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가 될 수 있다
여느 날처럼 9시경의 사무실 아침풍경은 조용하다.
출근 자유화를 공식화한 뒤로 나와 대표를 제외한 다수의 직원들은 대부분 전화로 업무처리하거나, 필요업무가 있을 시 출근하는 추세였기에 아침 9시경에 출근하는 사람은 드물다.
아홉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업무가 바쁜 나 대신 얼른 막내 사원이 전화를 받는다.
"네? 정말요? " 되묻는 소리.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든다.
전화를 받던 막내사원과 눈이 마주치고 거의 매일 9시경 전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김주임도, 대표도 막내의 얼굴을 바라본다.
불길하다.
늘 너무 발랄하고 말도 많아서 내게 핀잔을 받곤 했던 막내사원의 경직된 얼굴이 보인다.
" 무슨 일인데? " 내가 물어본다.
" 실장님, 조 과장님 어젯밤에 돌아가셔서 근처 종합병원 장례식장에 모셨다고...... 동생분이 전화하셨어요" 한다.
사무실에 정적이 흐른다.
김주임과 막내가 믿기지 않는다며 병원장례식장으로 가본다고 나간다.
사무실내에서 스피커폰으로 그렇잖아도 큰 목소리로 긴 통화를 자주하여 내 머리를 어지럽히던 사람.
나의 직장생활 몇 년 동안은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
한바탕 다툼과 화해 후에는 내게 많이 친절해진 사람.
업무처리에 있어서는 책임감이 강했던 사람.
웃음소리가 호탕했던 사람.
건강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고 살던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하루아침에 사라진 사람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직 빈소도 꾸며지지 않은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어이가 없다며 허탈해한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직원들에게 조 과장의 부고를 알린다.
사실이냐는 회신의 메시지가 컴퓨터 메신저 창에 쌓인다.
오래도록 함께 하던 직장동료의 죽음.
며칠 후 아들을 데리고 온 그의 아내가, 그의 책상정리를 한다.
커다란 쓰레기봉투와 빈 박스를 의자 옆에 두고 책상비움을 한다.
그 등이 너무 짠하다.
난 애써 무심한 척, 바쁜 척을 하며 일을 한다.
매일 출근하는 김주임과 대표 그리고 나는 '정리된 책상'을 바라보며 마음이 힘들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우리는 한동안 서늘한 마음으로 지낸다.
우리가 매일 숨 쉬며 살고 있는 세계의 종말은 서서히 숨을 죽이며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맞이하는 고통스러운, 한탄스러운 예고된 개인적 삶의 종료도 하루하루 누군가의 삶을 옥죄며
느닷없이 닥친, 예고 없는 개인적 삶의 종료는 허망함으로 남겨진 이들의 삶을 덮는다.
그리고 한동안의 시간이 지나면, '내일 또 봐요' 소중한 인연들과의 인사를 나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