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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관계보다 내가 더 중요해졌다

22화. 내가 있어야 관계도 존재하니까

by 딩끄적

한때는 그랬다. 누군가 표정이 어두우면, 혹시 내가 무슨 기분 나쁜 말을 했나,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기분이 안 좋지? 내가 한 말 중에 기분 나쁜 게 있었나?"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불편한 감정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친구들과 음식 메뉴를 정할 때도 "난 다 괜찮아. 먹고 싶은 거 먹어."를 습관적으로 말했고, 스티커 사진을 찍고 나눠 가질 때도 "나는 아무거나 괜찮아. 너네 먼저 골라."라고 말했다.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고, 양보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에게 상처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 나도 모르게 이런 습관이 자리 잡은 것 같다. 관계의 틀어짐을 걱정하며 맞추고 배려했던 것 같다.


모든 관계 속에서 나는 순위가 늘 꼴찌였다. 상대방은 편했을지 모르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불편했고, 그 불편함을 감추고자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과 옆 동네에서 모이기로 했다. 멀리서 오는 친구들은 일찍 오는 습관으로 약속 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고, 옆 동네에 살고 있는 친구는 집 앞이니 빨리 나올 수 있었다. 나는 준비를 하고 버스 타고 갈 시간을 계산해서 준비를 시작했기에, 30분 전에 도착한 친구들만큼 빨리 갈 수는 없었다. 친구들은 나를 빼고 먼저 모였고, 나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너는 집도 가까우면서 이렇게 늦게 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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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나라면 아무 말 안 했을 텐데, 그날의 나는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약속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니고, 그 시간보다 자기들이 먼저 도착하고서 나한테 늦는다고 타박하는 그 말이, 장난일지라도 듣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화를 냈다.


"내가 일찍 오라고 했어? 너네들이 일찍 와놓고 왜 나를 늦은 사람 취급을 해?"


장난을 치려던 친구들은 당황해하며 미안해했다. 그때 느꼈다.

'아, 내가 불편한 감정을 무조건 참을 필요는 없구나.'

그 이후, 내가 먹고 싶은 음식과 갖고 싶은 것을 마음 편히 표현하기 시작했다. '무조건 이걸로 하자!'가 아니라, '나는 이게 좋아.'라는 식으로. 그렇게 표현하는 나를 보고 어느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친구들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모두와 잘 지내고 싶어서, 미움받고 싶지 않아서 했던 나의 행동들이 결국 자신을 상처 주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관계'보다 '나'를 먼저 생각하게 되었다.


'관계'보다 '나'를 더 생각하는 건, 이기적으로 구는 것이 아니다. 내 감정과 생각을 충분히 표현하는 것. 그게 베이스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표현했는데 떠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인 거다. 내가 좋은 사람인 척해야만 유지되는 관계라면 이어가지 않아도 된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일뿐이다. 관계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나'로서 살아가는 삶. 내 마음을 최우선으로 돌보는 삶을 살고 싶다.


나를 먼저 생각하더라도 소중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남아 있다. 내가 나를 생각한다고 소중한 인연들은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관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어야만 한다. 내가 있어야 관계도 존재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나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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