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와 다른 타인을 용납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생각보다 자주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나는 스스로를 꽤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의견을 잘 듣는 편이고, 피드백을 무시하지 않으며, 조직 안에서도 비교적 열려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 왔다. 적어도 난 스스로를 그렇다고 믿고 있다.
최근 리더십 공부를 하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피드백과 심리적 안정감이다. 좋은 리더는 구성원의 의견을 잘 듣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그 때다. 의견이 다를 때, 나는 과연 어떤 표정을 할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가는 편이다. 의견을 많이 듣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늘 내가 내린다. 그 과정에서 마음에 들지 않은 의견도 많고, 당장 듣기 불편한 말들도 있다. 기분이 상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의견들 중에서 맞다고 생각되는 것, 결과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아이디어는 채택해 왔다. 그래서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해 왔다. 나는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정의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판단해서 쓸 만한 것만 골라 쓴 걸까. 의견을 들어준다는 행위와 타인을 용납한다는 행위는 같은 것일까.
30대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이 질문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의견이 나오면 뭉개버리거나, 설득하거나,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래서 독사 같은 놈이라고도 불렸다. 그게 일의 속도고, 능력이라고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방식이 항상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나는 점점 더 듣기 위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듣는다는 행위가 곧 용납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나는 보수적인 기독교 환경에서 성장했다. 한국 교회 특유의 배타성 속에서 자랐다. 옳고 그름은 분명했고, 진리와 비진리는 명확히 구분되었다. 다른 생각은 죄라고 생각했다. 다르다는 것은 교정의 대상이거나, 침묵시켜야 할 무엇이었다. 내가 성장했던 세계에서는 질문보다 믿음이 중요했고, 이해보다는 확신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세계 여행을 하던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종교의 얼굴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종교는 하나의 정답이라기보다, 문화와 역사, 환경이 빚어낸 해석에 가까워 보였다.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서로 다른 신을 믿으면서도 더 성숙한 존엄을 지닌 사람들. 잔혹하다고 소문난 종교집단에서 보여준 인류애와 친절들을 보면서 나는 점점 확신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다름은 틀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생각이 열렸다고 해서,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판단한다. 여전히 선별하고, 결정하고, 방향을 정한다. 조직 안에서 나는 리더의 위치에 있고, 그 자리는 결국 누군가의 의견을 채택하고, 누군가의 의견을 기각하는 자리다. 그렇다면 나는 정말 타인을 용납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더 세련된 척 가식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걸까.
타인을 용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단지 다른 의견을 들어주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불편해지는 것을 감수하는 일이 되기도 하고, 내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내려놔야 하는 무거운 일이다. 때로는 결과가 더 나빠질 가능성까지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그 지점까지 가본 적이 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나와 다른 타인을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허용해 왔다. 논리가 맞고, 설명이 가능하고, 결국 내 판단 안으로 들어오는 다름만을 받아들였다. 그것은 용납이라기보다 관리에 가까웠다.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통제 가능한 형태로 정리해 온 셈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나와 다른 타인을 용납할 수 있는가.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생각, 내가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 내가 선호하지 않는 방식까지도. 그것이 나의 신념과 인간됨 그리고 리더십에 어떤 불편을 남기더라도.... 나는 나와 다른 타인을 용납할 수 있는가.
아직 확실한 답을 내릴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타인을 용납한다는 것은 나를 포기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의 확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그저 인정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정 위에서만, 비로소 성장과 관계가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판단하는 사람이고, 결정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다름을 너무 빠르게 정리하지 않으려 한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는 용기와 불편함을 성급히 해소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연습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타인을 용납한다는 것은, 끝내 완성되는 태도가 아니라 평생 붙들고 가야 할 질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내려놓기 않으려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금 이 순간에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묻는 동안, 적어도 나는 스스로를 속이지는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