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판매대리점에서의 그날들
세상엔 다양한 직종이 있지만, 어느 날 자동차판매대리점 영업현장에 취직이 되었다.
40대 중반이 되었을 무렵이고 세월호 사건으로 가슴 아파 많이 울고 지내던 며칠 후였다.
결혼 후 9년간 경력단절된 여자였던 나는, 전임자가 개인사정으로 퇴사가 불가피한 바람에, 내 전에도 두어 명 정도 하루 이틀 업무를 배우고는 다음날 출근을 하지 않는 바람에, 40대 중반 아줌마인 나는 뭣도 모르고 그저 취직이 된 게 좋아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면접을 본 바람에, 내 책상과 약간의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배치된 대표의 자리 때문에 나이가 많은 것 아니냐는 지역부관리자와 하루 이틀 하다가 가 버리는 데 그럼 사람 구해 줄 거냐는 대리점대표의 볼멘 통화도 본의 아니게 들어가며 업무인수인계의 첫날을 보냈다.
5시 30분. 퇴근시간은 좋았다. 집에 오니 1킬로가 빠져있고 저녁 입맛도 싹 사라지고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이던 두 딸의 저녁밥을 대충 챙겨주고 자리에 누우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겨우 하루 배워봤는데 이걸 할 수 있을까 싶은 게, 무엇보다 여직원 1명에 12명의 남자들로만 구성된 곳에 근무경험도 없을뿐더러 새롭게 배우는 전산시스템, 밖에서 볼 땐 자동차 몇 대 전시해 두고 조용해 보이기만 했던 사무실내에서의 자동차계약부터 출고, 등록, 문제차 생겼을 경우, 출고마감시간이 다가오는데 출고조건도 주지 않는 카마스터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 수시로 컴퓨터 창을 채우는 업무쪽지 등 전산 내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보이는 고되 보이는 하루였다.
거기에다 전산마감과 차량대금입금건 등 회계처리와 업무시작등 필요한 것들을 휘갈겨 적어 온 노트를 뒤적이다 보니 마음만 더 힘들어져 입맛 달아난 지는 오래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다.
특히 퇴근 무렵 "언니, 저는 내일 병원예약 때문에 출근을 안 해요. 내일 수고해 주세요".
업무인수인계 이틀째 되는 날 사람이 없다니. 나 혼자 어떡해?
뒤척이며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30분 일찍 출근해서 혼자 자리에 앉아보니 하루를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아침 8시. 전산을 켜고 메모노트를 펼치고 앉아서 필요한 시스템들을 열고 일을 시작했다.
9시가 되어 갈 무렵 카마스터들의 출근완료가 되었고 일찍 일찍 다니라는 대리점대표의 똑같은 잔소리로 시작하는 아침회의를 귓등으로 들으며 밤새 날아와 쌓여있는 업무 메신저 읽어보고 보고하랴, 더듬더듬 밤새 들어온 돈이 있나 회계처리하랴, 몇 대나 출고할 차량이 배정되었는지, 배정된 차는 몇 시까지 출고기한인지 , 또 어제 배정된 차량이 지역출고장에 도착은 했는지, 본사에서 보내는 업무협조문에는 무슨 내용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지만,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업무인수인계 이튿날 아침부터 약간의 배려도 없이 마치 오래도록 이 자리에 있었던 업무과 여직원에게 일처리를 맡기듯 계약자 명의변경, 차종변경, 옵션변경, 며칠 전 출고된 차량이 아직 탁송인수도 안되었다는 등 차량출고도 바쁜데 책상 앞에 서서 빨리빨리를 외치며 떠들어대는 카마스터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뭘 해달라고 하는지 메모를 하지 않고 깜빡 처리를 못했다간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하나씩 지워나갔다. 자동차 관련 업무 용어도 낯설고 본사에서 띄우는 협조문의 내용도 무슨 말인지, 차량코드며 또 카마스터들이 외부에서 전화를 걸어와 혹시 빨리 출고할 수 있는 차량이 있는지 봐달라며 차명과 옵션들을 불러주면 그걸 일일이 찾아야 하는 일은 출근 이틀째 일 중 제일 힘든 일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차량옵션을 구구절절 배열해 놓고 찾도록 전산을 세팅했다며 속으로 욕을 하는데, 미처 찾기도 전에, 다음 옵션을 불러대며 어느 출고장에 재고가 있는지, 전시장에 전시차가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급한 목소리는 더 눈을 멀게 만들게도 했었다. 누가 먼저 조회하고 계약을 넣고 차를 확보하느냐는 곧 판매대수와 직결되니 업무과 여직원의 전산조회는 대리점업무 중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전산은 개선되었고 노안으로 흐려진 눈이 그나마 잘 붙어 있을 수 있었다.
내가 정식 출근도 아니고 업무인수인계 중 이틀째인데 그것도 혼자 해결해야 하는 데, 반드시 오늘 해결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하루, 관할 지점 여직원에게 물어보려 전화하면 그 퉁명스러움과 짜증스러움을 견뎌야 했다. 물론 열심히 업무숙지를 한덕에 한 달이 지난 무렵엔 지점에 전화할 일도 줄어들어 그녀의 불친절도 친절로 바뀌어졌고 7개월여를 있다가 그녀가 지점 인사발령으로 자리를 옮길 때쯤엔 많이 섭섭해졌다.
한 달도 못할 것 같던 일을 9년여를 하면서 그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업무편의도 받아가며 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동차판매대리점 업무과 여직원의 입사 및 퇴사와 관련하여 업무인수인계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루어지는 경우는 주변의 몇몇 사례들을 보아도 드문 것 같았다. 퇴사예정일을 사전에 충분한 시일을 두고 고지해도 경력자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며칠 배우다가 슬그머니 출근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대리점대표와 다투고 바로 퇴사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나도 그래서 취업을 하긴 했다. 한번 출근하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감에 시달리며 일거리는 쌓이는데 처음 겪는 사례가 발생하면 또 물어물어 전화통을 붙들고 급하게 메모해 가며 업무처리를 하고, 퇴근을 하고 온 저녁에 아이들 저녁과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책상에 앉아 휘갈겨 쓴 그날의 사례들을 일목요원하게 정리를 했다.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새로운 사례들로 메모 노트는 채워졌고 어릴 때부터 해오던 정리와 메모습관은 성인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할 때도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20년을 넘게 일을 한 지점 업무과 여직원은 안 해봤단 사례를, 나는 종류별로 겪어보게 되면서 왜 우리 대리점에는 별난 고객이 많은가, 또 별난 일들이 벌어지는가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코끼리 다리 더듬어 가듯 일을 해결하고 나면 그만큼 나만 해보는 일도 생겨나기도 하고 메모를 잘해둔 탓에 타 거점직원들이 물어보면 메모를 제공해 주기도 했다. 감사한 일이다. 길잡이가 있으니까 덜 당황하며 일할 수 있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난 아낌없이 공유했다.
차량 한 대가 고객 앞으로 등록되고 인수되기까지 생산공장, 출고장, 탁송사, 자동차용품점, 등록사업소등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데 어디선가 삐끗하면 일이 배가 되었다. 고객요청사항도 많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보려고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내게 와서 부탁해 보는 카마스터의 간곡한 부탁에는 나도 본사 담당자에게 최선의 떼를 써서 해결해 준 적도 있었다. 어쩌다 이런 게 해결되면 기뻐하는 카마스터의 모습에 덩달아 내 짐을 벗어던진 것 같은 개운함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9년여의 근무 중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도 근무 한 달 만에 카마스터 때문에 흘렸다.
영업사원답게 말 잘하고 자기주장만 펼치며 억지를 쓰는데 너무 기가 막혀서 제대로 대꾸도 못하고 얼굴만 벌게진 채로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그냥 눈물과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었다. 3년이 조금 지나서야 난 카마스터와 떨리지 않는 목소리로 언쟁도 하고 TV에서나 보던 서류도 던져보고 조목조목 따져보기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화해도 했다. 남자들과의 세상에서 세상 조용하던 내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좀 거칠어졌고, 단호해졌다. 그런 내 모습 싫지 않았다. 카마스터들도 나도 우린 서로에게 잘 적응해가고 있었고 대리점은 평온해졌다.
근무 한 달 만에 7킬로가 빠졌을 때 체중감량비법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뭐, 정말 근심걱정이 많으니 한 끼만 먹고살아도 배고픔을 몰랐다고나 할까.
그러나 연말쯤 되니 체중은 원상회복을 넘어서서 더 넘쳐나고 있었으니 자동차판매대리점 업무과 직원으로서의 근무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여유와 편안함으로, 내 책상 앞이 조용해진 만큼 나는 살이 불어났으니 체중감량은 경험상 적게 먹으면 되고 배고픔을 잊게 할 몰입거리가 있으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그 후 몇 년 동안도 나는 계속 불어났다.
9년여의 직장생활 중, 첫 한 달 동안의 일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나를 어렵게 하던 카마스터들 속에서도 슬쩍 커피 한잔 내밀며 "힘내세요, 실장님" 미소 짓던 정카마스터, 요란스러운 목소리로 슬쩍슬쩍 내편을 들어주던 김카마스터. 직장생활 초기 적응기에는 따스한 한두 사람의 배려만 있어도 다음날 다시 출근할 힘이 되어주었다. 긴 시간을 보내고 퇴사할 때 특별히 이 두 사람에게는 첫 한 달 동안 두 사람 덕분에 출근할 힘을 얻었었다고. 정말 감사했다고, 전했다.
돌아보니 그리운 날들이다.
이제 또 어딘가로 출발해야 함을 알기에 솥뚜껑운전 9년 만에 내디뎠던, 돌아보니 그리운 날들을 기억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