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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Aug 17. 2016

엄마, 그리고 엄마가 아닌 나의 정체성

「민들레는 민들레」- 김장성 글, 오현경 그림.

  무심코 지나치는 길 모퉁이에 흔하게 피는 꽃, 민들레. 땅에 붙은 낮은 키에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으면 있는지도 모르고 무심히 지나치게 되는 꽃. 그런 민들레의 한 살이를 소박하게 그린 색연필 그림이 예쁘다. 그리고 '민들레는 민들레'로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가 한 편의 시와 같이 잔잔하다. 민들레가 이렇게 예쁜 꽃이었나. 책꽂이에 꽃아놓고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날 자꾸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그림책이다.

싹이 터도,
잎이 나도,
꽃이 피어도,
씨가 맺혀도,
민들레는 민들레.
이런 곳, 저런 곳
어디에서 피어도
민들레는 민들레.

하나여도, 둘이여도,
들판 가득 피어나도
각각의 민들레는 민들레.

  그림책 안쪽 날개에는 삐뚤빼뚤한 아이들의 얼굴과 민들레의 그림이 각기 다른 모양새, 표정으로 가득하다.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장소에 있건 민들레는 그 자체로 민들레이듯이, 우리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다는 뜻일까. 문득 엄마가 된 나의 정체성에 대해 되묻는다. 


  언젠가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나오던 길이었다. 누군가 뒤에서 '아줌마' 하고 소리를 질러 돌아보니 멀리서부터 뛰어온 마트 직원이었다. 내가 깜빡하고 계산대에 놓고 나온 지갑을 들고 쫓아나오며 한참을 나를 불렀던 것이다. '아줌마', 그것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남편도 나도 그 사실이 무척이나 낯설어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아이를 안고 나가면 모두가 나를 '애기엄마'라고 불렀다.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면 또래 아이를 데리고 나온 엄마들과 자연스레 친해진다. 대화의 대부분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이름도 묻지 않는다. 누구누구의 엄마로 부르고, 불리운다. 아이를 연결고리로 한 낯선 인간관계. 엄마가 아닌 나와 그녀들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아이를 낳기 이전 나의 자아는 독립된 개인으로 존재했다. 여자, 딸, 교사, 학생 등 여러가지 역할이 있었지만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키우는 육아의 시간은 수없이 내 정체성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과정이었다. 연약하고 조그만 생명체인 아이는 누군가의 온전한 관심과 보살핌을 필요로 했고, 나는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를 돌보는 데 쏟아야했다. 그렇게 엄마가 된 내 생활의 중심은 아이가 차지했다. 

  하루종일 아이 뒤치닥거리를 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나의 몸과 생각 모두가 아이의 하루 일과로 가득차서 더 이상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을 때, 가슴이 뻥 뚫린듯한 허무함을 느꼈다.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의 역할이 나의 정체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안 엄마가 아닌 나는 고립되었다. 내 독립된 자아는 흐릿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나는 사라지고 엄마라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 같아 우울했다. 물론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며 한 인간의 성장을 온전히 지켜본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이보다 헌신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이를 사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아이의 행복이 온전히 나의 행복이 되진 않았다.


  그런 밤이 있다. 옆에서 뒤척이는 아이의 잠투정에 깨어나 이부자리를 봐주다 문득 밀려오는 공허함에 다시 잠못드는 밤. 이게 정말 내 삶일까를 수없이 되묻다가 괜히 눈물이 찔끔 나는 밤.

어디에 있든 어떻게 있든 무엇을 하든, 민들레는 민들레인 것처럼, 누구나 참다운 제 모습을 지키고 가꾸며 자기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바랍니다.


  작가의 이름 아래 씌여진 이 짧은 한마디가 나를 위로한다. 나는 지금 엄마라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아니라, 그저 엄마라는 역할이 부여된 내 삶의 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엄마라는 이름을 내려놓는 때가 와도 나 자신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상황과 환경이 달라져도 민들레의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것처럼 내  안의 자아와 정체성은 그리 쉬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그림책의  민들레를 보며 작은 위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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