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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노 Sep 06. 2016

[그림책수업] 가을에 숨은 그림자를 찾아서

「나그네의 선물」 - 크리스 반 알스버그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찌는 듯한 폭염 속에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잠 못드는 밤이 계속됐다. 그렇게 혹독했던 여름이 언제였냐는 듯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 더위가 물러서고 아침 저녁으로 제법 바람이 선선해졌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유독 하얗다. 끈적끈적하게 피부에 달라붙던 습기는 어디갔는지 산뜻하고 청명하다. 더위가 한 풀 꺾이고 내리쬐는 태양볕에도 그림자가 드리우는, 여름과 가을의 사이를 지나는 지금 딱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이야기는 "베일리씨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때였습니다."로 시작한다. 저물어가는 여름 끝자락의 숲길에서 베일리씨는 갑자기 달려든 한 남자를 차로 친다. 그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남자는 베일리씨 집에 머물게 된다. 보름이 넘도록 나그네의 기억은 돌아오지 않고 그 사이 그와 베일리씨네 가족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서로 친근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초록의 나뭇잎을 보며 중요한 무언가 잊은 듯한 혼란에 휩싸이던 나그네는 자신의 입김으로 빨갛게 물든 나뭇잎에서 문득 기억을 되찾고 베일리씨네 집을 떠난다.
  그렇게 나그네가 떠난 후, 매 년 가을이 되면 베일리씨네 농장은 주변보다 일주일 더 초록빛에 머문다. 그리고 하룻밤 사이에 그 어느곳보다 더 진한 단풍이 물들고 서리 낀 창문엔 '다음 가을에  만나요.'라는 말이 새겨진다.

  나그네는 누구였을까? 아마도 남쪽을 향해 가던 '가을'이었을 것이다. 수은이 얼어붙어버린 체온계, 나그네의 입김에서 부는 찬바람, 여름의 끝자락에서 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베일리씨네 집,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떼와 초록의 나무를 보며 혼란을 느끼는 그의 모습 등에서 나그네 정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나그네가 주고 간 선물은 베일리씨가 좋아하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시간이다. 가을이 다가오는 그 짧은 절기의 정취를 조금 더 천천히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이 그림책은 나에게도 가을 무렵 찾아오는 선물과 같다. '나그네의 선물'을 펼치면 가을의 볕에 담긴 색감에 담뿍 젖어든다. 가을의 볕에는 그림자가 있다. 내가 열여덟 고등학생 때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가을이 아름다운 건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나는 가을볕에 물드는 단풍과 과실의 농익은 색깔에서, 어린 시절 할머니네 옥상에서 말라가던 뽀송뽀송한 호박과 붉은 고추내음에서 가을의 뙤약볕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떠올리곤 한다.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이들과도 깊어가는 가을을  나누고 싶었다. 나그네는 누구일까, 나그네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는, 나그네의 선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가을의 그림자 이야기도 해주었다. 열 살짜리 꼬맹이들이 정말 공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각자 가을과 관련한 추억이나 기억을 말해보도록 했다.

  미술시간에는 그림책의 그림을 따라 색칠하기를 했다. 그림책의 그림 속에서 가을의 정취를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자연의 색은 단 한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알았으면 했다. 같은 주황이라는 이름을 붙였어도 빛에 따라 그 색은 수없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때만큼은 파스넷 사용을 금했다. 빈 화면을 쓱쓱 몇 번의 색칠로 금방 채울 수 있어서 아이들은 파스넷을 좋아했지만 나는 평소 그것이 마뜩찮았다. 시간과 수고가 더 많이 들지만 색과 색 사이의 다양함을 관찰하고 표현해 볼 수 있도록 연필 색연필을 주었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박강수의 '가을은 참 예쁘다'는 노래도 들려주었다. 어설픈 우쿨렐레 반주로 노래를 가르쳐주었는데 한동안 내가 우쿨렐레를 집어들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노래만 불렀다.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말이 계절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학교 뒷 산에 올라가 산책을 하고 단풍잎을 주워 모으기도 했다. 같은 종류의 나뭇잎이어도 각각이 물든 색이 다 달랐다. 별 것도 없는 뒷 산 공터에서도 아이들은 깔깔대며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며 살갗에 닿는 이 계절의 볕과 바람, 냄새를 기억하길 바랐다.


  어린 시절정서적 체험은 내면 깊이 각인된다. 그것은 다채로운 심상을 남기고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랜시간 감성을 지배하는 가장 풍요로운 양분이 된다. 그러나 회색 콘크리트 건물과 팍팍한 일상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계절이 변하는 모습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도시의 아이들은 기껏해야 가로수의 이파리를 보며 계절을 안다.   

  이 가을, 지나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찰나의 아름다움을 알아채고 짙푸른 하늘을 보고, 볕을 쬐고, 바람을 맞으러 나갈 수 있는 낭만이 가장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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