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일하던 의사가 "권 선생님, 글씨를 좀 알아보게 써주세요. 보고서 보기 힘들어요".
권 선생님은 답한다. "네"
권 선생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그렇잖아도 가늘고 고운 목소리가 풀이 죽은 채로 전날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자기가 뭔데 사람 글씨로 무시하냐, 하루아침에 잘 쓸 글씨였으면 이 나이 되도록 이렇게 쓰고 있겠냐고. 그 의사는 글씨 잘 쓴데? 글씨가 작아서 그렇지 정성이 담겨있는데 하면서 대신 역정을 내주었다.
누군 예쁘고 정갈하게 쓸 줄 몰라 못쓰는지.
"기분은 잠시 나빴지만 틀린 말은 아니어서 내가......" 하는데 말을 가로챘다.
"나, 언니 뭐 했는지 알겠다. 학원등록했겠네."
"어머, 너 어떻게 알았어? "
"놀랄 일도 많다. 누구 원망할 시간에 개선하려고 바로 실천의지 타오르는 거 지금껏 보아왔고 그래서 오늘날의 언니가 있는 거잖아"
참으로 언니의 실천의지 및 내면 세게는 대단하다.
위닝 멘탈리티가 강한 사람이다.
덕분에 공부에 공부를 거듭하고, 심지어 이른 아침 메이크업학원도 다닌 사람이다.
전화로 얘기가 오가던 중에 사무실에 팩스 한 장이 들어왔다.
"팩스 들어가고 있지? 봤니?"
"들어왔네. 그런 소리 듣고 펜글씨 교습학원 등록한 거야?"
"어때? 글씨가 좀 커졌지? 솔직하게 말해봐"
펜글씨학원에서 연습한 종이 한 장을 내게 팩스로 보낸 것이다.
"뭐 글씨형태는 비슷한데 크기는 커졌고 깔끔해졌어"
이 언니, 엄청 기뻐하면서 "그래, 좋아져야지"한다.
위의 이야기는 20대 시절의 아주 단적인 예다.
언니는 직장 생활하다가 대학에 입학한, 입학동기였지만 2살이 많았다.
친구들은 입학동기여서 이름을 부르는데 2살 위의 언니가 있던 나는 당연하게 '언니'하고 불렀었다.
그렇게 친해졌다.
언니는 반짝이는 기획력으로 직장생활 중 알찬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우수한 평가를 받으면서도 그 사이 출강도 했었고 박사수료도 했다.
누군가의 견제와 지적에는 먼저 자신을 살펴보고 상대방에게서 배울 점을 찾으며 위닝 멘탈리티를 발동했다.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외모인데 언니와 대화를 할 때면 언니가 갖고 있는 그 단단한 내면세계에, 유리파편 같은 내 멘털도 안정을 되찾곤 했다.
주변에 본인 위주의 생각의 바퀴를 굴리는 몹시 거슬리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친구가 있었다.
좀체 일반적이지 않은 일처리를 불만 삼아 언니에게 상담하면 돌아오는 첫마디는 '네가 그 사람의 그 언행이 싫은 이유가 뭘까?. 네가 하지 못하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그 친구에 대한 부러움도 있을 거야'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맞다.
당차고 스스럼없는 어찌 보면 안하무인 같은 그 말투가 거슬리면서도 '저런 말 나는 왜 못할까'라는 자조도 있었다. 들키고 나서는 좀 편안해졌다. 누군가 거슬리면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된다. 도움이 되었다.
직장동료와 업무마찰이 생길 땐 화를 내기보다는 성숙한 평정심을 나도 갖춰보자 결심도 하게 되었다.
언니는 너무나 상처가 되었던 나이 어린 직장상사의 불합리한 인사조치에 구구절절 원망이나 성토 없이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라는 조용한 한마디를 남기고 어쩔 수 없는 퇴사 후 자신의 사업장을 꾸리고 답답하리만큼 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
시간이 흐른 후, 그분에게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잘 되시라'고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이때가 마음속의 진정한 용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분도 자신이 성숙하지 못했었다고 심심한 사과의 문자를 보내왔다고 한다.
상대에게 내 용서 따위는 관심도 없는 잊힌 일이었을지라도 어느 날의 깨달음에 용기를 내어 실천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시간이 흘러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는 있었을 그 사람에게 언니는 기억될만한 사람으로 남을 것 같다.
나는 이 언니의 실천력을 지금 꼭 필요한 가족공동체의 묵혀둔 이슈에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 어차피 한 세상인걸' 결심은 하는데 실천은 못하고 있다.
내 내면은 아직도 덜 여물었고 자주 상처가 나고 있다.
내겐 아직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