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나보다 남이 먼저였던 시간
누구나 마음속에 저마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갖고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의 순서. 그 순서를 우리는 '인생의 우선순위'라 부른다. 혹시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웹툰이나 드라마를 본 적 있는가? 이 작품은 그 우선순위의 개념을 아주 현실감 있게 풀어냈다.
나도 유미와 비슷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우선시하며 살았고, 내 마음속 1순위는 언제나 내가 아니었다. 어쩌면 3, 4위보다도 못했을지 모른다. 이 순위는 늘 일정하지 않았다. 때에 따라, 누구에게 마음을 주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1순위가 타인일 땐 그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스스로 내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친구들과 만나 먹을 음식을 정할 때조차 나는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았다. 입버릇처럼 "너희가 먹고 싶은 거 먹자."라고 했다. 우유부단해서가 아니라, 친구들이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마음이 편했다.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속였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먹고 싶던 음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말하지 않았다. 그들을 먼저 생각했었기 때문에.
친구들과 스티커 사진을 찍고 나서도(당시엔 지금의 인생네컷처럼 프리쿠라가 한참 유행이었다.), 잘 나온 사진을 고르고 싶은 마음을 눌러 두고 선택권을 넘겼다. 친구들이 먼저 고르고 나면 남는 것을 가져왔다. 그냥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갖고 싶은 걸 표현하는 게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의 태도에서 미묘한 변화를 느꼈다. 내 의견은 존중되지 않고 있었다. 친구들의 의견을 존중하다 보니 내 의견은 점점 사라져 갔고, 내 안의 '나' 또한 작아져 갔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1순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나를 돌보기는커녕 방치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는 달라지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런 다짐이 바로 변화를 가져오진 않았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내 의견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너희 먹고 싶은 거 먹어!"가 아닌 "난 이거 먹고 싶어."로,
"너희 먼저 골라."에서 "난 이게 더 좋아. 나 이거 가져도 돼?"로,
"너희 가고 싶은 곳 가자."에서 "난 여기 가고 싶어. 어때?"로.
내 의견을 말했을 때 친구들은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 그러자."며 받아 주었다. 누군가의 기분이 나빠지지 않게 하려고 늘 나를 뒷전으로 두었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그때부터 내 안에서 나를 1순위로 두기 시작했다.
반년 전, 오래된 친구와 자연스럽게 관계를 정리하게 되었다.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끝내 털어놓지 못했기 때문에 멀어지게 되었다. 그 친구를 잃고 나니,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의지하고 믿었던 친구였다. 그 순간, 또다시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나보다 친구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걸.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었고, 되돌린다고 해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 자신을 생각하며 이겨 내기로 했다. 내 마음속 1순위는 결국 나 자신이니까. 그렇게 나는 말없이 한 사람 떠나보냈다.
내가 1순위가 된다는 건 나를 가장 먼저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말이다. 그 무엇도 나보다 앞설 수는 없다. 나를 우선하는 것은 '나만 특별하다'라고 여기는 '나르시시즘'과는 다르다.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는 바로 '나'이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당신의 마음속 1순위는 누구인가? 당신의 삶에서 당신이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 주길. 당신이 자신을 마음속 1순위로 둘 때, 인생은 더욱 단단해지고 빛이 날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은 당신의 삶을 더 환하게 비춰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