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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꺼진 예배당

만남

by 디오니

도로 곳곳에 수북이 쌓인 황갈색의 플라타너스 잎들이, 도저히 집에 머물지 못하게 만들어 향긋한 커피를 챙겨 들고 저녁이 다가오는 거리로 나섰다.


걷다 보니 교회가 보인다. 평소 시끄럽던 교회가 평일 저녁이라 조용하고 사람들도 없을 듯하여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딛고 로비를 지나 묵직한 본당 문을 열어보았다. 오랜만에 본당 로비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연년생 아이들을 데리고 모자실에서 예배랄 것도 없는 전쟁을 치러 가며 다녔던 일이나 봉사모임에서 편지 보내기, 전도물품포장하기 등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흥미롭고 아름다운 책, 성경을 살면서 통독은 2번, 성경 66권 중에 좋아하는 책은 여러 번씩 읽어도 보았는데 아무리 교회가 사람을 안 보고 신을 보고 가는 곳이라 해도 나는 '목이 곧은 백성'인지 사람적응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 후 오래도록 외면하고 등을 돌리고 있는 교회의 문턱을 아직도 나는 넘지 못하고 있었는데 저녁바람이 나를 교회로 이끈 날이었다.


조용하게 혼자 앉아서 내 사정을 조금 알려드린 후에 마음의 쉼을 얻고 싶어서 밟은 교회마당이었는데 본당의 묵직한 문을 열어보니 불 꺼진 넓은 예배당이 생각보다 무서워서 그냥 갈까 돌아서려던 참에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예배당 앞자리에서 기도하는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출입문 입구 쪽, 맨 뒷자리에 조용히 자리 잡고 두 손을 모았는데 막상 눈을 감으니 복잡한 내 심경들이 말이 되어 나오지 못하고 입술이 떨어지지 않아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나님'하고 한마디 하니 뒷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예배당 맨 앞자리 신도가 콧물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고 간혹 간혹 너무 처절해서 '하나님, 내 사정도 딱한데 저 사람 사정 하나님 다 들으셨으면 저 사람 기도에 대답해 주세요'하고 속으로 고해보았다.


고요한 예배당에 귀만 더 쫑긋해지고 누군가 또 들어와 앉았는데 앉자마자 '주여'하는 뱃속 깊은, 땅 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은 탄식 같은 '주여'만 반복하는데 더 아뢰지 않아도 너무 깊은 고뇌가 전해졌다.

'있잖아요, 하나님. 저 사람 깊은 탄식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눈을 감고 어두운 예배당 안에서 '훌쩍'신도와 '주여'신도의 간절함에 반응하며 앉아만 있었다.


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엔 걸음이 활기찼다. 아니나 다를까 앉자마자 '주여'를 외치는데 우렁차다.

기도를 시작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샬라 샬라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 같다가 '주여, 아버지'를 섞어서 쓰다가, 또 듣다 보니 아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얼마나 크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하는지 감은 눈을 뜨고 그 사람을 바라보니 두 손을 들고 정말 열심이었다. 저 사람은 고민도 없겠다 싶었다.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데 부럽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아뢰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집중할 수 없는, 같은 공간 속 그들만의 시간에 이방인 같은 존재로 나는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내걸 기도하기는 틀렸다.


눈을 뜨고 예배당의 정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으려니 십자가가 있어야 할 곳에 스크린이 있다.

십자가 없는 예배당.

'오늘은 그만 가볼게요'하고 일어서는데 훌쩍 신도와 주여 신도는 방언 신도를 개의치 않고 여전히 신께 아뢰는 중이었다. 저런 간절함이 있으니 이 시간, 이 장소에 와서 시끄러워도 개의치 않고 아뢰고 있겠지.

조용히 울며 아뢰든, 짧은 탄식에 모든 것을 담 든, 크게 외치든, 무엇이든 간에 그들은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의 신께로 저녁시간을 드리고 있었다. 이래서 나는 아직인가 보다.


바람은 속절없이 달고 달은 밝아 정처 없이 더 걸어보았다. 그녀의 아파트 앞을 지나가니 벌써 1년이 되어가는 그때가 떠올랐다.

작년 이맘때, 교회에서 밝은 성격으로 교회안내봉사와 모임 등으로 활발히 지내는 걸로 알고 있었던 그녀가 스스로 생을 종료했다. 믿음이 얼마나 확고하면 각종기도모임과 매주 교회봉사, 소모임리더를 꾸준히 할 수 있는지 부럽기도 했던 사람이었는데 발인전날의 늦은 밤에 소식을 듣고 10시 넘어 찾아간 장례식장에서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날의 아픔.


너는 긴 세월 동안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그곳에서 너의 신을 만나지 못했었던 거니.

나도 아직 못 만났어. 만났으면 내가 이리 살고 있지는 않겠지. 있잖아, 불 꺼진 예배당 안의 그 사람들, 묵직한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올 때 위로의 손길을 받고 나오는 것이기를 너무 소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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