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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처음으로 '여자'로 이해하게 된 순간

11화.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았다

by 딩끄적

아빠는 인생에서 두 번의 사업을 시도했지만, 두 번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첫 번째 사업 실패는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하교 후 집에 돌아왔는데,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드라마나 뉴스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가 집 안 곳곳에 붙어 있었다. 중학생이었던 내게는 꽤나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날은 아빠의 눈물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기도 했다. 아빠는 미안하다고 사과하셨고, “엄마가 이제 아빠랑 더는 살지 않겠다고 했어.”라고 말한 뒤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엄마는 집에 계시지 않았다.


눈앞의 빨간 딱지들과 보이지 않는 엄마.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불안했던 시간 중 하나였다. 밤 10시쯤, 엄마가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오면서 갑자기 감정이 북받쳐 투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빠랑 이혼하면... 나는 혼자 살 거야.”


“그래. 너 혼자 살아.”


엄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은 어린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당연히 내 감정을 받아줄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단호한 엄마의 태도에 혼란스러웠다.


‘엄마랑 아빠가 헤어지면 나는 누구랑 살아야 하지?’


그날 밤,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 엄마의 얼굴은 체념에 가까웠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이 상황을 견뎌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돌아온 얼굴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막내딸이 투정을 부리니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복잡하고 무너졌을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울컥 눈물이 난다.




20대가 되어 엄마를 ‘엄마’가 아닌 ‘한 사람의 여자’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이 바로 그날의 엄마였다. 그날의 엄마는 너무 작고 짠하면서도 단단하게 느껴졌다.


무능력하고 책임감 없던 남편,

팍팍했던 살림살이,
그 안에서 투정을 부리던 막내딸.

그 모든 순간을 감당하고 있었던 엄마는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까.


그날 이후, 엄마는 내게 ‘지켜야 할 존재’가 되었다. '엄마를 지켜야 해'라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다짐처럼 생겨난 게 아니라, 천천히, 조용히, 자연스럽게 스며든 감정이었다. 엄마가 지금까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였다면, 이제는 내가 엄마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피어올랐다.


나에게 '지켜야 할 존재'가 된 엄마는 이전과 다르게 보였다.

무엇이든 척척 다 해내는 엄마가, 내가 하나하나 옆에서 챙겨줘야 하는 엄마로.

혼자 어딜 가도 걱정 없던 엄마가, 이제는 항상 옆에서 같이 있어줘야 할 것 같은 엄마로.


여태껏 엄마가 나의 보호자였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엄마의 보호자가 되는 것이 난 좋았다. 내가 엄마를 지켜줄 수 있다는 거니까.



아주 가끔 중학생이었던 내가 생각난다.

엄마를 엄마로만 바라봤던 어린 시절의 나, 엄마 아빠 없이 어떻게 사나 걱정했던 어린 시절의 나.

철없지만 여렸던 그때의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 모든 어려움을 겪고도 잘 이겨내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지금은 엄마를 지키는 든든한 딸이 되었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넌 지금은 그냥 엄마 곁에 조용히 있어줘.

엄마를 지키는 건 조금 더 큰 내가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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