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창녕 영산읍 '돌확'에 얽힌 똑딱 귀신의 사연
지난주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께. 술 취한 만복이 고개를 넘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 ‘똑딱, 똑딱’ 소리가 나믄서 형체가 희끄무레한 여자가 다가오더라 캤제? 분명히 마누라는 아니란 말이지. 마누라 같으모 만복이가 못 알아볼 리가 없지. 그런 거 있잖아, 부부끼리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단숨에 알아보는 그 느낌적인 느낌.
그런데 이 여자가 만복이 앞 열 걸음 정도 왔을 때 얼굴을 자세히 보니 말이야? 만복이는 숨이 컥 막히는 줄 알았지. 창백한 얼굴에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어 비녀로 쪽은 진 모습인데, 긴 머리카락에 피 묻은 입술을 한 전형적인 귀신의 모습이 아니라서 더 실감이 났던 거지. 술이 그냥 확 깬 거야.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이 와들와들 떨고 있는데, 그 여인이 뭐라는 줄 아나?
“혹시 우리 서방님 못 보셨나요?”
이러는 거 아이가. 목소리가 가냘프고 슬픔이 가뜩 배가 있으이 만복이는 마 미치는 기지. 그라믄서 하늘색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자꾸 만복이한테로 다가와. 이거 뭐라고 말은 해야겠는데, 머 입이 떨어지야 말이지. 보름달까지 뜬 밤이다 보이 훨할 꺼 아이가. 이 창백한 얼굴의 여인이 눈앞에까지 다가왔으이 얼매나 무섭겠노. 영화관 큰 화면에 강시 맹키로 허연 얼굴을 한 여자가 떡 비친다 생각해바라. 이거 완전 공포영화지.
“아저씨, 아랫마을에서 괴나리봇짐을 메고 있던 우리 서방님을 보시지 않으셨나요?”
만복은 ‘이 여자가 뭐래?’ 속으로 말을 삼키믄서 아래위를 훑어봤지. 그러다가 하늘색 치마 아래쪽에 시선이 갔을 때 한 번 더 숨이 컥 막혔지. 발이 없어. 아니, 발이 없는 기 아이고 발이 땅에 안 붙어 있고 공중에 붕 떠 있는 거야. 게다가 신발도 없이 맨발이고. 까무룩! 만복이는 고마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리고 말았지.
햇살이 만복이 얼굴에 살짝 비치고 새소리가 시끄러워. 가물가물한 기분이 들면서 깨어났는데, 아침이네. ‘뭐꼬? 내가 요게서 잔 기가? 이기 어찌된 기고?’ 가마이 생각해보이 엊저녁에 있었던 일이 하나둘 생각이 나는 기라. 귀신한테 크게 해코지 당한 거는 아인 거 같고, 해서 만복이는 헛것을 봤나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지. 그러다가 비틀. 아이고 아직도 술이 덜 깼나보다 하고 중심을 잡았지.
속으로는 인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인기라. 와 기는? 고갯마루서 자버렸으이 외박한 꼴이 됐다 아이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마누라한테 미안해 죽겠는 기지. 그래가 서둘러 내리갈라 쿠는데, 머가 눈에 띄는 기 있어.
“머꼬, 이기? 이런 기 와 여게 있노?”
만복이가 본 기 머겠노? 돌확인기라. 돌확, 이기 먼지 아나? 돌로 맹글어진 넓고 납작한 용기인데, 물이나 곡식을 담아놓거나 또 반죽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는 주방용품이라고 보믄 돼. 그런데 생각해봐라. 깨진 것도 아이고 멀쩡한데 누가 일부러 갖다 버리지는 않았을 낀데, 이 비싼 물건이 산등성이 고갯마루에 버려질 이유가 만무하거등.
만복이 직업이 머라캤노? 방앗간 주인 아이가. 그라이 이런 돌확은 척 보모 얼마나 비싼 긴지 싼 긴지 아는 기라. 만복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 누가 버렸는지, 흘렸는지, 지발로 왔는지는 몰라도 주인이 없는 거는 분명한 거 같으이 이건 내꺼다 싶은 기라. 그래가 만복은 돌확을 등에 지고 고개를 내려와 집으로 갔지.
집에 와서 깨끗하게 씻으이 반질반질하니 윤도 나고 곡식 빻는 용도로 쓰자이 너무 기품이 있어 보이는 기라. 머, 허름한 방앗간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도 공짜로 생긴 기고 그라고 방앗간에 이런 귀한 물건 하나쯤은 있어야 좀 있어보이고 할 거 같아가 디딜방에에 받쳐 쓰던 낡은 돌확을 치우고 그 자리에 딱 앉혀놨지. 그라고 가마이 보이 만복이 눈에 방앗간 안에는 죄다 낡은 장비하고 도구들 뿌인데, 유독 디딜방아에 받쳐놓은 돌확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 같거든.
마누라도 그거 보고 좋아했지. 남편이 외박하고 아침에 들어온 거 두고 잔소리 퍼부울라 캤는데, 고급스레 생긴 돌확을 보고 거 정신이 팔리가꼬 남편 머라카는 거를 잊아삔 기라. 돌확이 새로 들어오고 나이 방앗간 손님도 마이 늘었어. 방아를 찧으러 오는 손님마다 돌확을 보고는 한마디씩 보태.
“어느 돌쪼이가 맹글었는지 참 잘 맹글었다. 이거는 디딜방아에 받치가 쓸 물건이 아인데….”
“이런 돌확은 대감댁 정원에나 어울리겠는데, 박서방, 이거 어디서 구했노?”
“돌확이 꼭 여염집 아낙 같네. 호호호.”
오는 사람마다 이렇게 농담을 늘어놔. 만복이하고 마누라는 손님들의 그런 반응이 싫지 않았지. 이 돌확 덕분에 방앗간이 점점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는 기라. 만복이하고 부인은 점점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그만큼 돈을 버니 입이 째지는 기라.
분명히 저 돌확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방앗간에 파리를 날맀거등. 그란데 저기 들어오고 나니까 막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한 기 분명한 기라. 그라이 만복이가 무슨 생각을 했겄노? 분명히 신비스러운 힘이 있는 거 아이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 하지만도 앞서 얘기했던 거 맹키로 만복이는 초자연적인 현상, 머 귀신이라등가 마법이라등가 그런 거는 전혀 안 믿는 사람이거든. ‘아닐 끼다, 그냥 우연일 끼다’ 하고 마음 먹기로 한 기지.
그렇게 해가 지고 바쁜 하루 일과를 끝냈지. 부인이 이부자리를 펴면서 피곤해하는 서방을 보고 걱정을 해.
“여보, 피곤하지예? 어젯 밤에도 잠을 설치는 거 같더마는. 오늘은 일찍 주무시소.”
“그러게. 오늘 점심 때 이후로 계속 눈이 감기샀더마는 아마도 몇 번은 일하믄서 자기도 했을 끼라. 오늘은 마 일찍 잡시다.”
얼매나 피곤했는지, 두 사람은 이부자리에 들자마자 잠이 들어버렸지. 만복이는 천둥치드끼 코를 골고 부인도 작은 소리긴 한데, 주거니 받거니 코골이 화음을 넣으믄서 잘도 자네.
“크러렁, 쿠우~!”
“코~ 코~ 코오~!”
그렇게 밤이 깊어갔고, 자정 쯤 되었을랑가?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만복이 아내가 그 소리에 살풋 잠이 깨어 만복이 등을 톡톡 치는 거라.
“여보, 밖에 무슨 소리 안 나요? 나가 보소.”
만복이는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 반응이 없는 기라.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부인은 처음에는 이기 무슨 소리고 싶다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 소리가 자꾸 반복해서 들리 오니까 마 신경이 쓰이는 기라.
“아, 여보! 밖에 누가 왔능가 본데, 얼른 일나서 나가보소.”
그제서야 살풋 잠이 깬 만복이는 귀찮다는 듯이 돌아누었어.
“오긴 누가 온다고 그래. 잘못 들었겠지.”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선잠에서 깬 만복이 귀에도 인자는 이 소리가 들리는 기라. ‘이기 먼 소리고’ 하믄서 몸을 일으키 세우고 앉아서 가마이 들어보이. 갑자기 며칠 전 천석이한테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고갯마루서 들었던 그 소리하고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 기라.
‘설마? 그래, 아이겠지.’
그라믄서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를 느꼈지. 부인이 방문을 열치고 좀 내다봐라고 등을 밀치니까 우씨, 더 겁이 나는 기라. 우야겄노. 그래도 마누라보고 나가보라 칼 수도 없고, 이런 거는 또 사내가 해야되겄다 싶어가 방문 밖으로 몸을 내밀믄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
“거어~, 누가 있소?”
그라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기라. 똑딱 소리도 멎었어. 만복이가 휴 다행이다 싶어가 문을 닫을라꼬 문줄을 잡아댕기는데,
“아저씨, 우리 서방님 혹시 못 보셨나요?”
화들짝! 이거 분명히 며칠 전 고개를 넘어올 때 들었던 그 귀신 목소린데 싶어가 정신이 아뜩해진 기라. 머꼬 머꼬 저 귀신이 와 우리집에 왔노? 그때 내를 따라 왔나? 아이모 그동안에 내를 찾아 헤매다가 인자서 우리집을 찾은 기가? 오만 생각이 다 들믄서 고마 미치겠는 기라. 마누라도 그 소리가 들맀는지 만복이 등에 딱 붙어가 바들바들 떨고 있는 기라.
“아저씨, 우리 서방님 어디서 보셨는지 말 좀 해주세요?”
그 소리에 닫으려던 문을 더 열고 내다보니, 그날 밤에 봤던 그 귀신이 돌확 위에 붕 떠서 있는 기라. 아이고 엄마야! 하고 문을 닫을라 카는데,
“잠깐만요. 제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귀신의 말투가 누구를 해칠라꼬 하는 거 같지는 않거등. 그래가 다시 문을 서서히 여니까네, 마누라가 옆구리를 쿡쿡 찔러. 괜히 상대했다가 해코지 당할까 겁이 났던 기지. 그래도 만복이는 한 번 마주쳤던 터라 그때와는 달리 좀 대범해졌다고나 할까.
“그래예, 이야기 들어주께예. 대체 무슨 사연이 있어가 저승에도 못가고 이리 구천을 떠돌아댕기믄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지 이야기 함 해보소.”
“고맙습니다. 저를 만난 많은 사람이 담력이 약했는지 바로 사망하는 바람에 제 사연을 들려줄 수 없었는데…, 아저씨를 만난 게 천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머라꼬? 이 귀신을 본 사람들이 죽어삤다꼬?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했지. 이러다가 우리도 죽는 거 아이가 싶어가 걱정이 팍 들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아저씨는 돌아가실 일 없을 겁니다.”
그라믄서 돌확 위에 있는 디딜방아에 걸터앉으믄서 사연을 이야기 해.
“저는 충청도에서 돌쪼이를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이 아낙 귀신이 인자부터 본객적으로 썰을 풀어놓는데, 그 이바구는 담주 하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