였다. 하지만 4개월간의 고민 끝에 직원에게도 나에게도 지금 이 시기가 득이 될지 않을 것 같아, 우리는 서로를 위하며 다시 사적인 사이가 되었다. 동시에 타의와 자의가 섞여 또 새로운 환경의 모양새가 되었으니 이제 새로운 시스템으로 발돋음 해야지 싶었는데, 이 놈의 발이 도무지 떨어지질 않는 것이다. '아니, 이 놈의 발이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무거워졌지?'


오전에 어떤 긍정확언을 내게 보여줘도 팅 팅 - 팅겨내기만 한다. 귓가에 마음에 닿지를 않는다. 워라밸을 위해 이른 퇴근도 해보고, 1박 외박을 해서 내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재택근무 5년만에 처음으로 업무 시간에 영화도 보았다. 이럴 시기에는 마음 속에 뜬 구름 잡는 생각도 난다. 마침 라디오에서 주 4일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한다. ' 아 주 4일이면 회사 다니는게 더 나으려나. 사람들도 만나서 소속감도 가질 수 있고. 돈도 꼬박꼬박 들어오고 한가지 목표로 다같이 일하게 되는거니 좋을거 같은데.'


그리고 남탓을 하기 시작한다. '아 남편이 나의 마음의 무게를 좀 덜어주기만 해도 내가 덜 불안할텐데..',' 나는 늘 확신에 찰 정도로 열심히 살았는데 내 삶이 왜이렇게 고되기만 하지.'

그 긍정의 4개월에도 나는 같은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모든 건 나의 생각의 차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데도.


그렇게 앞으로 걸어야할 나의 발이 너무 무거워져있었다. 한 발 떼어내는 것도 너무 무겁다. 그저 책상에 엎드리고 울고 싶다. 그 안에는 직원에 대한 죄책감,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패배감, 새로운 브랜드 런칭이 좋은 매출을 내지 못하는 무력감. 실체를 모르는 막연한 불안감, 앞으로 나를 미리 예견해보는 바보같은 예기 불안들. 누군지도 모르는 sns 속 사람들과의 행복의 비교, 생각이 많아질 수록 나의 행복은 멀리 있는 것만 같은 추상적인 우울들.


나는 30대를 우울과 예기불안과 늘 한켠에서 싸우며 보냈다. 물론 그 안에 즐거운 일도 있고, 자신에 대한 확신도 어느날은 있었으며 작은 성공들도 여러번 경험했다.

꽤 오래 함께했음에도 나는 우울과 결코 친해지지 못했다. 아직도 우울과 거리를 두는 법도 모르며, 또 다시 왔다가 갈것이라는 확신도, 안도감도 아직도 지니지 못했다. 그래. 지금 나의 이 글은 내가 우울을 이겨보려 쓰는 글이다. 마음이 피폐해지면 쓰고 공허해지면 쓰는 것이 글이다.


몇가지 우리가 아는 해법들은 대략 이러하겠지.

글쓰기, 일찍 일어나기, 기도하기, 나에게 보상하기, 여행, 운동, 많이 걷기, 일기, 시간관리.


나의 해법은 몇가지가 안되지만 몇개는 명쾌하다. 

그 중에 나의 해법은 '글쓰기'와 '누군가와 일을 소속감을 느끼며 해나갈 때'.


가장 즉각적으로 쉽게 풀어지는 것은 '글쓰기' (손으로 쓰는 것은 오래 걸리고 생각을 빠르게 쓸 수 없어서 타자로 쓰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그리고 제일 궁극적으로 시원하게 뚫리는 것은 '누군가와 나의 일을 함께 해나갈 때'.

이건 굉장히 쉽지 않다. 누군가가 나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쁘게 해주는 것은 나의 통제영역에서 벗어난 아주 큰 바램이고, 나의 일이 페이가 많거나 또는 대신 브랜드의 가치가 높아야 그에게 소속감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그러한 현실에서 마음이 공허한데, 글을 쓰면서도 내 자신에게 생각한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하는 수 밖에 더 있어? 그렇게 되는 수 밖에 더 있어?' 


그리고 스스로 또 대답한다. '근데 그렇게 되기까지가 너무 고단하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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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을 이겨내보려 써보는 글입니다.

'나아가다보면 또 오겠죠. 괜찮아지겠죠' 하지 않고 <괜찮음>을 찾아나서보려고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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