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부곡 노리-임해진 사이 개벼리에 얽힌 전설
천년후애
창녕 부곡 노리-임해진 사이 개벼리에 얽힌 전설
오늘은 어떤 전설을 들려주꼬? 얘들아, 창녕 임해진이라는 곳에 가본 적이 있나? 거어가 어데고 쿠모, 낙동강 옆길 따라 창녕 부곡면 노리 쪽으로 가믄 강쪽으로 쑥 튀어나온 길이 보이는데 약간 고갯길이거든. 거길 지나가 내리막으로 엄마 차를 타고 내려가다 보모 쑥 들어간 곳에 마을이 있는데, 거어가 임해진이라 쿠는 데다.
시방은 이 길이 말이다, 차가 댕기는 길로 맨들어지가꼬 차가 양쪽으로 댕니는 넓은 길이지만도… 보자, 한 30년 전만 캐도 이 쪽으로는 길이 없어가 노리와 임해진 사람들은 베랑길을 타고 서로 오고갔다 쿠데. 한 맨년 전에 이 할배도 이 도로로 차를 타고 안 갔더나. 낙동강을 끼고 도는데 마 갱치가 지기데. 옛날 베랑길을 타고 길을 댕깄던 사람도 낙동강 경치를 만끽했을 끼라. 요새는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오고가믄서 낙동강 경치를 즐기고 있다 아이가.
혹시 이 길을 지나가 본 적이 있는 사람 있나? 아무도 없나? 언제 한 번 가게 되모 길 옆을 잘 보믄서 가래이. 거어 머시 있다. 길가에 울타리로 보호하고 있는 무덤이 있을 낀데, 이 무덤이 말이다, 노리 쪽 웃곡넘어골 마을 입구에 있거든. 오래돼가 글자가 거의 안 보이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무슨 비석이것노? 궁금하제?
바로 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인 기라. 그래서 이걸 ‘개비’ 혹은 ‘개비석’이라고도 안 하나. 무덤이 볼록한데, 이거는 후세 사람들이 봉분을 쌓아 만든 거 아이겄나 싶어. 이 개비석에는 전설이 얽혀 있거든. 들어볼래? 먼가쿠모, 개들의 사랑이 얽힌 애틋한 사연이 있다 아이가. 얘기 해주까, 재밌겠제?
옛날, 그러니까 아주 먼 옛날에, 낙동강을 끼고 만들어진 창녕 부곡 강변에 두 마을이 있었데이. 두 마을 사이에는 험준한 산이 가로막고 있어가 사람들이 서로 왕래를 하지 못해가꼬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산 너머 동네에 누가 사는지 잘 알지도 못하고 안 지냈겄나.
풍년이 든 어느 해, 그라이까 두 마을이 거의 동시에 사흘 밤낮을 잔치를 벌있는데 말이다. 그때, 임해진 마을에는 열여들살 짜리 예쁜 처이가 살고 있었고 노리 마을엔 스무 살짜리 멋진 총각이 살고 있었다 아이가. 두 마을 사이에서 머가 이루어질 것 같제?
어느날 말이다. 임해진 마을의 배가 낙동강 물살을 따라 흘러가는 거를 노리 마을 청년들이 보게 됐거든.
“아니, 저거 임해진 마을 족장 배가 아이가?”
달염모(喙念牟)라는 청년이 벼를 한 아름 가슴에 안고 있는 사달추수(沙喙鄒須)한테 와가꼬는 강 쪽으로 손을 가리키믄서 보라꼬 소리쳤지.
“어허, 이 친구 방정맞구로…. 임해진 배가 지나가는 거 오데 한두 번 보나?”
“그기 아이라, 저 배 위에 있는 달빛처럼 환한 아가씨를 보라꼬. 임해진에 저리 아리따운 아가씨가 있었다는 게 믿어지나?”
사달추수는 친구 달염모의 손끝을 따라 뱃머리에 고고하이 선 채로 머리카락을 흩날리믄서 가고 있는 여자를 물끄러미 안 쳐다봤더나. 마 멀리서 봐가 그 표정을 자세히 읽을 수는 없었지만도, 그 낭자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아 보이는 기라.
“이번 추수가 끝나모 우리 임해진 마을에 한 번 놀러 가보자. 내는 저 아가씨 얼굴을 한 번이라도 가까이서 안 보믄 미치삐겠다.”
“임해진은 산이 저렇게 가로막고 있는데 우째 갈라꼬?”
사달추수가 험하고 높은 산을 턱짓으로 가리고는 달염모한테 어림도 없는 소리 하지 말라캤지. 그라믄서 머라꼬 했나 쿠모.
“알지도 못하는 여자 얼굴 자세히 볼라꼬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산 너머 마을에 가겠다꼬? 니 어찌 된 거 아이가? 씰데 없는 소리 말고 일이나 어서 거들어라.”
그런데, 그리 맑았던 날이었는데 밤이 된께 갑자기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 안 하나. 남쪽에서 바람이 씨게 불더마는 방문이 막 흔들리고 마루도 빗물로 흥건했지. 마루가 그 정돈데 마당은 우째됐겄노. 빗물로 골짜기가 생길 정도 아이었겄나. 마을 앞 논은 벌씨로 물에 잠깄지.
사달추수는 오늘 낮에 추수해놓은 벳단이 물에 떠내려갈까 봐 가꼬 걱정이 돼가 도롱이를 걸치고 밖으로 안 나갔더나. 벳단은 빗물에 흥거이 적시가 있제, 또 빗물이 불어난께 베가 떠내려갈 지경인 기라. 그래가꼬 창고에서 새끼줄을 꺼내가 벳단을 몇 겹이나 꽁꽁 안 묶었더나.
바로 그때였지. 빗소리도 시끄러운데 바람소리마저 쓍~ 하고 막 불어재끼 사니까 사달추수도 정신이 한 개도 없었기라. 그런데 그때 말이다. 멀리서 희미하이 사람들 비명 소리가 들리는 기라. 이상하다 싶어가 소리 난 쪽으로 달려가 보이께네 강 중간쯤에서 불빛이 막 흔들리고 있는 기라.
‘저기 머꼬? 도깨비불이가?’ 그리 생각도 하믄서도 지도 모리게 강가로 가까이 다가갔지. 강변이 가까워질수록 사달추수는 사태가 심각하다는 거를 느낀 기지.
“아가씨를 먼저 구해라!”
“유모가 물에 떠내려간다. 누가 빨리 가서 구해온나!”
“여기요, 여기! 나 좀 살려주이소!”
여기저기서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기라. 그때서야 사달추수는 그 배가 낮에 하류로 지나가던 임해진 배인 줄 알았던 기지. 그 배가 돌아오믄서 폭풍을 맞아가꼬 사고가 난 기지. 사달추수는 지도 모르게 걸음이 억수로 빨라진 기라.
“풍덩!”
사달추수는 전속력으로 헤엄을 치가꼬 사고 현장에 도착했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없나 싶어가 고개를 이러저리 돌리는데, 강 가운데서 어른거리는 불빛 사이로 하얀 물체가 얼핏 눈에 들어오는 기라. 사달추수는 그기 임해진 족장의 딸이라는 것을 바로 딱 알아차리가 바리 그쪽으로 헤엄을 치가 갔지
그런데 강 가운데로 다다를쯤에 장대 같은 비가 또다시 요란하게 강물을 쏴하고 때리는 데다 바람마저 쎄가꼬 강물이 엄청 크게 울렁거맀지. 사달추수 지도 인자 역부족이다 안 싶었겠나. 포기하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드는데, 아이고 저 낭자가 곧 물속으로 가라앉아 죽겠다는 생각이 드니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 싶었던 기지. 있는 힘을 다해가 헤엄을 안 칬더나.
임해진 족장의 딸은 헤엄을 칠 줄 몰랐지. 머 알았어도 어지간이 잘 치는 거 아이모 이런 강풍에 폭우에, 빠른 물살에 살아남기 오데 쉽겄나. 그 낭자 이름은 월아(月阿)야. 월아는 오랫동안 허우적거맀는데, 그러다가 누군가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마 정신을 잃고 말았지.
“으히히히. 각시야, 내 각시야! 오델 자꾸 도망가노?”
큰 칼을 휘두르면서 사천왕상을 닮은 무시무시한 거인이 등 뒤로 바짝 따라오니께 월아는
“악~”
하고 비명을 질렀는데, 이상하지. 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자신의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던 거까? 바로 앞에 있던 아버지도, 다른 식솔들도 자기 비명을 못 듣는 것 아이가. 환장할 노릇이었겠지. 뒤에선 무시무시한 사천왕이 바로 자신을 덮칠 기세인데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생각을 하지 않으이 어찌 갑갑하지 않았겠노?
“내 쫌 구해주이소! 제발 살리주이소!”
소용이 없는 기라. 월아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지.
“아가씨, 괜찮은교? 눈을 좀 떠보이소!”
월아의 반쯤 뜬 눈 속으로 희미하게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지.
‘이분이 나를 구해주신 기가?’
월아는 앞에 있는 남자가 사천왕으로부터 자기를 구해준 사람이라고 생각 했는기라.
‘고마와예. 고맙십니더.’
몇 번이나 자신을 구해주가 고맙다고 말을 하는 데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기라.
“정신차려보이소, 아가씨!”
그 소리를 듣고 월아는 어느새 나비가 팔랑거리며 노니는 꽃밭을 걷고 있었는 기라. 옆에는 잘 생긴 청년이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었지. 그 잘생긴 청년이 손을 내미는 기라. 월아는 조께 부끄럽기는 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그 손을 잡았지.
“인자 걱정하지 마이소. 내가 있으니께네?”
그 잘생긴 청년의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드니까 월아는 그 청년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기지. 황홀한 기분으로 그 손길을 따라 다가가는데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막 들리는 기라. 그라니께 그 청년이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는 거 아이가. 그런데 그 남자가 있던 자리에 몸은 없는데 그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거라.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가꼬 월아는 또 비명을 질렀지. 그런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야.
얼마나 갑갑했겠노. 무서워 죽겠는데 소리를 질러도 목소리는 안나오지. 그라도 보이 월아는 자꾸 눈물이 나는 거야.
“아버지, 전 어쩌면 좋아예. 절 좀 구해주이소. 누가 날 좀 구해주이소. 아, 그대는 어디 있어예?”
그라면서 월아는 눈을 떴는 기라. 꿈에서 벗어나니까네 순식간에 정신이 막 맑아지는 기라.
“인자 정신이 드십니꺼?”
어, 이 목소리? 월아는 아주 귀에 익은 목소리라고 생각했지. 맞은편에 앉아있는 청년이 꼭 꿈속의 그 청년인 것 같았지.
“네, 인자 개안습니더.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더.”
물에 빠져죽을 뻔했던 그 순간을 떠올린 월아는 그 청년에게 절을 올리고 싶었던 기라. 그래서 일어날라꼬 하는데,
“아직 몸이 성치 않습니더. 그대로 누워 계시소.”
“지가 얼마나 누워있었지예?”
“그저께 밤에 사고를 당하셨으이 꼬박 하루 반을 누워 있었습니더.”
“다른 우리 식솔들은 어찌되었지예?”
월아는 함께 사고를 당했던 다른 사람들이 걱정돼가 사달추수에게 물었어.
“유모만 실종되고 다른 분들은 무사하다고 합니더.”
“아, 유모….”
유모가 실종됐다는 말에 월아는 자꾸만 눈물이 솟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그 강물 그 물살에 유모가 어찌 살 수가 있겠노. 말이 실종이지 그건 죽었다는 말이나 매한가진 기라. 그 지옥 같은 물속에서 외롭게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유모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그 엄마 같은 유모가 인자 곁에 없다고 생각하이 어찌나 미안하고 안타깝고 서러운지 월아는 그냥 대놓고 엉엉 울었던 거야.
임해진 족장인 아버지가 자기를 남지 족장에게 첩으로 보내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사람이 바로 유모였다 아이가. 유모는 아무리 이웃 족장에게 빚을 졌어도 한창 피는 나이인 열여덟의 귀한 아가씨를 늙은 권세가에게 첩으로 보낸다는 거는 인간으로서 할 일이 아이라는 기지.
그때 엄마는 거실 한쪽에 앉아 가만히 눈물만 훔치고 있었지. 그런 엄마를 보믄서 월아는, 자기는 죽으모 죽었지 엄마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기라.
“어험, 나, 안에 있는 처자의 애비되는 사람이오만 좀 들어가도 되겠소?”
밖이 소란한 가운데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어.
사달추수가 방문을 여니까 밖에는 귀족으로 보이는 나이 든 남자와 덩치 큰 사내가 있는 거야. 그들 주변에는 또 군복을 입은 장졸들이 열을 맞춰 서있었어. 마루 아래에는 사달추수의 어머니가 작은 그릇에 죽을 담은 채 들어오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지.
“임해진에서 왔다는구나.”
“제 여식을 구해주신 분이시오? 정말 고맙소. 어떻게 사례를 해야 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이소.”
임해진 족장을 방 안으로 들어오니까 월아가 몸을 일으켜 앉았어.
“죄송합니더. 지가 배타고 유람 가자고 그리 우기지만 않았더라모 이런 일은 없었을 낀데….”
“우야겄노? 지나간 일이다. 잊아삐라. 그것보다 니가 이렇게 됐다는 거를 남지 족장이 우째 알고 찾아왔다. 밖에서 니를 보고 가겠다믄서 기다리고 있다.”
월아는 그 사천왕상 같은 남지 족장이 밖에 있다는 얘기에 고마 기절할 것 같았지.
“아버지, 전 그 사람 싫어예. 우리 옛날처럼 살모 안 돼예?”
“끝난 얘기다. 남지 족장한테 시집가모 니도 남 부러울 것 없이 잘 살끼고 우리 부족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아이가. 니는 족장의 딸이다. 우리 가족하고 부족을 생각해야지. 아버지의 결정에 따르거로 해라.”
눈물이 다시 월아 두 볼을 타고 쏟아내렸지. 월아는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푹 쉬더마는 자리에 누워서는 몸을 벽 쪽으로 돌리더마는 흐느껴우는 거야.
“아직 심신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네예. 좀 더 휴식이 필요한 듯한데 돌아가 계시면 몸이 회복되는 대로 지가 아가씨를 임해진으로 모시고 가겠습니더.”
사달추수가 임해진 족장하고 월아의 대화를 보이 무슨 일인가 대충 짐작했지.
“그렇게 해 주겠소? 그럼 잘 부탁하오. 참, 흡족하지는 않겠지만 딸을 구해준 답례로 조금 성의를 표시했으니 사양치 마시고 받아 주시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기 있겠습니꺼? 바라고자 한 기 아니라예, 거두어주시이소.”
사달추수는 사례를 극구 사양했지. 사달추수는 임해진 족장을 배웅할라꼬 밖으로 나왔지. 임해진 족장 바로 뒤에 서 있던,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는 기라.
‘저 사람이 남지 족장이구나.’ 사달추수는 몸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남지 족장에 대한 적개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는 기라. 그래서 마당으로 내려서자마자 자기보다 두 뼘은 더 키가 크고 풍채가 있는 그를 쏘아봤지.
그라니까 거만하게 서 있던 남지 족장도 사달추수를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봐. 첫 대면인데도 두 사람은 오랜 악연의 고리에 얽혀 있던 사람들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한참을 서로 째려본 기라.(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