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우울
2월 한 달 동안 왕복 7시간 정도의 고속도로 운전을 5번 했습니다.
그중에는 안양을 가려고 이제 대학신입생이 된 딸과 고3이 된 딸을 태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옆에서 바로 치고 들어오는 차량을 피하다 죽을뻔했던 그 순간의 딸의 비명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차량이 제어되지 않아 핸들만 꼭 붙들고 제 차선으로 돌아오려고 휘청거렸던 그 놀라웠던 순간 나는 비명도 못 지르고 눈만 깜빡였던 것 같습니다.
3차선에 차량이 없었던 건지 지나간 건지 기억도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찰나의 순간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꿈만 같았던 시간, 아직은 죽을 운명이 아니었는가 감사했습니다.
또 안산을 가던 중 중부내륙고속도로 1차선 사고현장도 목격했습니다.
금방난 사고인지 차량 두대 사이에 세 명이 서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 고속도로에 화물차는 얼마나 많은지, 내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붙어서 올까 싶은 게 별별 걱정도 늘었습니다. 운전한 지 몇십 년 만에 무사고로 다닌 것도 감사한데, 이제 차량이 무서워진 것도 새로운 경험입니다.
또 얼마 전엔 주차장에 설치된 방지턱에 걸려 넘어져 눈떠보니 바닥에 개구리 퍼지듯 엎어진 나를 보았습니다.
정말 한 뼘만 더 가서 넘어졌으면 인도턱에 이마가 깨지든 코가 나가든 아마 크게 다쳤을 텐데 다행히 팔꿈치와 무릎이 까지고 튀어나온 배가 쓸리는 정도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날 저녁, 자리에 누웠는데 이 저녁의 평화가 너무 감사해서 많이 웃었습니다.
너무 아파 샤워도 못했지만 그 정도로 끝난 게 어딥니까.
이월 한 달을 보내느라 힘들었는지 입안에 혓바늘도 돋고 몸은 축 처지는 데도 불구하고 집 밖을 나와봤습니다. 봄추위를 담아 내리는 빗속을 조금은 걷다가, 그래도 봄인가 싶어 비교적 얇게 입은 옷 때문인지 아님, 기력이 쇠해진 몸때문인지 으슬으슬하니 추운듯하여 근처 도서관으로 들어가 자판기 커피 한잔을 뽑았습니다.
너무 달고 끈끈한 맛이 느껴져 온수를 더 채워주었습니다.
커피 향에 의지해 비 내리는 창밖을 무심히 내다보다 다정한 지인과의 통화도 해보았습니다.
직장인의 활력이 느껴져서 부럽고 좋아 보였습니다.
내게 있는 것에서 감사함을 찾고 지금의 상황을 누리라는 조언을 듣습니다.
죽다 살아난 경험도 한 이월달인데, 그렇게 감사했는데, 비 내리는 날의 습한 기운처럼 우울이 또 스며들어옵니다. 힘을 내고 싶은데 떨칠 수가 없습니다. 나라는 사람자체가 너무 어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