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서 한 잔의 위스키와 함께 책상 앞에 앉았다. 독한 술로 입술을 적시며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생각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습관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30일 동안 30분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언제나 그러듯 다짐은 단단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소재는 생각보다 빨리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애꿎은 스페이스 키만 눌러대고 있다.
예전에는 일주일에 두 번 20분에서 30분 스피치의 글을 썼었고, 막힘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 모니터에는 몇 줄의 문장만 떠 있고, 그 아래로는 끝없이 하얗다. 커서는 끝없이 깜빡이며 나를 재촉하고 있다. 정작 나는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다. 한 잔의 위스키의 얼음이 다 녹아버려서 혀조차 얼얼함을 느끼지 못한다. 생각은 여전히 또렷하지만 글은 멈춰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런 순간은 수없이 겪었겠지?'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마치,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끝내 꺼내지 못하는 부끄러움 많은 아이처럼, 용기 내서 말해보려다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흩어져버린 첫사랑의 고백처럼 말이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걸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매일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싶은 것일까? 작년부터 하루의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서 한 줄의 일기라도 쓰던 것이 올해는 조금 더 길게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글을 쓰면 오늘의 내가 분명히 존재했다는 흔적 하나쯤은 남을 것 같아서 말이다.
비어진 잔에 다시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채운다. 정리되지 않은 책상과 글들이 함께 놓여 있다. 심란한 마음에 잔잔한 음악을 꺼버리니 밤 8시밖에 되지 않았지만 적막이 감싼다. 주변은 고요하다. 오로지 머릿속에서 여러 생각들이 소음을 만든다. 나는 여전히 스페이스 키만 누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무런 의미 없는 공백이 문서 위에 쌓인다. 이 공백이 마치 나와 닮아 있다. 채워지지 않았고, 방향도 없고, 없는 듯하지만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상태.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 밤이더라도 나는 무겁게 앉아 빈 공간으로 채워져 가는 모니터만 바라본다. 글을 잘 쓰지 못하더라도,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로라도, 쓰려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어서 버티며 앉아 있다. 수많은 공백들도 바로 나이기에....
입술에 붙어 있던 위스키 잔을 내려놓고 다시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올린다. 스페이스 키에서 손을 떼고 한 문장을 써 내려간다.
'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글을 쓰고 싶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