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은 따끈한 국밥을 먹어야 한다.
눈 오는 날은 유난히 대리운전 콜이 많다. 어젯밤이 그랬다. 천안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 데 대리콜을 열어보니 20여개가 떠 있었다. 갑자기 35,000원짜리 콜이 뜨자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콜을 잡아버렸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후회했다. 눈발이 거세서 눈 앞이 보이지 않았고 떠나보낸 지하철은 막차였다. 어디로든 가야했기에 콜을 취소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눈길에 버스마저 오지 않아 시민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었고 언제 오냐는 고객의 독촉전화에 곧 택시를 잡겠다는 얘기만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거리마다 버스를 못탄 시민들 때문에 빈택시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이러다간 콜 취소가 뜰 것 같아 고객에게 10분만 더 달라고 하고는 고객이 있는 곳까지 뛰기 시작했다. 2km 넘는 거리, 눈으로 덥힌 거리, 미끄러지듯 달려오는 차들까지 10분 안에 간다는 건 목숨을 걸고 뛰어야만 가능했다. 눈발이 거세지자 눈 앞이 안보였고 눈 안으로 눈송이가 들어가 눈물과 뒤섞였다. 어디쯤이냐며 자꾸만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에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져 있었던 나는 눈보라를 뚫고 마침내 고객이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차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와 느릿한 트롯트 음악이 흘러나왔다. 죽을 각오로 뛰어왔던 나는 헐떡거리며 연신 죄송하단 말을 했다. 운전대를 잡고 운전을 시작하자 머리에 쌓여있던 눈들이 녹아서 이마로, 눈으로, 턱 밑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나 물기를 닦을 여유조차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주시하며 잔뜩 긴장한 채 눈 속을 헤치며 운전을 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는 말랑거리는 트로트의 멜로디에 따라 어느새 부드러워졌고 호흡도 가벼워졌다.
보안기기업체에서 일하며 군사시설을 설치했다는 고객은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나의 경험을 듣고는 1시간 내내 감시카메라와 방산비리에 대해 얘길 나눴다.
늘 갑과 을로 만났던 군장교출신자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니 기분이 이상하다며 웃으셨다. 나도 덩달아 웃으며 고객님 덕분에 저도 내일 밥값 걱정 없으니 좋다고 웃었다. 운전을 마치고 주차를 하자 고객의 아들과 아내가 나와서 고객님을 데려갔다.
잠시나마 콜 잡은 걸 후회했던 기억은 추억이 됐고 이 짧은 만남으로 내겐 수수료를 뺀 28,000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이제 따뜬한 국밥을 먹으러 가야겠다.