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똑딱귀신 이야기 얽힌 창녕 돌확

똑딱 똑딱 우리 서방님 못 보셨어요? 라는 전설텔링 시작에 앞서

by 무한자연돌이끼

다음주부터 연재할 '똑딱 똑딱 우리 서방님 못 보셨어요?'를 본격적으로 쓰기에 앞서 그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창녕의 전설 똑딱귀신이야기를 미리 살펴보겠습니다.

돌확이 무엇인지는 아시죠? 이렇게 생긴 겁니다.

(전설텔링)20130902똑딱귀신이야기가 전해지는 돌호박2.JPG

여러분은 전설의 참맛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전설은 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지요. 전설이 문자화되어 책에 실린 것은 불과 1세기 안쪽일 겁니다. 아직도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옛날 옛적에…” 하고 시작하는 할머니의 옛이야기는 그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전해주시던 이야기 그대로는 아니겠지요. 흔히 하는 게임 중에 ‘말 전하기 놀이’처럼 다섯 사람만 거쳐도 마지막엔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변하기도 한답니다.


전설의 원형을 찾고자 한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특성상 어떤 전설의 원형은 정말 재미없을 것이란 추측은 할 수 있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달하는 사람은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게 각색해서 전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똑딱귀신 이야기’, 여러분도 이 이야기를 아이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서 좀 더 재미있게 각색을 해서 우리네 할머니와 할머니의 할머니처럼 이야기꾼이 되어 전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창녕이야기>에서 전하는 똑딱귀신 이야기


“영산읍에서 보림으로 가는 예전 길 옆에는 돌 호박이 하나 있는데, ‘똑딱귀신호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보기에 탐나는 물건이지만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호박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돌확은 누군가 집에만 가져가면 “똑딱, 똑딱”하고 석공이 돌을 쪼는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주인이 불을 켜고 방앗간을 둘러보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고 소리도 나지 않더라는 거죠. 주인이 다시 방으로 돌아와 불을 끄고 자려면 또 “똑딱, 똑딱”하고 소리가 나서 집안 사람이 모두 겁에 질려버리죠.


그 주인이 돌확을 원래 있던 자리에 가져다 놓게 되면서 마침내 돌확에 대한 이상한 소문에 퍼져 아무도 그 이후론 돌확에 손을 대는 사람이 없다면서 돌확에 얽힌 옛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옛날 충청도 어느 땅에 돌쪼시(석공) 젊은이와 그의 아내가 가난하지만 오웃하게 살고 있었는데 남편을 돌일을 하고 아내는 삯바느질하면서 가난한 살림을 지탱해나갔다며 옛이야기 속의 옛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이를 문학 용어로 ‘액자 구성’이라고 하지요.


아내의 약값 때문에 빚을 지게 된 돌쪼시는 창녕으로 돌 일을 하러 떠납니다. 1년 기약입니다. 돌호박 1개를 마지막으로 남겨 둔 채 빚쟁이와 약속날짜에 맞춰 품삯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온 청년은 동구 밖에서 아내를 만납니다. 아내는 자신이 고향을 떠날 때 옷을 그대로 입고서 남편을 마중 나온 것입니다.


돌쪼시는 1년 만에 아내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동안 고생한 일들을 묻기도 하면서 위로도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의 뒤에서 따라오면서 계속 똑같은 말만 되풀이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기다리다 못해 요즘은 날마다 여기까지 나와 기다렸답니다.”


돌쪼시는 아내가 전과 달리 말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집에 도착해서는 아내가 먼저 방에 들어갔는데 등불을 켜지도 않고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돌쪼시가 직접 등불을 켜고 보니 방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아내를 찾는다고 고함을 치니 이웃 사람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아내가 남편을 기다리다 열흘 전에 방에서 죽었다고 전합니다.


돌쪼시는 빚을 대강 갚고 다시 창녕으로 돌아와 마지막 남은 호박을 만듭니다. 추운 겨울임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돌을 쪼았습니다. 아내를 잊기 위해 죽자고 일만 하지만 아내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돌확을 다 만들었을 때 얼마나 정성을 들여 잘 만들었으면 호박 면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잡념이 많거나 마음이 나쁜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지리적으로 영산면 교리 243-1번지에서 채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돌확은 길옆에 버려진 채 뒹굴다가 사라지고 지금은 이야기만 남았습니다.


어쩌면 그 돌확이 사라진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실물이 있었다면 이야기의 신비함은 덜했을지도 모르죠. 그 돌확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으니 어떻게 생겼을까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돌확, 무엇에 쓰는 물건인가?


‘돌호박’ 혹은 ‘돌확’이라는 용어가 낯선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호박’이라는 단어는 먹는 ‘호박’과 음이 같아서 개념이 더욱 헷갈릴 수도 있겠습니다. ‘호박’은 한마디로 자연석을 우묵하게 판 것으로 곡식을 으깨는 도구입니다. 절구의 윗부분이지요.


문헌에 보면 ‘큰 방아나 절구에 찧을 것이 못 되는 적은 양의 곡식(보리)을 찧는 데 사용되며 고추 마늘 생각 등의 양념을 갈기도 하고 소금 등을 빻기도 한다. 양념도 여기서 갈면 고소하며 제맛이 난다. 자배기는 전라남도의 해안지대에서 많이 쓰며, 돌확은 전라북도 경상도 충청도 등지에서 쓰인다(<한국의 농기구> 문화재관리국, 1969)’라고 되어 있군요.


돌확은 ‘돌’과 ‘확’의 합성어인데, ‘확’이라는 것은 중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청동기 그릇입니다. 한자로 ‘?’이라고 씁니다. 청동기 가마솥이라는 이야기지요. 이 ‘확’을 경상도에선 ‘호악’ 혹은 ‘호왁’으로 불렀다가 ‘호박’이라는 말로 굳어진 듯합니다.


밀양에 유명한 관광명소 중에 ‘호박소’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여기에서 나오는 ‘호박’이 ‘확’에서 비롯된 말로 쉽게 풀이하자면 ‘가마솥 못’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제의에 쓰이던 확의 모양새로 돌을 쪼아서 만들다 보니 용도가 곡식을 빻는 것으로 변했고 지금은 돌확에 곡식 빻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으니 이 물건도 사라질 법한데 아직 골동품 가게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쓰임새가 없어지면 물건도 없어지는 것이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인데 이것은 용케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습니다. 변신에 성공한 거겠죠. 이 돌확은 절이나 약수터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물을 잠시 저장해놓는 용도로 많이 쓰이고 있으며 정원에서 관상용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돌확에 얽힌 다른 전설


함안지역에 ‘쌀이 나오는 돌확’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 돌확에 얽힌 전설을 들려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경남은행이 1998년 발간한 <우리고장 전설, 속담>에 담겨 있습니다.


옛날에 가난하지만 착한 농민이 있었는데 뼈가 빠지게 일을 했지만 세 끼 끼니를 때우기도 힘에 부쳤습니다. 이 농민은 부지런하다고 소문이 나서 이웃집 들일을 맡아 하게 되었습니다. 오전 나절 열심히 일하고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착한 농민이 밥을 먹기 전에 반을 남겨 빈 그릇에다 담자 주인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지요. 굶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께 드릴 것이라고 하니 주인은 일꾼이 배고프면 일을 허술하게 할까 봐 거짓으로 ‘자네 부모님에겐 따로 차려드리겠다’고 하지요.


그 말을 믿었건만, 착한 농민이 열심히 일하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부모님이 쫄쫄 굶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책감 때문에 산에 들어가 엉엉 울었지요. 산나물이나 열매를 구해 부모님께 죽이라도 해 드릴 요량으로 산을 헤매는데, 나무뿌리 아래에 있는 돌확을 발견합니다.


착한 농민은 돌확에 손을 넣으며 자신도 모르게 “이 확 구멍에서 쌀이 나면 부모님 진지를 해 드릴 텐데.”하고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러자 손에 하얀 쌀이 한 움큼 나오는 것입니다. 착한 농민은 그 쌀로 부모님께 맛있는 밥을 해 드립니다.


착한 농민은 매일 산을 올라 돌확에서 쌀을 구해다 밥을 해 부모님을 공양합니다. 어린이가 보는 옛 동화에 나오는 단골 배역이 있지요. 네, 이웃의 욕심꾸러기 심술보가 등장합니다. 착한 농민에게 그 연유를 물은즉슨, 그렇고 그렇게 됐다고 하니 이 욕심꾸러기 당장 산으로 달려갑니다.


돌확은 착한 농민이 말한 대로 있었고 한 번에 한 됫박만 나왔습니다. 그 양이 성에 차지 않자 욕심꾸러기는 큰 돌을 주워 확의 구멍을 더 넓힙니다. 그러자 이제 더는 쌀이 나오지 않습니다. 화가 난 욕심꾸러기는 돌확을 부숴버릴 생각으로 큰 돌로 내리칩니다. 그때 돌 파편이 튀어 눈을 맞아 실명하게 됩니다.


더욱 화가 난 욕심꾸러기는 돌확을 완전히 박살 내버리고 말지요. 그 후론 어느 누구도 돌확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다네요. 창녕이야기나 함안이야기나 돌확은 결국 실물이 없어져야 이야기의 존재가치가 있나 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장자늪 구렁이의 저주(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