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텔링)창녕 영산읍 '돌확'에 얽힌 똑딱 귀신의 사연
충청도서 왔다는 이 아낙의 이야기를 들어보믄 사연이 참 기구해.
“수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부는 가난하긴 했어도 참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남편은 건실한 청년이었지요. 우리 마을에 있던 석조물은 거의 제 남편이 만든 것이랍니다. 솜씨가 좋아서 동네 사람뿐만 아니라 이웃 마을에서도 주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럼 저 돌확이 남편의 작품이라는?”
“네, 그렇습니다. 남편이 마지막으로 만든 작품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돌확에 영혼이 깃들게 되었는지…?”
만복은 정말 궁금했던 모양이야. 똑딱귀신이 돌확에 얽매여 떠나지 못하는 데는 필시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 같거든. 만복이 그렇게 물으니까 똑딱귀신은 한동안 과거를 회상하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3년 전이었어요. 전 언제부터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어요.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우리에겐 아이도 없었죠. 남편은 늘 바쁘게 살았습니다. 돌을 쪼는 일이 힘들면서도 벌이는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이 할배가 사투리를 안 쓰고 이바구를 하이 좀 어색하제? 인자부터는 이 똑딱귀신의 사연 속으로 들어가이 정신 잘 챙기고 들어야 된데이.
“여보, 아무래도 경상도 창녕을 다녀와야겠소. 창녕 어느 대감 집에 큰 공사가 있는데 석공의 삯을 크게 쳐준다는구려. 여섯 달만 하면 일이 끝난다고 하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겠소?”
여섯 달이나? 혜정은 남편이 여섯 달씩이나 멀리 창녕에 가서 일한다는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 안 그렇겠나? 안 그래도 몸도 아픈데, 혼자서 여섯 달이나 보내야 하는 기 영 자신이 없는 기라. 아, 혜정이? 내나, 그 똑딱귀신 이름 아이가. 남편 이름은 석근이다. 세근이 아이고 석근, 돌석 자에 뿌리 근 쯤 되겄지. 혜정이라는 이 아낙은 참 착했는 기라. 자기 몸이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 정도로 아프면서도 남편 걱정을 먼저 하는 기라.
“괜찮겠습니까? 오랜 객지 생활에 병이라도 들면 돌봐줄 사람도 없을 텐데, 그게 적정이네요.”
“내 걱정은 하지 마시오. 당신 몸이 이렇게 안 좋은데 내가 오랫동안 떠나 있으려 하니 미안하오.”
“당신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전 괜찮아요. 이웃이 많으니 여기 걱정은 마시고 잘 다녀오세요.”
“딱 6개월만 참아주시오. 삯을 받으면 바로 달려오리다. 그 돈으로 당신 병을 낫게 하고 또 더는 고생시키지 않으리다. 부디 그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도록 하세요.”
아이고마, 짠~하다. 남편 석근이가 그 말을 하믄서 아내 혜정이 손을 꼭 잡았는데, 한참 시간이 흘러도 손을 놓지를 못하는 기라. 하기사 6개월이나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어찌 쉽게 발이 떨어지겠노? 아내가 한 개도 안 아픈 몸이라 쿠모 또 몰라도 언제 어찌될지 모를 병을 가진 상태다 보이 더 발이 안 떨어지는 기라. 그래도 창녕에 가서 6개월만 고생하모 큰 돈을 벌어 지 마누라 병을 고칠 수 있다 생각하고 다짐도 하는 기라.
“여보, 다녀 오리다. 가서 돈 많이 벌어 당신 병은 내가 꼭 고치겠소. 그리하여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삽시다.”
아내 혜정도 더는 남편 떠날 길을 붙잡고 있으모 안 된다, 생각했던 기라.
“예, 잘 다녀오세요.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둘이 그렇게 헤어지는 데 반나절은 걸렸을 거라. 속으로는 가지마라, 가지마라 쿠고 겉으로는 잘 다녀오라 쿠이 어찌 양단간에 결정내리기가 그리 쉽겄노. 그라고 서로가 얼매나 걱정이 됐시모 그랬겠나 싶기도 하네. 남편이 떠나고 아내 혜정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매일 같이 기도를 하는 기라.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하는지 이웃들이 저러다가 건강을 더 해칠까봐 말리기도 할 정도였는 기라.
자, 그라모 석공일을 보러 창녕으로 떠난 석근이는 우예됐능가 함 보까? 집을 떠난 지 나흘 만에 창녕 김대감 댁에 도착한 석근이 행랑채에다 짐을 풀고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지. 공사현장은 김 대감 집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진 않았고 인근에 사는 창녕 토박이인 장 서방이라는 사람과 함께 조를 이뤄서 일을 하게 됐는 기라.
그 장서방도 창녕에서는 제법 솜씨가 알려진 석공이었지. 실력 있는 두 사람이 짝을 이뤄서 작업을 하니까 일에 효율이 팍팍 오르는 기라. 석공들 사이에서 둘의 작업이 실력대결로 비견되고 하니까 관심이 쏠리게 됐지. 그라니까네 김 대감도 그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생기가, 그렇게 공사 현장에는 모습을 안 비치더니 인자 사흘에 한번씩은 찾아오지 뭐야.
김 대감도 어렸을 때부터 학문뿐만 아니라 예술에도 꾸준히 관심 갖고 공부를 한 덕에 예술작품 수준을 평가할 정도 수준이 됐지. 김 대감이 현장에 와서 보니 석근이 작품하고 장 서방의 작품이 유난히 빛이 나는 기라. 일개 돌쪼이가 어떻게 이런 완성도 높은 석조 물건을 만들 수 있나 하고 자기 눈을 의심할 정도로 긴가민가 했지.
“이게 정말 자네들이 만든 것이란 말이지? 정말 대단하네 그려. 흠집 하나 없이 어떻게 이렇게 유려한 곡선으로 석물을 만들 수 있지? 자네들은 그냥 석공이라 하기엔 너무 아까운 실력이야. 자네 두 사람은 단순 작업 말고 석물의 주요 부분을 맡아서 일해주게. 내 도석장에게 그리 일러놓을 테니 내일부터는 막일은 하지 않아도 되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신나게 일을 안 했겄나. 사람들의 칭송에 장 서방은 좀 우쭐해지기도 했지. 그런데, 석근이는 그런 데 전혀 신경을 안 써. 오직 6개월로 잡혀있는 공사 일정을 앞당겨 끝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
김 대감은 공사 현장엘 종종 찾았는데 그 이유가 뭔지 아나? 그래, 딴기 머 있겠노, 석근이하고 장서방이 만드는 작품을 감상하려는 기지. 그기 또 새 집을 지으면서 김 대감한테는 또 유일한 낙이었던 기라.
“흠, 오늘은 진 서방 작품이 조금 더 낫구만.”
이런 식으로 평가를 해. 그라이 장 서방은 석근의 작품과 자기 것이 비교되는 기 싫었던 기라. 그래도 어쩔 거라, 김 대감한테 거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해야할 처지라.
“대감 마님의 예리한 시선,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음 작품엔 대감 마님의 눈에 꼭 들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하면서 너스레를 떨어. 그런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김 대감이 올때마다 석근의 작품에 대해서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장 서방의 작품에 대해서는 그렇게 칭찬을 하지 않는단 말이지. 사실 장 서방의 작품도 다른 석공들의 것이 비하면 엄청 고급진 것이거든.
그것 때문이었는지 장 서방은 점점 게을러지기 시작했어. 하루 동안 해내야 할 분량이 있는데, 장 서방은 작업지시를 받으면 그 즉시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단 말이지. 김 대감이 올때나 열심히 하는 척을 해. 그러니 어디 제대로 된 작품이나 나오긴 하겠냐고.
장 서방이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점점 작업 속도가 늦어지니까 우짜겄노. 석근이가 장 서방의 몫도 다 해야 했지. 물량이 많을 때는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할 수밖에 없으이, 석근이 몸이 남아날 수가 없지. 그렇다고 장 서방 일을 김 대감한테 일러바칠 수도 없고, 환장할 노릇이지. 그렇게 게으름만 피우면 말도 안해. 며칠 전부터는 맨날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시고 들어오는 기라.
은근히 걱정이 됐지. 이러다가 6개월이 되어도 작업량을 마칠 수 없겠다 싶으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는 기라.
“장형, 이제 그만 마음을 푸세요. 이러다 정해진 날짜 안에 일을 마치지 못할까 걱정이오.”
“무슨 소리요? 천하의 진형께서 그런 걱정을 하시다니, 그 재주 좋은 손을 잘 놀려 봐요. 하루에 두 사람 몫이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잖소?”
그렇게 말하곤 자기 자리로 가서 골아떨어졌지. 늘 그런 식이 되다 보이 석근이는 장 서방이 미운 마음도 생기고 그러다 보니 일도 기한 안에 끝나지 못할 것 같고, 하염없이 기다릴 아내를 생각하면 마, 미칠 것 같은 기라. 그라이 어찌 일이 손에 잡히겄노.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정해진 날에서 사흘이 지났지. 생각해봐라. 석근이는 딱 정해진 날짜가 되모 손을 털고 고향으로 달려가 아내를 만날 생각이 가득인데, 장 서방 때문에 일이 꼬여버렸으이, 그 맴이 어떻겄노 말이다.
정해진 날에서 열흘이 지났는기라. 석근이는 이상한 꿈을 꿨지. 아내가 자꾸 눈물을 흘리믄서 빨리 돌아오라고 손짓을 해. 그라믄서 자꾸 멀어지는 기야. 화들짝 놀라서 잠이 깼는데 말이다, 이건 머 영 불안해가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분명히 뭔 일이 있을 것 같거든. 와, 무다이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안 있더나.
그래가 또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가. 이쯤 지나고 나니까네, 장 서방이 그리 게으름을 부리싸도 돌확 하나 딱 남겨놓을 정도로 작업을 거진 마무리하게 됐지.
‘이젠 끝이다. 이틀만 지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하고 속으로 외치면서 그날 일과를 끝냈지. 그날 밤 또 꿈에 아내가 나타나. 아내 혜정이가 둘로 갈라진 무덤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아이가. 그래서 석근이는 무덤으로 들어가지 말라꼬 그리 소리를 쳐도 아내는 듣지 못한 듯기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계속 들어가는 기라.
“안돼! 여보! 거기 들어가면 안돼!”
석근이는 한동안 고함을 치믄서 손을 허공에 허우적거리는 거라. 옆에서 자던 장 서방이 깜짝 놀라 깼지. 지금까지 6개월을 넘게 한방에서 잠을 잤는데,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 그래서 장 서방은 석근이를 거세게 흔들어 깨웠지.
“이보게, 진 서방! 무슨 일이야! 어서 눈을 떠 보게.”
정신을 차린 석근이는 아무래도 꿈이 심상치가 않거든. 그래서 아침나절이지만 출근도 하기 전에 김 대감한테로 달려갔지.
“대감 마님, 돌확 하나만 만들면 소인의 소임이 모두 끝나는데, 어젯밤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서 집안에 필시 무슨 일이 있을까 불안하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먼저 집에 다녀와서 돌확을 완성해도 될는지요?”
김 대감도 성격이 화통하거든. 그리고 석근이의 돌쪼이 솜씨가 조선 최고라 할 정도로 신뢰하고 있으니 얼마든지 허락을 했던 기라.
석근이는 그날 아침 대감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봇짐을 챙겨서 아침밥도 걸르고 고향으로 달려갔지. 배가 고파가 도저히 걷지 못하겄다 싶으모 어데 주막에라도 들러가 밥한술 떠고, 또 밤낮없이 달려서 도저히 쓰러지겠다 싶으모 주막에라도 들러 밥한술 챙겨먹고 하믄서 달린 끝에 이틀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는기라.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 어스름이 쫙 깔린 저녁 무렵이었는데 말이다. 저 멀리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누라 혜정이 기다리고 있는 거라. 이 시각에 올 줄 어떻게 알고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서 기분이 더 좋았던 거지.
“여보, 여보! 나 왔어.”
석근이 손을 흔들며 달려가니까 아내 혜정이도 손을 흔들며 막 반겨. 둘이 6개월 여만에 만나가 서로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믄서 좋아하는데, 이건 마 영환기라. 어둑한 마을 어귀에서 사랑하는 부부가 6개월만에 만나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반가워하는 모습, 상상 한 번 해봐라. 영화도 이런 영화가 없는기라.
“왜 이리 늦었어요?”
“미안해요. 사정이 있었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다시 얼굴을 마주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소.”
석근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혜정을 꼭 끌어안았지. 아내 혼자 고생시킨 걸 생각하니 울컥 뭔가 치밀어오르는 듯하더니 이내 눈물이 콸콸 쏟아져. 석근이의 눈물이 혜정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지. 혜정은 그런 석근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봐. 6개월 넘게 오매불망 보고싶었던 얼굴이니까 얼매나 좋았겠노. 둘이는 팔짱을 끼고 집으로 갔지.
집에 도착하니까 마이 어둑해졌는 기라. 석근이가 보기에 집은 어둠에 싸여 있어서 형체를 퍼뜩 알아보기 어렵긴 했는데, 느낌이 옛날과 똑같다는 생각을 했지. 방으로 들어간 둘은 호롱불을 켰지. 불빛에 비친 아내의 모습이 예전보다 엄청 수척해 보인 거는 사실이지.
“아이고, 우리 마누라 이렇게 보니 엄청 수척해졌네. 얼굴이 반쪽이다.”
“서방님을 많이 기다렸습니다.”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일터에서 6개월 삯을 모두 받았으니 이제 편안하게 살 일만 남았다오.”
“이렇게 서방님을 만나다니 꿈만 같아요.”
“자, 이거! 오는 길에 당신한테 잘 어울릴 법한 꽃신을 한 켤레 샀다오. 한 번 신어봐요.”
캬~. 석근이 아내 사랑, 정말 대단하지 않냐?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지도 않으면서 밤낮으로 달리면서 어째 장에 가서 마누라 꽃신 살 생각을 다 했대? 꽃신을 받아든 혜정이, 그 꽃신을 가슴에 꼭 안으면서 너무 행복해 하는 거라.
“여보, 꽃신이 너무 예뻐요. 정말 마음에 들어요. 이 꽃신은 안 신고 평생 이렇게 간직하고 살 거예요. 호호호.”
“하하하. 그렇게 좋아요?”
그러면서 둘이 또 꼬옥 껴안았지.
“이제 당신을 떠날 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나면서 누군가 석근이를 불러.
“진 서방 있는가?”
목소리를 들어보니 마을 형님들인 거라. 석근이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고 찾아온 모양이야. 오랜만에 듣는 동네 형님들 목소리라 석근이도 반가웠지.
“여보, 잠깐만 기다려요. 내가 왔다는 걸 어떻게 알고 형님들이 찾아온 모양이오.”
그렇게 혜정에게 양해를 구하고 석근이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지. 6개월 만에 보는 얼굴이니 석근이도 무척 반가웠지.
“아이고, 형님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런데 이 형님들 표정이 밝지를 않아. 둘 다 석근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하는 거라.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는 기라. ‘이 형님들이 왜 이러지’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는데,
“이 사람아, 자네는 이렇게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으면서도 자기 아내가 어떻게 된 건지 묻지도 않어, 어떻게?”
석근이는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의아했지. 아내가 어떻게 됐는지 묻지도 않다니, 대체 이 형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는 거라.
“아니, 형님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긴긴 이바구 들어주니라고 고생 마이했다. 이 긴긴 이바구를 맹글어가꼬 들려주는 거는 더 힘들다는 거 느거들 잘 알고 있제? 그라모 됐다. (계속)
앞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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