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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나, 도롱이 도깨비 (4)

경상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할아버지 옛이야기 4

by 무한자연돌이끼

나야 나, 도롱이 도깨비 (4)

경상도 사투리로 들려주는 할아버지 옛이야기 4

(전설텔링)삽화-조갈내 이야기2.jpg

집으로 돌아온 박 도령은 하나밖에 없는 갓을 쓰고 도포를 턱 걸치고 어머이 방 앞으로 안 갔겄나. 요새 느거들 같으모 우옜겠노? 사화마을 박 도령 집에서 명곡마을 적성현감 집까지 비미(어련히) 먼 거리겠나, 허니 떼를 써서라도 어머이한테 데리다 달라꼬 했겄지. 근데 박 도령은 다른 기라.


“어머이, 오늘 맹곡마을에 적성현감을 지낸 노온 선생 댁에서 낙성 잔치를 여는 데 초대를 받아가꼬예….”

방안의 기척을 기다리는데 한동안 어머이께서 말씀이 없다 아이가. 그래서 이렇게 한 마디 덧붙였지.


“어머이께서 이리 병환 중인데 잔칫집에 갈라쿠이 차마 발이 안 떨어집니다.”


카니까, 어머이께서


“아이다. 니는 그런 거 신경쓰지 말고 댕기오니라.”


“어머이, 그라모 퍼뜩 댕기오겠습니더. 반상에 채리(차려) 놓은 미음이라도 때 거르지 마시고 드시이소.”


봐라, 봐라. 이리 효성이 지극하다 아이가. 박 도령이 효성만 지극했겠나. 얼라(어린이) 때부터 공부도 곧잘 해가 일찌감치 초시라는 시험에 합격했다 아이가. 그런데도 말이다,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았던 기라. 와? 자기 공부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이가. 과거에 합격한 기 한두 번도 아이지만서도 번버이(번번이) 관직을 마다하고 동네 동생들한테 조금씩 공부도 안 가르쳐 줬더나.


요새 같으모 과외지. 과외하모 그 과외비가 마이 든다 쿠데. 그라모 박 도령이 돈을 많이 벌었겠다 싶지만서도 돈은 마 한 개도 안 받았는 기라. 그라이(그러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거 아이가.


그건 그렇고, 박 도령은 집을 나서가 떡뫼라꼬 부르는 뒷산 낮은 고개를 넘어 맹곡(명곡)마을로 향했는 기라. 이 고갯길에도 큼지막한 바위가 많아가꼬 그 도롱이 걸친 도깨비가 또 안 나타나겠나 싶었는데, 다행히도 고개를 넘어 명서마을꺼정 내리 가는 동안에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는 기라.


고개를 내려서서 쪼깨 걸어가이 폭이 스무 걸음은 됨직한 하천이 안 있겄나. 이 하천은 말이다, 쪼매만 날이 가물모 물이 말라가꼬 하천 가운데만 물이 쫄쫄쫄 흐리고 그래가꼬 징검다리를 굳이 딛지 않아도 건널 수 있는 곳인 기라.


그래서 박 도령이 수월케 노온 선생의 댁에 당도했지. 도착하고 보이 벌써 많은 문우가 마당 한쪽에 있는 정자에 둘러앉아 소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말이다. 아, 문우라 쿠모 같이 공부하는 친구를 말하는 기라. 박 도령이 대문을 딱 들어서니까 문우들이 일제히 일어나가 반갑게 맞아주더라꼬. 박 도령이 참 친구들은 잘 사깄던(사귀었던) 기라.


친구들의 환대에 웃으며 반갑게 수인사를 나누고 노온 선생한테 갔지. 참 이 장면 이야기 드르니께 익숙한 장면이제? 설명을 덧붙이자 쿠모, 와 결혼식장에서 안 있나, 신랑, 신부 입장! 할 때 하객들이 막 박수치면서 좋아하는 그런 장면 안 있나, 딱 그런 모습이었다 아이가.


박 도령이 노온 선생한테 다가가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지. 느거들도 이 박 도령 맨키로 예의범절이 있는지 모리겄네.


“선생님, 소인 윤이 왔습니다.”


아, 박 도령은 어려서부터 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제. 와, 친한 사람들은 또는 가족들은 이름 끝자를 부르는 풍습이 우리한테 안 있나.


“어, 우곡 왔는가?”


우곡이 뭔고 쿠모, 박 도령 아호인기라. 옛날에는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막 부르고 안 그랬거든.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이름을 막 부르는 거는 실례라꼬 생각했던 기지. 그래서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을 호로 쓰는 사람도 많고, 맞다, 할머니들 예전에 무슨 댁이 하면서 택호를 부르는 거 들은 사람 있나? 호를 그리 쓰는 사람도 있고 또 스승이나 누가 지어주가(지어주어서) 그걸 이름 대신에 부르기 편한 이름으로 정하기도 했지.


박 도령이 노온 선생한테 인사를 드리고, 노온 선생 옆에 앉아 있던 훈장님한테도 인사를 드리고. 아, 그 훈장님은 박 도령을 어려서부터 글을 가르쳤던 분이었던 기라.


낙성설연에 초청된 사람이 모두 모인께네 잔치가 시작됐지. 음식상이 차려지니까 문우들이 저다마 음식을 먹으며 신성재 낙성을 축하하는 시를 지어가꼬 노온 선생한테 안 바치겄나. 그런데 말이다, 모두 즐거워하며 음식을 들고 있는데 유독 박 도령만은 음식을 안 묵고 있는 기라.


그래서 그 모습을 노온 선생이


“여보게 우곡, 왜 음식을 들지 않는가?”


하고 물었지. 노온 선생이 박 도령의 표정이 밝지 않으니까 괜히 걱정이 된 기라. 그런데 박 도령은 대답 대신 갑자기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기라. 와 그랬겠노?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해주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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