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지랖인가?
오늘과 내일 세찬 가을비가 내릴 거라고 어제 일기예보를 했다.
역시나 아침부터 서늘하고 하늘이 무겁다.
현이는 3단 우산을 영이가 빌려가 놓고 잃어버렸다고, 장대우산 싫다고 빈손으로 등교하고
영이는 웬일로 긴 검정장대우산을 갖고 등교한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은 '학교 안 가는 법' 같은 거 있으면 좋겠다는 한탄과 함께.
오전부터 세차게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줄기가 무겁다.
현이는 웬만하면 뭘 잊는 법이 없는데, 영이는 비 올 때마다 학교 들고 갔다가 두고 온 우산 3개를 지난 금요일 하굣길에 챙겨 들고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비상이야. 나 우산 3개 들고 창피하니까 태우러 와야 돼. 빨리 와. 빨간색도 있어서 너무 창피해. 색깔이 구려".
비도 그쳤는데 그냥 걸어오면 되지. 15분 정도 지나 도착했더니 길가에 딸 둘이 서있다.
현이는 검정우산하나.
영이는 빨강하나, 검정 둘. 으이그. 잔소리가 나오려는 걸 참았다.
"빨리 오라니까, 나 창피한 거 다 겪었어, 짜증 나"
현이나 나는 도대체 그게 왜 창피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우산 3개를 들고 있는 게 왜 창피한 건지.
언니옆에 딱 붙어 서서 검정체육복바지를 입었으니 바지 옆에 검은색우산 2개를 딱 붙이고 없는 것 같이 위장했다나.
암튼 별나다.
오늘, 영이의 주민등록증을 찾으러 행정복지센터에 다녀오는 길,
중학생들의 하교시간 무렵이었나 보다.
장대비를 맞으며 지나가는 학생을 발견했다.
"우산 없이 비 맞고 가는 아이들 보면 너희들 생각나. 쟤 불러서 우산 줘야겠다"하면
"엄마, 웬 오지랖이야. 애들은 엄마 이상하게 생각한다고"영이가 말렸었다.
"너희는 엄마가 등하교시켜 주니 상관없지만, 쟤들은 얼마나 부지런하게 걸어서 학교를 가냐.
비를 만나 너무 안 됐다"
비 오는 날, 빠지지 않는 흔한 대화였다.
오늘은 성공하자.
마침 차 안에 빨간 장대우산도 있다.
2차선으로 천천히 가며 마주 걸어오는 학생과 마주칠 즈음해서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려 '학생'하고 불렀는데 아이가 듣지 못하고 그냥 갔다. 실패다.
도서관 앞 도로에 주차하고 보니 우산 하나를 둘이 쓰고 간다.
요건 패스.
찾았다.
도서관 앞 공원 정자에 비를 피하는 남학생이 보인다.
얼른 빨간 장대우산을 들고 차 옆에 서서 학생을 관찰한다.
누군가 마중을 나오는 걸까?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더니 하늘을 본다.
오는 사람이 없는 거다.
서둘러 발걸음을 떼는데 학생이 뛰쳐나간다.
얼른 "학생"하고 이번엔 크게 불렀다.
양손을 이마쯤에 걸치고 그 와중에 뒤를 돌아본다.
"학생, 남는 우산이야. 쓰고 가"
학생이 당황도 잠시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면서 빨간 우산을 편다.
난 시크하게 도서관으로 향한다.
학생이 큰 목소리로 한번 더 "고맙습니다"하며 빨간 우산을 쓰고 천천히 걸어간다.
가슴이 벅차고 웃음이 난다.
숙제 해결한 것 마냥 정말 흐뭇하다.
행복하다.
저 학생의 추억 한 자락 속에 '비 오는 날의 빨간 우산'이 남아있으면 좋겠다.
저 학생의 엄마는 오늘 저녁 학생의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흐뭇하실까 생각하니
더 뿌듯하다.
내가 오지랖 맞나?
딸한테는 비밀로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