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글쓰기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냐고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면 뭐가 되었든 꾸준하게 메모하고 기록하던 사람이 어느 날은 글도 쓰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 또한 기록이라면 중학교 1학년때 온전한 자의로 쓰기 시작한때로부터 대학졸업 때까지 놓치지 않고 썼으니 대학 때 쓴 것은 두꺼운 대학노트 및 예쁜 노트 등 5권이 넘는다.
강의 중에도 노트에 끄적이고, 지극히 내향적이나 외향적인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배운 사회활동, 말 수없는 내가 자취집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저녁이면 마음을 헤집어보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나였을까를 생각하며 그렇게 채워나갔었다.
우습게도 국민학교 6학년 때, 개학전날이면 방학시작 며칠분만 적혀있는 일기의 남은 날수를 흐릿한 기억력으로 채워는 놓겠는데 딱 하나, 그날의 날씨를 알 수는 없으니 두 살 위의 언니에게 울면서 제발 날씨만 볼게, 일기장 좀 보여줘 하면서 통곡을 해도 통뼈인 언니는 그때도 마음이 통뼈라 단단했는지 밤 12시가 되어서야 던져준 일기장을 분노와 안도감이 뒤섞인 맘으로 눈물을 닦아가며 날씨를 채워 넣었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심리가 참 그렇다. 초저녁에 던져주었으면 언니도 인심 얻고 좋았을 텐데 밤 12시가 되도록 애를 태우다가 주니 고맙기보다 저런 게 언니라고 하면서 미움이 생겼었다.
마음이 어려서부터 못난 사람도 있긴 하다. 이 언니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 당시에는 졸업식날 모두 한복을 입고 갈 시기였는데 언니는 엄마를 졸라 비싼 공단한복을 맞춰 입고 갔으면서 2년 후 내 졸업식날 아침에는 한복을 빌려주지 않아 졸업식날 아침부터 울면서 간신히 빌려 입고 갔었으며 대학합격소식을 전화로 확인하던 날은 같이 귀 기울여 듣고 있다가 합격이래 하면서 엄마와 기뻐하던 순간에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으니 좋은 마음은 아닌 사람이었다.
어찌 되었거나 그랬던 내가 일기가 숙제인 어린이를 벗어나며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강제성에서 벗어나고 선생님에게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내 마음,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1남 4녀의 둘째 딸인 나는 극성인 언니와 동생사이에서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고 나라도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서 속을 썩이면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구성원 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하고 싶은 말, 내 꿈들을 글 속에 써 내려가며 겉으로는 아무 문제없는 착하고 말없고 조용한 둘째 딸이었다.
그러나 글 속에는 원망과 앙칼진 대꾸와 도저히 간극을 줄일 수 없는 가족구성원들과의 성격 차이로 인해 어려서 외삼촌이 놀리던 대로 나는 주워온 아이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려가며 해소해 나갔다.
입을 닫고 꼭 필요한 말만 하면서 엄마에게 착한 딸이었던 나의 중고등학교생활 속에는 자매들 간의 다정함은 없었다. 일기가 내 친구였고 내 동료였으며 탈출구였었다.
대학진학을 하며 집을 떠나올 때 고등학생 때까지 쓴 일기는 새로운 시작을 할 거라며 모두 없앴고 대학시절 쓴 기록들은 결혼할 때 버릴까 말까 망설이다 그래도 챙겨 왔는데 베란다 창고에 들어간 지 20년이 되어간다.
어찌 되었거나 지속적인 꾸준한 글쓰기의 힘을 나의 생활곳곳에서 발견하기도 했는데 리포트작성 시에도, 대학 ccc동아리 방송부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아이들 숙제를 봐줄 때도 힘들이지 않았으니 지극히 평범하기만 한 내 평생 뭐 꾸준히 잘한 것은 없는데 딱 하나 20대 중반까지의 글쓰기였다.
그 이후의 삶은 기록이 드문 생활충성형삶이었는데 훌쩍 나이 든 어느 날 권유받은 브런치스토리에 되새김의 글을 써오면서 어제보다 손톱만큼이라도 나은 오늘이 되기를 의식적으로 붙잡아보긴 하는데 일평생 의지박약인 나는 이나마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12월이 가기 전 집 대청소를 한번 해야지 계획을 세우며 베란다 창고정리 및 수없이 죽여내고 남은 빈 화분정리를 1순위로 정하고 의욕적으로 문을 열었다가 쌓여있는 짐에 엄두가 나지 않아 도로 닫아 두었는데 조만간 꼭 비워내야 한다. 창고 제일안쪽에 있을 노트꾸러미를 꺼내기 위해서라도 꽉 찬 12월이 가기 전에 꼭 정리해야 한다.
내가 만약 어느 날 죽게 되면 아이들이 정리를 하다가 일기장을 보았을 때 유치하고 우울하고 미숙한 내가 너무 보일까 싶어 노트들을 내가 한번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파지로 버릴지 지금은 고민 중이다.
어느새 12월이 되었고 또 어느새 12월이 갔네 할 것이다.
한해의 마지막 달은 후회이길 원하지 않는다. 이미 이루지 못한 것들은 지나갔으니 12월은 예결산을 제출하고 신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듯 새해를 맞이할 준비기간으로 정해두었다. 너무 멀리 보니까 달려갈 힘이 없고 두렵기도 해서 주간계획을 수립했는데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을 전망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 뒤늦게 일감처럼 다가온 브런치스토리에서의 꾸준한 글쓰기는 놓고 싶지는 않은, 현재로선 중요한 내 일터이며 일감이다.
소복하게 내린 눈이 사르르 녹아 사라진 게 아니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뻗어나가듯 느리고 둔한 기록들도 시나브로 푯대를 향하여 정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