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나면
저절로 책에 손이 갑니다.
단어하나 문장하나 수없이 고뇌하며 완성시켰을 것이기에 소중히 책장을 넘깁니다.
책 읽는 시간이 좋습니다.
밤늦은 시간도 좋고
후다닥 빠른 점심을 때우고 자리에 앉아 읽는 30여분 정도의 시간도 좋고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읽는 잠깐의 시간도 좋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짧을수록 문장하나가 더 깊이 읽힐 때도 있습니다.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들만 보아도 그때의 내가 보입니다.
'깊은 슬픔'이 보입니다.
참 혼자인 것 같아 아프던 날, 작가보다는 제목만 보고 값을 치른 책입니다.
마음이 부대낄 때, 집을 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을 때는 서점에 갑니다.
발을 담글수록 빠지는 늪 같은 신경숙작가의 책들.
'깊은 슬픔'을 읽고 신경숙작가의 출간된 책들을 모두 읽습니다.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고구마 캐듯 찾아 읽습니다.
토지는 더위가 찾아올 무렵부터 읽는 걸 좋아합니다.
이야기에 빠져 잊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때 시작했던 책입니다.
토지는 지금껏 두번 읽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그의 책들을 모두 읽습니다
20대 때의 나는 책장이 넘치게 책을 채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간결한 삶이 좋아졌습니다.
책도 욕심이다.
가로 2칸, 세로 4칸의 책장을 넘기는 책들은 버리거나 나눔 했습니다.
어느 날, 더 간결하길 원했습니다.
세로 4칸의 책만 갖고 있기로.
어쩌다보니 남겨진 책은 구입하던 당시의 내가 보이는 것들로만 남았습니다.
아직도 나는, 나를 다 잡을 책들을 제목만 보고 데려올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간결하길 원했던 이후로 책은 도서관에서 마음껏 대여해 옵니다.
대여하여 읽었었는데 내 책장으로 데려오고 싶은 책은 '토지'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나 홀로 집에'를 방영하듯,
책과 관련하여 '나만의 의식 같은' 것으로 '토지'를 선택합니다.
간결해진 책장과 소박하다 못해 없는 듯한 내 살림.
너무 비웠나 싶다가도 그래도 지금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