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 힘들었다.

내년 되면 나아진다 [시어머니 말씀]

by 디오니

"그러게 왜 나를 먼저 낳지 않았냐고? 나는 왜 둘째냐고. 왜 맨날 언니가 먼저냐고! "

둘째 딸 영이가 눈물을 줄 줄 흘리며 초등학교 4학년때 하던 말이다.


이 맘 때는 첫째 딸의 학교 준비물을 문구점에서 구비해 오면 왜 자기는 안 사주냐고 서러워하고 '너도 내년 되면 이 준비물 챙겨갈 거야' 해도 '그러니까 왜 나는 맨날 먼저 못하냐고'라며 억지를 쓰던 때다.

기가 막혀서 "너를 어떻게 먼저 낳냐고요? 너 바보야? 말이 되는 소릴 해. 몇 살인데 그런 말을 해".

결국은 나도 화가 치밀고 억지로 떼를 쓰고 앉아있는 딸을 쥐어패고도 싶고, 정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작은 건수라도 생기면 억울하다고, '왜 나는 맨날 언니랑 비교당하냐'라고 읊어대는 소리에 거의 일 년은 같이 앉아서 싸우는 일로 보낸 것 같다.


어느 날은 퇴근하고 미처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있는 와중에 할 말 있다고 무릎을 착 꿇고서 커다란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떨구며 "엄마는 왜 사과하지 않아? 생각나는 거 없어? 그리고 사과도 좀 제대로 해. 쏘리 이러지 말고" 하면서 뭐 대단한 슬픔이 있는 거 마냥 울음을 삼키며 묻기도 했다.


거의 이렇게 시달리다 보니 '또 뭐가?' 퉁명스러운 소리와 함께 짜증부터 났었다.

학교에서는 새 학기를 맞이하면 선생님이 "아~, 네가 현이 동생이구나? 너도 공부 잘해?"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저씨가 나만 보면 " 둘이 닮았네. 네가 동생이지? 언니처럼 크려면 잘 먹어야겠네" 하고, 위아래층 할머니들도 나를 보면 뭐라 한다고. 어제도 똑같은 얘기 들었다고. 왜 자기들이 나한테 말 걸고 판단하냐고. 안 그래도 키가 안 커서 짜증 나는데" 하면서 울었다.


"그런데 엄마도 언니가 말하면 좋게 말해주면서 내가 말하면 화부터 내잖아. 그 심정을 엄마가 알아?"

"어른들이 너 보면 귀여우니까 한 마디씩 하시는 건데 신경 안 쓰면 되지 예민하게 굴어? 그리고 네가 그렇게 성질나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엄마가 고운 말을 해"

"엄마는 비교 안 당해봤잖아. 나는 내가 동생인 게 싫다고. 진짜 싫다고"

둘째 딸은 내가 하는 말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돌이표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집에 있던 첫째는 죄 없는 죄인이 되어서 우리가 싸우고 있는 몇 시간가량을 죄인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저녁 8시쯤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나는 나대로, 둘째 딸은 딸대로 신경전을 펼치며 앉아있는 날도 있었다.


우리는 싸우든 뭘 하든 정말 열심히 논리를 펼치고 대화? 아니, 말을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가 절정이고 점차 나아지더니 중학교 입학할 무렵, "너 대한민국에 젤 무서운 게 중학생이라던데 사춘기 며칠할 거야?" 장난 삼아 물었더니 "난 엄마랑 한참 싸울 때 그때가 아니었을까?" 그랬다.

두 번 말하지 않게 스스로 초등학교 생활도 욕심껏 도전하며 열심히 살던 첫째 딸 현이도 6학년때는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고 묻는 말에도 간단한 답을 하며 좀 냉소적이던 그때가 사춘기였던 것 같다.


둘째와 씨름하는 동안 첫째는 얼마나 머리가 아프고 싫었을까?

겉으로 뱉어내며 아프다 외치는 자와 속으로 담아두는 자 누가 더 아프지?

내 성장과정으로 보자면 삼키고 있던 내가 더 아팠다.


'요새 애가 이래요'하고 통화 중에 쓱 대화를 꺼내면 시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내년 되면 나아진다.

나는 마치 무슨 주문처럼 되뇌었었다. 그래 내년 되면 나아질 거야.

거짓말처럼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나아져서 딸이 '그땐 내가 왜 그랬을까?' 이런 말도 한다.

나도 매해마다 "너를 키워온 세월 중 지금이 최고야." 말해준다.

고2가 된 지금은 키워온 세월 중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는 중이다. 별다른 건 없다.

자기 말마따나 엄마가 몰라서 그렇지 자기처럼 착하고 성실한 애도 없단다.

언변이 좋다고 칭찬했더니 초등학교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걸로 엄마와 1시간은 기본으로 싸웠던 게 도움이 된 거 같다고 한다.

"그 말도 안 되는 말을 긴 시간 마주 앉아 따박따박 말을 했던 엄마도 참 대단했어. 엄마, 나 어렸을 때 새벽에 베란다에 내쫓겼던 것도 글로 써봐" 그런다.


정말 힘들었던 시기를 잘 보내고 나니 지금은 평안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쩜 이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