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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눈물

새로운 시작

by 디오니


내년이 되면 내년이 되면 하면서 보낸 시간의 다다름 속에 수능시험을 치른 딸이 늦가을 비 추적추적 내리는 교문을 나서 엄마의 차를 찾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수험생들이 나오는 교문 앞에 형형색색의 우산을 쓴 가족들의 뒷모습이 몹시 초조해 보이고 나 또한 아침부터 긴장 속에 머리가 아파왔었다.

우산을 같이 쓰며 '애썼어'했더니 평소 차분하고 애교 많은 딸이 "엄마, 망쳤어" 했다.

수험생이 있는 집이라는 느낌이 전혀 안들정도로 딸은 평소에도 자기 할 일 알아서 열심히 하는 아이였기에 난 그냥 엄마로서 있기만 했는데 약간 붕 뜬 느낌의 딸이 엄마 재수해야 할 것 같아 할 때까지만 해도 난 장난이 섞였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절반이나 남은 도시락을 보니 얼마나 긴장을 했었을까 싶은 게 마음이 아려왔다.

딸이 밝은 얼굴로 저녁도 잘 먹기에 '그럼 그렇지' 안도하는 맘으로 설거지까지 마치고 쉬는데 샤워하고 나온 딸의 방에서 훌쩍 소리가 들렸다.

딸이 조용히 울고 있었다. '현이 울어? 했더니 대학 못 갈 거 같다고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딸이 일곱 살 때 씻어라 말했더니 '엄마는 왜 두 번 말해? 내가 씻을 건데' 한 이후로 지금까지 딸에게 같은 말을 두 번 해보지 않았다. 그만큼 혼자서 알아서 하기에 의지도 되고 어렵기도 하고 힘이 되는 아이였는데 우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여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침대에 주저 않았는데 큰소리도 내지 않고 연신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냥 조용히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사람이 너무 아픈 눈물일 땐 함부로 위로의 말을 내어놓지 못하겠고 그저 안아주기만 할 뿐.

자식의 눈물을 보니 가슴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거였나.

조용히 집을 나와 둘째 딸 학원 앞에 주차를 하고 딸을 태우니 웬일로 태우러 왔다고 엄청 반기는데 집에서 울고 있다는 언니소식에 둘째 딸은 정색하고 나를 보더니 "엄마, 언니한테 너무 묻지 말고 속상한 거 내색하지 마"하고 다부지게 다짐을 받아낸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가족인가.


암흑 같은 밤이 가고 학교에 다녀온 딸이 "엄마, 친구들도 눈이 많이 부어서 왔더라"하더니 며칠 동안 누우면 잠을 자고 잠을 자고 하더니 코로나로 잃었던 입맛이 5개월 만에 회복이 된 것 같고 수능 몇 달 전부터 잦은 복통으로 먹던 약도 안 먹을 만큼 컨디션도 되찾고 있고 원하던 대학은 접어야 하겠지만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는 딸은 결과를 기다리며 필라테스, 요가, 복싱도 하고 운전면허취득을 위한 필기도 합격해 두었다.

중학교 때부터 수능 마치면 일본여행을 가자고 약속했던 친구들 3명과 1월 중순엔 일주일간 일본여행을 가는데 벌써 모든 준비를 친구들과 마쳤다고 한다.

남편은 아이들만 보내기 걱정스럽다고 하지만 스무 살의 새로운 시작이 될 첫 여행을, 출발을 기쁜 맘으로 지지해주고 싶다.

아직 손에 쥔 결과도 없고 수척해진 얼굴도 그대로이지만 남은 날의 하루하루를 몸을 단련하듯 마음의 근력도 키워서 밝은 눈빛을 되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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