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납세

안전벨트미착용이십니다

by 디오니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날 나른한 오후.

아침 회의 후, 썰물처럼 직원들이 빠져나가고 2시경이 되도록 바쁜 일 없이 사무실이 조용하다.

붙박이처럼 붙어있던 대표도 웬일인지 몇 시간째 자리를 비워 숨통이 트인다.

혼자인 이 시간, 너무 좋다.


김주임이 씩씩거리며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50대 초반인 김주임은 바싹 마른 몸에 흰 셔츠, 검은 바지, 차량카탈로그등이 들어있을 낡은 검정가방과 함께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인 그는 마른 몸에 그을린 검은 피부 때문에 더 까칠해 보인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

가방을 책상에 던져놓으며 전시장으로 간다.

커피 자판기 누르는 소리와 "아...... 어이가 없네" 한탄소리 같은 혼잣말이 허탈한 웃음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흥미롭다.

"뭐가 어이없어요?"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더니 책상에 걸터앉는다. 분위기로 짐작해 본다.

평소 김주임의 코드로 볼 때 분명 어처구니없는 웃음코드일 게 분명하다.


"최실장님, 내 말 좀 들어보소. 고객을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덥기도 하고 점심 후 졸리기도 해서 강가 근처에 주차를 하고 낮잠을 달게 잤어요.

당연히 낮잠을 자려니 안전벨트를 풀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다리를 길게 펴서 올려놓고 잤는데 정말 꿀잠을 잘 자고 견적도 새로 뽑고 하려고 사무실로 가야겠다 생각했지. 그래 바로 오는데 저~~~ 기 앞에 경찰이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뭘 들여다보고 왔다 갔다 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내가 또 궁금한 게 많은 사람이잖아. 사고라도 난 거면 도와줄 건 없나 해서 길가에 서있는 경찰 앞에 차를 세우고 창문을 쓱 내리고 수고하십니다 뭐 도와드릴 거라도 있습니까 했어. 참 나 어이가 없어서".

이야기하면서 되짚어 생각해 보자니 더 기가 막힌가 보다.


벌써 재밌다. 평소 김주임의 태도를 유추해 보건대 안 들어봐도 입꼬리가 자꾸 올라간다.

"글쎄, 경찰이 나를 보고 이건 뭔가 싶게 쳐다보더니 뭐..... 도와주실 건 없습니다만, 죄송한데 안전벨트 미착용이십니다. 신분증 부탁드립니다 하잖아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오고 글쎄 경찰이 안 봐주고 안전벨트 미착용 딱지 끊었다니까."


정말 얼굴이 아프도록 웃음이 터져 나와 멈출 수가 없다.

끅끅거리며 웃다 보니 눈물도 나고 배도 아프다.

목청 큰 김주임이 어이가 없어서를 몇 번이나 내뱉어놓고 집에나 가야겠다고 나가고 나서도 일을 하다 툭 튀어나오는 웃음에 정말 미치겠는 오후를 보낸다.

굳이 굳이 제 발로 경찰 앞에 찾아간 김주임이나 그냥 봐줄 만도 하건만 딱지 끊은 경찰이나 생각할수록 너무 코믹한 그림이어서 웃게 해 준 김주임에게 밥이라도 사야겠다.


호기심 많고 또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어 하는 김주임의 평소 성격이 만들어낸, 어느 나른한 오후에 발생한 자진납세건.


아마 그 경찰도 경찰 인생 중 처음이지 않았을까? 자진납세인 줄도 모르고 달려든 성실한 시민이. 아마도 딱지를 끊은 경찰도 김주임 보내놓고 엄청 웃었을 것 같다.

아직도 큭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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