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늑대였을 때」- 필립 레세르메이에 글, 사샤폴라아고바 그림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어 들여다보니 크레파스로 자기 몸과 방바닥을 치덕치덕 칠해 엉망으로 만들어놨다. 망연자실한 엄마를 보고 꽁지 빠지게 도망간다. 이리와 씻자, 하고 욕실로 끌고 가니 이번엔 옷을 벗지 않겠다고 버틴다. 부아가 치민다. 식사 시간엔 계속 자리를 빠져나가 돌아다니려는 아이를 끌어다 앉히길 수십 번, 세수를 하고 이를 닦게 하기 위해 우악스럽게 잡아끌어야 할 때도 있다. 겨우 잠잘 시간이 되었는데, 갑자기 기운이 넘치는지 흥분상태가 된 아이는 잠을 자지 않겠다 고집을 부린다. 불을 끄지 못하게 하고 먼저 지쳐 누워버 엄마 아빠를 흔들어 깨우며 밤늦은 시간까지 실랑이를 한다.
여기 날카로운 발톱을 세우고 노란 눈을 치켜뜬 채로 웅크리고 있는 검은 늑대 한 마리가 있다. 표지를 열면 나들이라도 가는 듯 가벼운 발걸음에 경쾌한 표정의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걷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줄을 한 갈색 늑대, 주머니와 모자, 가방에 올라 타 있는 조그만 늑대들이 사람들의 무리에 섞여있다. 그리고 저 멀리 검은색 늑대가 도망치듯 앞서 뛰어간다.
‘내가 늑대였을 때에는’으로 시작하는 이 책의 주인공은 늑대이다. 늑대는 늦은 밤, 잠도 자지 않고 지붕 위에 올라가 사람들에게 ‘우우’ 하는 소리를 질러댄다. 사람들이 아무리 내려오라고 하지만 나는 늑대이기 때문에 내려갈 수가 없다. 늑대는 오히려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끌벅적 제멋대로 마을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늑대. 씻지도 않고, 주둥이 안에 발을 쑤셔 넣으며 게걸스럽게 먹고, 이도 닦지 않는다.
우리 집에도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늑대가 한 마리 있다. 나는 씻지도 않고, 식사시간에 손으로 마구 음식을 쑤셔대기도 하고, 이 닦기를 거부하며, 제멋대로 굴다가 뜻대로 안되면 괴상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는 그 늑대를 키운다. 갓 태어나 누워서 간신히 팔다리만 버둥거리던 아이가 비로소 뒤집고, 일어서고, 걷고 뛰는 등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신체의 자유를 얻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뭐든 제 멋대로 하고자 하고, 이를 통제하려고 하면 거칠게 반항했다.
나는 이 늑대를 길들이기 위해 애쓴다. 참을 인자를 수십 번 그리며 차분히 이유를 설득해보기도 하고, '착하다' '예쁘다' 등 온갖 감언이설을 늘어놓기도 하고, 무서운 표정으로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거래를 하는 방법으로 살살 달래기도 하면서.
늑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생의 본성이다. 순간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하며 그 어떤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 그때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한다. 생기 넘치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늑대의 자유로운 야생성이 시끌벅적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의 움직임과 닮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되면 우울과 쓸쓸함에 빠지는 모습까지도.
어느 날부터 참다 못 한 마을 사람들은 제멋대로인 늑대를 없애기 위해 사방에 사냥꾼을 둔다. 사람들은 곳곳에서 망원경을 들고 늑대를 감시한다. 늑대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늑대의 털이 짧아지기 시작하더니 이빨도 작아지고, 목소리도 부드러워지다가 고분고분한 소년이 된다.
늑대와 같았던 아이는 사회적 통제의 힘에 굴복하며 사람이 된다.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관계, 또는 훈육과 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화의 과정이다. 그러면서 그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하는 가치와 규범을 내면화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없애기 위해 곳곳에 둔 사냥꾼과 감시망이 바로 그 가치 규범이다.
더 이상 늑대의 모습으로는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자, 늑대는 고분고분한 소년이 된다. 누군가는 사회화를 한 인간이 개성을 잃은 개체로 환원되어 사회적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되는 과정이라고도 말한다. 늑대 입장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뭘 했다고 툭하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쳐대며 못되게 구는 존재다. 문득 표지에 그려진 잔뜩 몸을 웅크린 늑대에게서 외로움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사회 속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지 않기 위해 규범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가진 늑대의 겁먹은 눈빛이 안쓰럽다.
으르렁대고 울부짖기를 그만두고 배고플 때는 냅킨을 두르는 나는 이제 더 이상 늑대가 아니다. 책가방을 메고 학교도 가고 책상에서 공부도 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달빛이 붉은 밤, 목이 쉬거나 머리가 멍한 밤이면 내가 늑대였던 때를 떠올린다.
우리에겐 누구나 숨겨진 늑대 한 마리가 있다. 늑대는 사라지지 않았다. 멀끔한 인간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노란 눈빛 속에는 어딘가로 숨어버린 늑대가 웅크리고 있다. 그리고 때때로 떠오르는 늑대였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소년이 된 늑대의 눈빛을 보며 니코스 카잔스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조르바야말로 늑대의 본성에 충실한 인간이다. 사회의 규범을 벗어난 야만인 같아 보이는 조르바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동경하는 이유는 바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늑대, 즉 순간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야생성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이방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누구나 지나온 늑대였던 시절에 느낀 진정한 자유에 대한 갈망 사이에서 갈등한다. 늑대와 착한 소년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네 살 배기의 어린애와 다르지 않다.
사람 말할 줄 아는 어린 늑대를 키우는 나는 오늘도 늑대를 길들이기 위한 줄다리기를 한다. 내가 키우는 늑대도 언젠가 멀끔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웅크리고 있을 늑대의 영혼마저 잊지는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