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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그랬지

키워드 하나 정도는

by 디오니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안타깝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된 요즘입니다.

반대로 '저런 사람도 교사라고?' 할 정도로 분노를 유발하는 선생님들도 있었습니다.

새 학년을 맞이하면 학부모들은 담임선생님의 성향과 1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의 성격은 어떨지 몹시 신경이 쓰이죠.


요즘 아이들은 이미 새 학년 등교일 전, 반배정표를 보고 이번 학년은 '망했다, 살았다'로 난리가 납니다

첫날부터 학급 내 인싸를 중심으로 소그룹이 형성되고 이도 저도 그룹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일 년이 되도록 반에서 혼자 외톨이로 지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니 '친구는 친해지면서 사귀면 되는 거 아냐?'는 세상물정 모르는 답답한 얘기로 치부됩니다.

다행히도 초기에는 서먹했다가 시나브로 서로에게 스며들어 점점 여물어가는 밤톨처럼 단단한 교우관계를 맺기도 하면 일 년의 학교생활이 즐거워집니다.


또한, 어떤 담임선생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망했다, 신난다, 겪어봐야 안다'등으로 반응이 나뉘는데요. 서로가 처음부터 복불복인 걸까요? 아님 그림을 맞춰가는 걸까요?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근오신 권 선생님은 남녀공학고등학교의 2학년 담임이 되셨습니다.

어느 날 학부모에게 권 선생님의 문자가 왔습니다.


요약하자면 '몇 주 후 아이들 중간고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포스트잇에 우리 아이들 응원문구 몇 자 적어 회신 주시면 본인이 인쇄 코팅하여 시험전날 아이들에게 깜짝 선물을 할 예정이다. 그러하니 자녀들에게는 비밀로 해달라'는.

순간 뭐지? 초등학교 때도 못 받아보던 유형의 문자내용을 고등학교 선생님한테서 받아보다뇨.

그것도 30대 중반의 남자담임선생님.

응원의 몇 문장 적어서 회신하며 너무 안심이 되었어요.


며칠 후, 영이 얼굴을 보니 입이 근질근질한데 꾹 참았어요.

"너희 담임선생님 요새 엄청 바쁘신 것 같지 않니?"

"우리 선생님 원래 바빠. 그리고 요새 아기가 아파서 선생님이 병간호도 한대. 너무 안 됐어"


권 선생님은 새 학기 부임하시면서 아이들 생일도 챙깁니다.

생일자들 한 달에 한번 몰아서 하지 않고 그것도 각자 챙겨줍니다. 깜짝 이벤트로.

등교일에 생일인 아이는 케이크로, 휴일인 아이들은 만 원짜리 상품권을 주십니다.

공개된 비밀 이벤트인 셈인데 아이들은 자기 생일날을 엄청 기대한다고 합니다.

덕분에 학급 분위기도 좋아지고 아이들끼리도 친해졌답니다.


영이는 상품권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선생님 월급 박봉인데 우리 선생님 너무 착해".

"엄마는 이런 스타일의 선생님 처음 들어본다. 너희들 정말 복이 많다. 그런데 얼마를 받아야 박봉이니?"

"몰라. 선생님들은 박봉 아냐?" 합니다.

꼭 '우리 아이들'이라고 표현하시는 권 선생님은 참 아이들에게 진심이십니다.

그만큼이나 아이들도 권 선생님을 대할 때 친근한 '선생님'이 아니고 '선생님'이라고 합니다.

듣기 좋습니다.


9월 초, 봄부터 기다리던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3박 4일 동안 입을 옷을 날짜별로 세팅을 해서 챙겨갔습니다.

같은 팀인 친구가 잠옷을 챙겨 오지 않아 입을 옷이 없어 외출허락을 받으려고 갔더니 선생님이 '외출은 안된다, 내가 금방 다녀올게'하고 사라지더니 거의 한 시간 만에 땀범벅이 되어 돌아오셨답니다.

이마트까지 뛰셨답니다


' 그나마 없는 중에 고르고 골랐는데 마음에 안 들어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여학생이라 티셔츠의 그림도 고려했다' 하시며 티셔츠를 내미셨는데 땀에 절은 선생님을 보니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고 감동이었다며 "엄마, 4만 원짜리 티셔츠를 사 오셨는데 그림도 예뻐. 친구가 너무 죄송해하면서 돈을 드리려고 하니까 선물이다 하시면서 가셨어"합니다.

'대충 입고 자면 되지, 그걸 꼭 사러 간다고 해야 되냐'했더니 날짜별로 세팅해 온 옷을 미리 입을 수는 없지 않냐는 겁니다.

티셔츠를 건네준 선생님이 머리도 옷도 땀에 절은 채로 커피를 타시는 모습이 짠했다고 합니다.


수학여행기간의 제주도는 너무 더워서 더위에 찌들다 왔는데 집에 와서 짐을 풀면서 제일 먼저 꺼낸 이야기가 선생님의 한밤중의 러닝이었습니다. 우리 선생님 정말 착하고 감동받았다고.

참 훈훈하고 따스하고 보고 싶은 선생님이십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너무 착하고 예쁘게 말도 잘 들어서' 편안한 여행을 마쳤노라며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추후 정리해서 공유하겠다'면서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따스함과 진심이 있어서일까요?

영이는 10 학급 중에 영이네 반이 따돌림당하는 아이 없이, 모두가 친하게 지낸다고 너무 좋다고 합니다.




서로가 복불복으로 만났든, 서서히 스며들었든 서로 감사와 존중을 표현하는 선생님과 제자.

11년의 학교생활 중 학교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축하를 받으며 선생님이 준비하신 케이크의 촛불을 끄는

제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시험기간 전 부모의 마음이 담긴 응원메시지를 선생님께 깜짝 이벤트로 전달받을 때 아이들의 마음은요? 그리고 땀에 절은 선생님과 티셔츠와 수학여행은요?

그 따스함을 안고 돌아온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요?

아마도 먼 훗날 조금은 지칠 때 '맞아 , 그랬지'라고 하는 키워드 하나 정도는 기억에 품고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뿐만 아니라 내게도 먼 훗날까지 기억될 나의 선생님이 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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