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창녕 영산읍 '돌확'에 얽힌 똑딱 귀신의 사연
오늘부터 들려줄 이야기 제목은 ‘똑딱똑딱 우리 서방님 못 보셨나요’야. 어째 제목부터 으스스하지? 아니라구? 사실 ‘똑딱똑딱’ 이 말이 오금을 저리게 하는 말인데, 말 꺼내기 댓바람부터 바람잡이하는 통에 다 베리놨네. 나중에 이 장면이 나올 건데, 그때 모두 뒤로 나자빠지지 말라꼬 이 할배가 미리 언질을 주는 기다 생각하모 된다.
요새 날씨가 억수로 덥제? 그래서 이 할배가 납량특집으로다가 똑딱귀신 이바구를 마련했다 아이가. 들어봐라이. 옛날이라고 뭐 여름에는 안 더웠겄나. 요즘보다야 덜했겠지만도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뭐 그기 인지상정 아이겄나. 조선시대 쯤 됐을랑가, 붙어 있는 두 마을에 만복이라는 사람하고 천석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능기라. 둘은 엄청 친했제.
하루는 방앗간 하는 만복이가 천석이 동네에 놀러갔어. 한여름이라 일감도 별로 없고 해서 일찌감치 친구랑 술이 마시고 싶었던 게지. 만복은 천석이를 만나 대낮부터 주막에 들어간 거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수다를 떠는데, 니네들 친구랑 두어 시간 전화로 통화하고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하자, 하고 말해본 적 있지. 이 만복이 천석이 두 친구가 딱 그런 스타일이야.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이야기 나누는 거 아니면 술잔 나누는 것이니 오죽했겠어.
두 사람은 몸도 제대로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마이 마싰는데, 그래도 일어설 생각들을 안해.
“그래가꼬? 어, 그래 인자서 바람이 좀 부네. 그러니까? 내가 무슨 말 할라 캤더라?”
“이보게, 만복이. 방앗간은 그래도 사람들이 곡식을 찧지 않으모 입에 풀칠을 못하이까네 운영은 된다 아이가? 그란데 대장간은 파인 기라! 사람이 없어. 낫이나 호미 만들어 놓으모 머하노. 살라쿠는 사람이 없는데.”
“에고, 빨리 가을이나 왔으모 좋겠네.”
“세월 금방이다. 자, 건배! 어, 술이 없네. 어, 술병도 비었네. 만복이, 한 병 더 하까? 그래그래, 주모! 여기 탁배기 한병 더!”
그라이 주모가 이 양반들 어지간이 술이 된 거 같은데 또 시키나 싶어서 주뼛주뼛 곁으로 와.
“하이고, 우리 오라버니들 오늘 약주 과하신 거 같은데 인자 술자리 파하시는 기 어떻수?”
그리 말하고 반응을 살피는데, 만복이란 양반은 벌써 얼이 반쯤 나간 거라. 머, 거의 인사불성이라고 봐도 될 정도란 말이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체가 앞뒤로 왔다 갔다 하지, 또 중심을 잡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옆으로 왔다 갔다 해. 게다가 코에선 거친 숨소리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들락거려. 에고 안되겠다 싶은데,
“이보, 주모 빨리 술 한 탁배기 안 가지고 올 거유?”
“아니, 사람이 이렇게 고주망태가 뭔 또 술이요, 이쯤에서 일어서는 기 좋겄소.”
“주모, 돈 못 받을까봐 그러쇼? 우리 술값 낼 돈은 있다 이거야. 오데서! 좋은 분위기 망치지 말고 어서 술이나 더 내오라구!”
천석이 그렇게 큰소리를 치며 손바닥으로 술상을 탕하고 내려쳤겠다. 그러자 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던 만복이 화들짝 놀라면서 하는 말이,
“아이고, 미안하네. 내가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고. 어, 그래. 망치는 내일 바로 빌려줌세.”
“아니, 그기 아이고~.”
“아니, 아닌게 아니라 내가 잠깐 딴 생각을 하고 있었네만, 자네 얘긴 다 듣고 있었어. 아무 걱정 말게.”
만복이 자다가 일어나 엉뚱한 말을 쏟아내니까 주막 안에 있던 다른 손님들이 막 웃고 난리가 난 거야. 그라이 천석이 이양반도 당황스럽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하고 해서 더는 주막에서 술을 마실 수가 없었던 게지.
“여보게, 만복이, 정신차려보게. 가세. 나, 참. 거기서 엉뚱한 말을 해서는...”
천석이 만복을 부축해서 주막을 나왔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주모가 ‘어라! 술값도 안 주고 그냥 가네’ 싶어 따라나온 거야.
“술을 마셨으면 술값은 주고 가야지?”
“달아놓으시게. 내일 줌세.”
보통 이런 장면에선 주모가 외상술 손님 맥살이라도 잡고 돈 떼먹지 말라면서 악다구니쓰는 모습이 떠오를 텐데... 주모 반응이 ‘응, 그려’야. 왠줄 알아? 천석이 이 주막 단골이거든. 외상술을 그렇게 많이 먹어도 한 번도 떼먹었던 적이 없으이, 주모도 어련할까 해서 봐주는 거야.
두 사람은 동구밖까지 어깨동무하고 휘청휘청 걸어갔어. 기분은 좋았지. 서로 죽이 딱딱 맞는 친구, 사람이 한 평생 살면서 이런 친구 생기는 거 쉽지 않거든. 기분은 좋지만도 친구 만복이가 집으로 돌아갈라쿠모 시내를 건너고 재를 넘어야 하는데 은근히 걱정이 됐지. 그나마 보름달이 휘영청 떠서 그닥 어둡지 않은 게 다행이라 쿠모 다행이지.
“만복이 자네, 많이 취한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가는 게 어떻겠나?”
“무슨 말인가, 우리 마눌님께선 내가 집에 오지 않으면 잠을 안 자는 사람이라네. 자네, 그거 잘 알잖는가? 빨리 집에 가야지. 가만, 우리 집이 어느 쪽이지?”
“알았네, 알았어. 그럼 저기 고개까지만 바래다 주겠네.”
“아이, 이 친구 정말. 난 안 취했어. 그냥 기분 좋을 뿐이라구. 고개까지 올라가면 우리집에 다온 거나 마찬가진데, 자네더러 우리집까지 바래다 달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됐네, 여기서 헤어지세.”
“그러면, 다리께까지만 바래다 주겠네.”
“좋아! 그 정도는 봐주지. 하하하”
만복은 시내가 흐르는 다리에서 천석과 헤어졌지. 천석은 은근히 걱정이 됐지만, 지금까지 만복이 술이 떡이 되도록 마셔도 한 번도 사고 없이 집에 잘 들어갔기 때문에 그저 조심하라고만 이르고 보내줬어.
만복은 콧노래를 부르면서 고개를 올라갔지.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나를 좀 보소
동짓 섣달 꽃 본 듯끼 날 좀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낫네~ 에, 에, 에헤....”
그렇게 한참 흥얼거리면서 올라가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쎄한 게 소나무가 만복이 어깨를 턱 잡고 끄는 듯한 기분이 들어.
“머꼬?!”
하믄서 뒤돌아 보는데, 아무도 없어. 그냥 느낌이려니 생각하고 걷던 길을 계속 걸었지.
“날 쫌 보쏘오, 날 쫌 보쏘오, 나를 쫌 보쏘오오”
만복을 무스움을 떨쳐낼라꼬 더 일부러 큰소리로 노랠을 불렀지. 그렇게 고개에 다다랐을 때였는데, 오데서 ‘똑딱, 똑딱’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지금 이 시각에 누가 산에 있을 리도 없을 낀데, 이기 무슨 조화고 싶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믄서 둘러봤지. 소리는 분명히 나는데, 아무도 없으이 만복이 그냥 술이 확 깨는거야.
“머꼬? 누고? 사람이모 나오고 귀신이모 나오지 마라!”
그라이 ‘똑딱, 똑딱’ 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거야. 바로 옆에서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아무도 없으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기라.
“이기 무슨 조화고. 내가 술이 덜 깬 기가. 이상하네.”
그리 혼잣말로 중얼중얼하더니 안되겠다 싶어 막 뛰어내려 갈라 쿠는데, 앞에서 먼가 희끄무레한 기 잘 안보이지만 사람 모습을 한 물체가 떡 막아선 거야.
“우씨, 깜짝이야. 누고? 당신이가? 내 마중 나온 기가?”
희끄무레한 형체는 아무 대답이 없어. 그라믄서 점점 다가오는데, 만복이 고마 미치겠는기라. 꼭 귀신 같거든. 그런데 만복이는 귀신 같은 거 안 믿는다 말이야. 그래서 설마 설마 하믄서 앞에 서 있는 사람 얼굴을 자세히 봤어. 아이고 잠이야. 다음 이야기는 담주에 하께. 잘 자고. 참 당부할 끼 하나 있는데, 잘 때 귀신 꿈꾸고 그러지 말어,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