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사투리 할배의 옛이야기 5
나야 나, 도롱이 도깨비 (5)
경상도 사투리 할배의 옛이야기 5
그러니까 어찌 됐겠어. 공부 친구들도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를 뚝 그치고 걱정하는 시선으로 박 도령을 바라보는 거 아이가. 그때 박 도령 사정을 잘 아는 훈장쌤이 노온 선생한테 귓속말로 뭐라뭐라 하더라꼬. 훈장 이야기를 들은 노온 선생은 잠시 고개를 끄덕끄덕하더니 부엌으로 가네. 머 하러 부엌으로 들어갔을지 아는 사람? 부엌에서 뭐 타는 냄새가 나서? 아니. 갑자기 술 생각이 나서? 아니. 노온 선생이 부엌에 있는 부인한테 박 도령 어머니 드실 음식 좀 챙겨놔라고 부탁한 거 아이겄나. 그라고 부엌에서 나와서는 곧장 박 도령한테 갔겠지.
“걱정마시게. 자네 모친이 드실 음식은 따로 싸두어라 하였다네. 그리고 병환에 도움이 되는 약초도 챙겨두었으니 잠시 시름을 잊고 오늘 같은 날 즐겁게 노시게.”
이 말을 들은 박 도령은 그제야 표정이 한결 밝아지면서 다른 글공부 친구들하고 얘기도 나누면서 음식도 입에 가져간 기지. 앞번에서도 얘길 했지만 박 도령의 집이 비미(어지간히) 가난해? 그라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때가 비일비재하거든. 그래서 맨날 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안 생기는 날이 어데 있었겠나. 그런 심정인데 잔칫집에 초청 받아 갖고 와서 이런 맛 난 음식을 보니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안 났겠노.
가난하게 살긴 하지만 워낙에도 부모님한테 효성이 지극해갖고 여러 이웃동네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가. 훈장 역시 박 도령이 어려서부터 가르쳐온 터라 모를 리가 없고 말이야. 노온 선생이 그 마음을 간파한 기지.
어찌 보믄 박 도령도 참 단순해, 그지? 맛있는 음식 앞에서 엄마 생각이 나갖고 뚱하니 있다가 어머니께 드릴 맛있는 음식을 챙기주니까 마, 그질로 얼굴이 꽃피듯 하는 거 보니까 말이다. 박 도령은 어머이한테 이 맛난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냥 째지는 기라. 그래가꼬 신성재 낙성을 축하하는 글도 마 멋지게 짓고 친구들하고 환담도 나누맨서 시간을 안 보냈더나. 잔치가 끝나가꼬 은자 모두 헤어질 시간이 되니까네 노온 선생 부인이 잔치 음식 하고 약초를 넣은 묵직한 보따리를 챙겨주는 기라.
박 도령은 노온 선생과 훈장, 문우들과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 마음이 급해. 와? 이 맛난 음식을 퍼뜩 어머이한테 드리고 싶어서 안 그랬겠나. 노온 선생 댁 대문을 나서서는 거의 뛰다시피 걸었지. 양반 체면에 촐랑촐랑 뛸 수는 없었거든. 옛날엔 그랬어. 양반이라 쿠믄 팔자걸음에 배를 쑥 내밀고 거드렁거드렁 걸어다니고 그랬다 아이가. 뭐 그렇다꼬 다 그랬다는 더는 아이고. 박 도령이 어찌나 빨리 걸었던지 금세 하천에 거의 다다랐지. 그런데 갑자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어삐더마는 소나기가 파악 쏟아지는 거 아이가. 머꼬 이거 하믄서 박 도령은걸음에 악세레다를 쑤욱 밟았다 아이가. 그라이 걷는 다리가 안 보일 정도였겠지.
하천에 당도하고 보이 이미 물이 징검다리를 삼키고도 남을 정도로 불어있는 기라. 환장할 노릇 아이가. 아이고 우짜노 하믄서 박 도령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하천 저쪽에서 뭐가 킬킬대는 소리가 나. 그래가 고개를 쭉 빼고 치다 보이, 도롱이를 입은 그 도깨비가 킬킬대믄서 춤을 추고 있는 거 아이가.
“쌤통이다! 킬킬. 니, 내캉 안 놀아준 대가가 어떤 건지 은자 알겄나?”
도깨비 처지에서 보믄 일종의 복수이자 장난이겠지만 박 도령으로서는 이만큼 난감한 일이 어데 있겄노. 이러다가 어머니께서 음식을 맛도 보실 수 없겠다 싶으니까 속이 고마 안달박달 안절부절 마 환장하겠는기라.
“도깨비야, 아침에는 미안했다. 내일부턴 니캉 씨름도 하고 노래도 부를 끼니까 좀 건너갈 수 있거로 해도!”
박 도령은 마음이 급하니까 우짜겄노. 무조건 도깨비하고 타협하는 기 우선이다 생각했겄지. 그런데 도깨비도 아침에 배알이 꼬인 게 있는 터라 박 도령이 사정해도 안 들어준다 아이가.
“흥! 니 말을 어떻게 믿겠노? 이 냇물을 건너게 해주모 바로 또 모르는 체 할 거 아이가?”
“어머이께서 병석에 누워계신 데 와 내가 니한테 거짓말 치겄노. 어머니께 이 음식을 드려야 한다 아이가. 이것 말고는 내 다른 생각은 한 개도 없다. 그러니까 내를 이해 좀 해주고 비를 멈차 도. 내 소원이다. 니도 알 거 아이가. 내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거!”
그렇게 사정을 하는데도 도롱이 도깨비는 콧구멍을 후벼가믄서 딴청을 피우는 거 아이겄나. 이 도롱이 도깨비는 좀 다른 모양이야. 대개 도깨비들은 어리석어가 사람 말을 쉽게 믿고 속고 또 속는다는데 이 도롱이 도깨비는 그기 아이다 이말이지. 마음은 다급한데 도깨비는 전혀 말을 들어주지 않을 것 같으니까 박 도령이 어찌 했겠노.
이 장면에서는 배경음악도 쫙 깔리고 주인공 박 도령의 움직임도 그 머라카노, 그래 슬로비디오로 자짜짜짜 하믄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니까 그거 상상해보라꼬. 박 도령이 비장한 표정으로 하천 가까이 다가가고 있어.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을 때마다 쿵 쿵 소리가 나믄서 꼭 지진이 난 것 맹키로 화면이 흔들려. 상상이 되나? 그래가꼬는 품에서 종이와 붓을 촥! 꺼내는 거야. 붓에 먹물을 묻히가꼬 화선지 종이를 허공에 쫙 펼치고는 일필휘지로, 아, 일필휘지가 뭐냐쿠모, 나중에 사전 찾아봐라. 초서로 휙, 휙, 휙휙 순식간에 이렇게 적는 거야.
“아! 하늘이 나의 불효를 꾸짖어 벌을 주는구나!”
그렇게 적은 글을 불어난 하천 물에 띄어 보냈지. 그라니까 도롱이 도깨비가 박 도령의 진정한 마음을 간파하고 하천 건너편에 있는 박 도령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거야. 텔레파시를 받은 박 도령도 도깨비한테 덧붙여서 한 가지 더 요구해 갖고 서로 합의를 본 거야. 싸인하고 복사까지 하진 않았지만, 그순간 갑자기 비가 멎고 넘치듯 불어난 냇물이 신기하게도 가라앉아 징검다리를 드러내는 거 아이겄나.
집으로 돌아온 박 도령은 노온 선생 댁에서 얻어온 잔치 음식을 어머니께 차려 드리고 약초도 정성껏 다려서 자시게 했지. 엄청 좋았던 약초였던가 봐. 사흘쯤 지나니까 어머니의 병세가 몰라보게 좋아진 거 있지. 아무리 약초가 좋다 캐도 이렇듯 빨리 낫는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 아이겄나.
그때 문득 박 도령은 도깨비와 한 합의 내용이 떠올린 거라.
‘정말 그거 때문일까?’
그때 무슨 말이 텔레파시로 오갔는지 궁금하다꼬? 쪼매만 기다리 봐라.
도깨비를 만나러 가기로 한 날, 박 도령은 어머이 저녁 밥상을 차려 올리면서 입가에 미소를 짓는 기라. 박 도령 표정 보모 머가 잘 못 된 거는 아인 거 같은데, 참 묘하제?
“어머이, 식사 많이 하시고 늘 건강하이소.”
머꼬, 죽으러 가나? 목소리도 착 가라앉은기 예전과는 마이 다른데…. 박 도령이 그리 말 하이 어머니 목소리는 전에 비해 달리 마이 좋아졌네.
“무슨 말을 그리 뜬금없이 하노? 인자 내 몸도 많이 나아졌으이 걱정하지 말거라.”
어머이의 그 말씀을 들으이 박 도령은 마음이 마이 안심이 됐어. 그래서 사립문을 나서서 뒷산 고갯길을 따라 정상 쪽으로 올라가는 거야. 그래. 박 도령 표정 함 볼래? 비장, 비장, 그런 비장함이 또 없는 기라. 귓속에선 소나기가 내리던 날 하천을 사이에 두고 도롱이 입은 도깨비와 주고받았던 말이 맴돌고 있는 기라. 마이 기다맀다. 그때 무슨 말을 텔레파시로 주고받았는지 인자 알리주께.
“킬킬킬…. 니 목숨을 나한테 주모 니 소원 다 들어주지.”
“좋다. 그라모 먼저 내가 하천을 건널 수 있게 하고 우리 어머니께서 건강하고 오래 사실 수 있게 해도.”
“킬킬킬…. 그거야 일도 아이지. 그란데 아직 한참 젊은 니가 어머이 살리자꼬 목숨을 내놓다쿠이 그 효심은 알아주겠다. 알았다. 그리 하자.”
“사흘 후 어머니께서 쾌차하신 모습을 보이모 니 찾아서 산에 들어가께!”
이 말들이 그날 텔레파시로 도깨비랑 사람이 주고 받았다는 기 신기하제? 앞으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전화 말고 텔레파시로 대화할 날도 안 오겠나 싶은데, 느거들은 우째 생각하노?
우옜거나 박 도령은 도깨비랑 나눈 대화를 생각하믄서 산 정상에 다다랐어. 때마침 노을이 멀리 서산 너머로 붉게 타들어 가고 있네. 얼마나 장관이야. 세상은 참 아름답다 생각했겄지. 느거들은 그리 생각 안 하나?
그날 박 도령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 기라. 담날 아침에 마을 사람들이 박 도령을 찾을라꼬 뒷산 고개로 올랐는데, 거서 전에 한 번도 못 보았던 큰 바위가 있다는 걸 눈치챘는 기라. 그런데 그 바위에 말이다, ‘愚谷(우곡)’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 기야. 한자 뜻풀이를 그대로 하자모 ‘어리석은 골짜기’ 머 그쯤 되겄는데, 왜 이런 글자가 큰 바위에 새겨진 것일까.
이번 전설텔링 이바구는 여기까지야. 앞으론 좀 더 재미있는 이바구가 펼쳐질 끼다. 이 사투리할배가 앞으로도 재미난 옛날 이바구를 마니마니 들려줄 테니까 채널고정! 알겄제?(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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